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교육 서른 네번째 이야기
요즘 우리 집 저녁 식탁에는 계란말이가 꼭 올라간다.
"엄마 오늘도 계란말이 하고 싶은데... 우리가 하나씩 계란 깨트릴게요"
"섞는 건 내가 할 테니까 소금 넣는 건 오빠가 해"
첫째는 뒤집개로 조심조심 계란을 말고(사실 만다기보다는 접는 수준이지만 접고 또 접으면 얼추 비슷하다 ㅎ) 아이들은 맛있게 먹고는 내일 또 만들자고. 첫째가 2분기에 이어 3분기 학교 방과 후 수업에서도 요리 수업을 들으면서 음식 만드는 데에 조금씩 관심이 생겼다. 얼마 전에는 도서관에 책을 찾으러 갔다가 <자신만만 생활 책 - 음식 잘 먹는 법>을 보고는 아이 생각이 나서 빌렸다. 예전에 아이가 읽어봤던 책이었지만 요즘 요리에 부쩍 관심이 생긴 아이를 보며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학교 마치고 와서 책을 보더니 신나게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내내 이 책을 보면서 궁금한 건 물어보기도 하고, "엄마! 전기밥솥에 버튼을 누르면 폭발할까 봐 무섭대요! 우하하하" 무척 재미있어한다.
나도 이번엔 책을 제대로 같이 읽어보니 정말 깨알 같은 내용들이 많다. 요리의 시작인 재료 다듬기부터 육수 내는 법, 밥 짓는 법, 계란말이 하는 법, 밥 맛있게 먹는 법 등등.
"엄마는 어떤 요리 좋아해요?" "
"김치볶음밥도 좋아하고 나물 비빔밥도 좋아해" 했더니 볶음밥이랑 비빔밥은 어떻게 다른지 묻기도 했다. 책의 초반에 나와있는 이 문장도 참 좋았다. "성장한다는 건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는 거야. 특히 부엌 기술은 살아가는 데 아주 중요한 기술이지. 부엌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좀 더 멋진 사람을 향해 한 발짝 다가서는 거야".
아이는 책을 읽으며 육수를 만들 때는 멸치가 필요하다는데 우리 집에는 멸치가 있는지 궁금해하기도 했고, 자기가 밥을 한 번 지어 보고 싶다며 전기밥솥에 취사 버튼을 누르고 밥이 언제 되는지 계속 물어봤다. 얼마 전에는 육수 내서 칼국수 만들어야겠네 했더니 "엄마 그럼 멸치랑 다시마가 필요하겠네요?" 이야기도 하는 걸 보며 도서관에서 빌렸던 저 책을 아예 사야 겠구나 싶어 장바구니에 담았다.
최근에 영화 <이웃집 토토로>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이웃집 토토로> 책을 샀더니 책을 보자마자 앉아서 아빠랑 번갈아 가며 큰 소리로 읽었다. 첫째랑 둘째가 서로 학교랑 어린이집에 가져가겠다고 날짜를 조율하기도 하고. 영화에서 토토로가 좋아하는 열매인 도토리와 관련된 그림책 <도토리 마을의 1년>도 빌렸는데 둘 다 참 재미있게 읽었다. 구두를 좋아하는 둘째에게는 <신발 신발 아가씨>라는 그림책을 빌려줬더니 아직 글자를 모르지만 혼자 재미있게 넘겨보기도 했고, 몇 번을 읽어달라 조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아이가 읽고 또 읽고, 즐겁게 읽었던 책들은 평소 관심 갖고 있던 것들이 재미있게 담긴 책들이었다.
문득, 아이들에게 책을 읽는다는 건 호기심 가득한 것들을 더 알아보고 탐구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궁금하고 좋아하는 것들이 책에도 나오면 반짝이는 눈으로 신기하고 즐겁게 들여다보는 시간이 아이들의 책 읽기를 더 흥미롭게 해주지 않을까.
가끔 아이들에게 책 읽는 습관을 만들어주는 방법에 대한 글들을 보곤 한다. 놀이 공간과 책 읽는 공간을 분리해주라고 하거나, 잠자기 전에는 꼭 책을 읽어줘서 독서 습관을 익히게 하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주기적으로 가는 것, 책 읽으라는 말 대신 책을 아이들 눈에 잘 띄는 곳에 두는 것도 독서 습관 들이는 방법으로 중요하다고. 아마도 틀린 얘기는 없을 것이다. 꾸준히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아이가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 확률도 높아질 테니까. 그리고 꼭 이대로 실천하지 않더라도 아이가 책을 좋아할 계기와 시간은 앞으로도 충분히 있으니 미안해하거나 조급해하지 말기를 꼭 당부하고 싶다.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도록 하는 여러 가지 노력들에서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을 가장 먼저 떠올려보려 한다. 아이가 관심 갖고 좋아하는 것들을 잘 살펴보기 그리고 그것을 책 읽기로 확장시켜 주기. 사소한 것도 괜찮다. 아이가 비 오는 날을 좋아하면 비와 관련된 그림책을 빌려다 같이 읽을 수도 있고, 아이가 놀이터를 좋아한다면 놀이터와 관련된 책도 많다. 아이가 엉뚱한 상상을 많이 한다면 아주 기발한 사건들이 가득한 책을, 친구들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친구들과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미소 짓게 하는 책들을. 대신 좋아할 것 같아 내민 책을 아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아이의 관심과 책을 이어주는 시간을 마련하다 보면, 언젠가는 아이도 자기가 좋아하고 궁금한 것을 책을 통해 더 알게 되는 즐거움과 만나지 않을까. 내년에는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책을 조금씩 조금씩 더 사랑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를 하는 분들이라면 마음속에 늘 담고 있는, 때로는 심각하게 툭 터져 나오는 질문 같습니다. 8살, 6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어렵기만 합니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교육에 대한 제 소신을 조심스레 밝힐 때면 "아이들이 어릴 땐 나도 그랬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첫째가 학교에 입학하며 '진짜 교육 현장'에 한 발짝 발을 딛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과 내 소신을 믿는 마음으로 걱정을 덜어 내어 봅니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교육에 '소소 교육'이라는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소소하다'는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도 있지만, 밝고 환하다는 뜻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소신을 갖고, 작은 움직임으로, 아이와 밝고 환하게 교육 제도의 긴 터널을 지나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