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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반디 Jan 13. 2022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의 한계

소소교육 서른 다섯번째 이야기



"요즘 물가가 부쩍 오른 것 같아. 오늘 도니랑 시장 갔다 왔는데 조금밖에 안 샀는데도 돈을 많이 썼거든"

남편이랑 저녁을 먹고 식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웬만하면 배달 음식을 먹지 않고, 해 먹는 편인데도 식비의 비중이 꽤 크다. 한동안 자가격리 기간을 갖고 이제 또 방학이 되니 삼시 세 끼를 차려야 하고 돌아서면 간식을 달라고 하는 통에 식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아이랑 다이소에 갔다가 저금통을 사고 싶다고 하는데 2천 원. 진짜 꼭 필요한 거냐고 몇 번을 확인한 뒤 장바구니에 담고, 둘째 것도 같이 살까 여러 번 고민하다가 하나만 샀다. 오는 길에 사과를 사러 과일가게에 들렀는데 한라봉이 먹고 싶다고 한다. 6개 만 원. 옆에 귤은 30개 5천 원인데..(물론 크기가 차이 나지만).

"한라봉...?"

"응 먹고 싶어요~"

비싸서 망설여졌지만 저렇게 먹고 싶다는데. "저기... 한라봉도 주세요~"


며칠 뒤 남편이 지방으로 출장을 가게 돼서 같이 따라가기로 했는데 예전에 묵었던 숙소를 아이들이 좋아했던 터라 똑같은 곳으로 예약하기로 했지만 며칠이나 고민을 했다. 주말 요금이라 그때보다 요금도 비쌌고 하룻밤에 17만 원이면. 옆 단지에 좀 좁은 곳은 가격이 훨씬 싸길래 남편한테 사진을 보여주니 "추워서 거의 숙소에만 있게 될 텐데 돈 좀 주더라도 예전에 거기 다락방 있는 곳으로 하자~ 아이들이 좋아했잖아" "음... 그래 조식이 괜찮았으니까 그럼 거기로 한다~!" 그렇게 며칠을 망설인 끝에 예약을 했다. 주변에 어떤 친구는 스키 캠프도 간다고 하고, 2학년이 되면서 학원도 한 두 개씩 늘린다고 하는데 자꾸 주머니 사정부터 생각하게 되니 가끔은 좀 서글퍼질 때도 있다.


얼마 전에 아이가 놀이터에서 친구들이랑 놀다가 친구가 하교 길에 문방구에서 산 장난감을 보고는 "우리 엄마는 사달라는 거 다 안 사준다~"라는 말을 크게 한 적이 있다. '그래도 소소한 거는 가끔 사주는데..'라고 속으로 생각하긴 했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 예전에 마트에 갔다가 동생네를 만나기로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조카들이 하나씩 장난감을 안고 왔다. 막 마트에서 산거라고. 당시에 나는 아이들이 어리기도 했고, 생일이나 크리스마스가 아니면 장난감을 사주지 않기로 했었기에 지금도 갖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아이들은 "엄마 7살 생일에는 이거 받고 싶어요" "엄마 크리스마스 때 드론 장난감 갖고 싶어요" 하는 이야기를 한다. 하교할 때 친구들이 문방구에 들러 장난감을 살 때면 부러움의 눈길로 바라볼 때도 있다.


예전에는 다 같이 어렵고 힘든 시절이라 안 사주고, 원하는 걸 안 해줘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그런 것들로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에 웬만하면 친구들이 갖고 있는 걸 사주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많은 친구들이 갖고 있는데 없으면 너무 스트레스받으니까 사줘야 하는 것인가... 고민이 많아진다. 하지만 남편은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월급이 많지 않아도 출퇴근 시간은 정확한 지금의 직장에 계속 다니기로 했고, 나는 '수입이 없는' 쪽을 선택했다.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아이들은 사고 싶은 것을 원하는 대로 살 수 없고,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활동이나 체험은 쉽게 하기 힘들 것이며 사교육 역시 나중에 꼭 필요한 것 한두 가지만 선택해야 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완전히 채워줄 수는 없는 결핍이다.


'결핍'에 대해 생각을 하니 또 문득 아이들과의 놀이 시간이 떠올랐다.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신나게 같이 놀아주는 것에 한계를 느꼈고 미안했다. 그게 아이들에게 결핍이 될까 걱정도 돼서 어릴 때는 아이를 데리고 무조건 놀이터로, 공원으로,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과 재미있게 노는 기술이 출중한 남편에게 "오늘도 둘이 어찌나 잘 놀던지..." 하는 이야기를 하면 가끔 이렇게 얘기를 하곤 했다. "당신이 그냥 앉아서 책보거나, 아이들이랑 잘 안 놀아서 둘이서 노는 것 아니냐"라고.

"아니거든! 둘이 잘 노니까 나도 책 보고 지켜보는 거거든! 그리고 집에서 이것저것 하다 보면 아이들이랑 같이 놀기도 힘들어" 반박하기는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아이와 신나게 놀아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있었다. 아이들이 아빠와 있을 때는 "같이 놀아요. 같이 놀자!" 하면서 아빠를 가만두지 않지만, 나와 있을 때 "엄마, 같이 놀자"는 말을 잘 안 하는 걸 보면 아이들과 신나게 놀았던 시간이 참 부족했다. 하지만 그 결핍으로 인해 아이들은 혼자서, 둘이서 이런저런 놀이를 생각하고 놀 거리를 만들어낸다. 나는 커다란 액션을 취하지는 못하고 실감 나게 역할극은 못하지만 집이 아이들의 놀이로, 호기심으로 난장판이 되는 것에는 관대해지기로 했다. 주섬주섬 클레이나 재료를 꺼내면 아이들도 옆에 와서 하다가 더 재미있는 놀이를 만들어 내곤 했다. 아이의 심심함을 꼭 채워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늘 누군가가 재미있게 놀아주거나 늘 재미있는 환경이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는 결핍이 되어야 아이도 혼자 놀 거리를 찾고 집에서도 혼자 노는 힘을 기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위안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도 어른이 되어서도 늘 모든 것을 충족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 어른들도 경험했듯이. 경제적인 문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또 어디서든 크고 작은 결핍을 느끼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부족한 것에 대해 미안해하기보다는 그 결핍을 다른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줄 것인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어려운 일이고, 자꾸만 부모의 한계에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부터 들더라도. 아이들에게 삶의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게, 결핍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동행해야 할 삶의 반려임을 조금씩 가르쳐주는 일이다.



결핍은 때로는 우리에게 상한 성취동기를 부여하고, 무언가를 열심히 할 의욕을 심어주고, 내 삶을 성장하게 하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결핍은 사람들의 생각을 좁게 만들고 자기 조절 능력을 떨어뜨리며 타인과의 관계를 왜곡시키는 정신적 병균으로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인생의 결핍과 대면할 용기가 있습니까? 그것이 열등감이나 정신적 병균이 아니라 삶의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도록 당당하게 대면할 용기를 가지세요. 결핍은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열두발자국 p109>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를 하는 분들이라면 마음속에 늘 담고 있는, 때로는 심각하게 툭 터져 나오는 질문 같습니다. 8살, 6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어렵기만 합니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교육에 대한 제 소신을 조심스레 밝힐 때면 "아이들이 어릴 땐 나도 그랬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첫째가 학교에 입학하며 '진짜 교육 현장'에 한 발짝 발을 딛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과 내 소신을 믿는 마음으로 걱정을 덜어 내어 봅니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교육에 '소소 교육'이라는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소소하다'는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도 있지만, 밝고 환하다는 뜻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소신을 갖고, 작은 움직임으로, 아이와 밝고 환하게 교육 제도의 긴 터널을 지나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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