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기쁨입니다
내 나이 서른 하나,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왔다. 작년 11월에 밴쿠버에 오자마자 운이 좋게 몽 피투(Mon Pitou)라는 가게에 취직을 하게 되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밴쿠버 다운타운에 위치한 몽 피투는 사장인 T가 좋아하는 진녹색으로 칠해진 외관을 가진 조그마한 비스트로 겸 카페이다. 영업시간은 평일 오전 7시 반부터 7시, 주말 오전 8시부터 7시까지. 주된 영업은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주말 오후 3시)까지 진행되는 비스트로 식당 운영. 그 외에는 가게 시그니처 샌드위치와 신선한 페이스트리, 다양한 커피 및 음료와 가지각색의 리테일 메뉴를 판다.
생각보다 줏대 없이 이것저것 많이 한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바리스타로 취직한 내가 서버이자 캐셔로도 일하고 있는 거겠지. 평일에는 커피도 뽑고 손님도 받고 음식도 나른다.
어쨌든 이렇게 몽피투에서 지난 삼십 평생 인연에도 없던 서버로 일을 하게 되었지만, 난생처음 해 본 서버 일은 꽤나 재미있는 편이다. 물론 처음에는 주문 실수, 응대 실수, 예약 실수가 너무 많아 나보다 연하인 매니저 K에게 된통 깨지고 혼자 사무실에서 눈물도 여러 번 훔쳤다. 그러나 세 달쯤 일하고 나니 이젠 뒷짐 지고 조그만 가게를 유유히 걸어 다니며 식사 잘하고 계시는 손님들을 내려다보고는 “is that everything okay?”하고 묻는 여유도 생겼다.
그렇게 물으면 대다수의 손님들은 하나같이 활짝 웃어주시며 “It’s amazing”, “It is so lovely”해주신다. 언젠가 점심시간이 겹쳐서 같이 일하는 친구이자 캐나다 토박이인 EV와 밥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자기가 보기에 캐나다 사람들은 그렇게 친절한 편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서버 일을 하다가 손님에게 칭찬과 감사를 들을 때면 꼭 그 말이 사실인 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또 캐나다에서는 딱히 내가 아시안이라는 게 튀지 않을 만큼 다양한 인종이 살아서 그런지, 저런 반응이 인종을 타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남녀노소 어쨌든 내가 “is that everything okay?”하면 “It’s amazing”해주신다.
그런데 가끔씩, 하루에 한두 번씩, 스몰톡을 건네는 손님들이 계신다. 그런 분들은 끝내준다는 자신의 말이 정말 빈 말이 아니었던지 꽤 진지하게 나한테 이야기를 건넨다. 근데 문제는 내가 영어를 못한다.
두 달 반 동안 일하면서 내게는 어느 정도의 영문 스크립트가 생겼다. 가게 매뉴얼에 나와 있는 스크립트를 훑어보고, 사장인 T와 J가 손님들을 응대할 때 하는 말을 엿듣고, 매니저인 K나 ER가 가르쳐주는 방식을 따라 하다 보니 얼추 가게에서 자주 쓰이는 영문 대화의 패턴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 일단 손님이 가게에 찾아오면 나는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띄우고 “Welcome to Mon Pitou”하고 다가가서 하루에 수십 번씩 말하는 문구를 줄줄줄 내뱉는다.
그렇게 말하던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였나. 아니면 내가 이 정도는 알아듣겠지 싶었나. 어쨌든 손님들은 “It’s amazing”이 왜 “amazing”한 지에 대해 서버인 내게 솰라솰라 말을 꺼낸다.
당연히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경청해 보면 분명 뭔가 가게 인테리어나 음식의 맛을 이야기하고 있고 나는 이 근처에 사는데 여기를 올 생각을 못했다는 둥, 내가 먹어본 샌드위치 중 최고로 맛있다는 둥, 여기 커피가 밴쿠버 최고의 커피라는 둥 하는 것 같긴 하다. 집 밖에만 나가면 영어를 달고 살다 보니 나도 눈치가 생겨서 이제 어느 정도는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의 와꾸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스피킹이다. 그냥 듣고 생각만 하면 되는 리스닝과 달리 스피킹은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구사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내가 할 줄 아는 영단어래봐야 캐나다 사람들에겐 “꾸꾸까까” 정도 되는 옹알이에 불과해서 나는 도저히 말을 꺼낼 수가 없다.
그래서 종종 후한 칭찬과 멋들어진 감사의 인사와 함께 스몰톡을 걸어오는 손님들이 있을 때, 나는 웃는 얼굴을 만면에 띠고, 가슴에 손을 얹으며, 지금 당신이 내게 해주는 말이 몽 피투에서 일하는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My pleasure”하고 고개를 연신 끄덕거린다.
인스타그램 릴스를 넘기다가 어떤 사람이 “My Pleasure”라는 표현을 “감사합니다”라고 번역한 것을 보았는데, “내 기쁨”이라는 영어단어 정도야 금방 외울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매일 마이 플레져, 마이 플레져한다. 뭐 그러다가 영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냥 하하 웃는다. 손님들은 왜 이 직원이 내 스몰톡에도 반응하지 않고 무례한 것인지 궁금하겠지만, 그냥 단순히 바보라서 그렇다.
8월 29일 날 한국에 돌아가는 편도 비행기표를 끊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곧 이 나라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