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옷 잘 입는 구멍가게 사장님들
예전에 어떤 사장님이 얘기하기를 자신은 ‘구멍가게 사장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의 가게를 깎아내리거나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가게의 구석구석을 전부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구멍가게. 손님에게 제공하는 흰색 소형 비닐봉지가 다 떨어졌을 때 가게 창고 어느 모퉁이에서 재고를 찾을 수 있는지, 손님이 가게에 대해 묻는 황당한 질문에도 어떻게 척척 대답해야 할지, 손님이 아무리 황당한 요구를 해와도 어떻게 끝까지 웃는 얼굴로 대처할 수 있는지 아는 사장, 그런 사장이 되고 싶다고 했다.
몽 피투의 사장인 T와 J를 보면 저절로 그런 생각이 난다. 그럴만한 사장님들이라고. 가게 메뉴에 들어가는 식사 속 재료 성분 하나하나의 이름을 전부 줄줄이 읊을 수 있는 사장, 가게 직원이 무슨 실수를 하든지 곧장 실수를 바로잡고 해결방법을 아는 사장, 가게에 나오지 않는 휴일에도 직원이 ‘케이크 담는 소형 상자의 재고’가 어디 있는지 물으면 곧장 정확한 위치를 슬랙으로 답변해오는 사장, 그런 사장이었다.
몽 피투에 면접을 가던 날 웹사이트를 읽어봤을 땐 둘 다 회사원이었다가 퇴직을 하고 가게를 차린 모양이었다. 한마디로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우고 전쟁과 다름없는 자영업으로 뛰어든 사장님들. 처음엔 시장 한편에서 작은 노점으로 시작한 가게가 점점 몸집을 키워 어엿하게 지금의 장소에 자리를 잡은 게 불과 4년 전이다. 웹사이트에 올라와있는 가게의 옛날 사진을 볼 때면 4년 전과 참 많은 부분이 달라졌구나 싶다가도, 그 안에 있는 사장님들은 변치 않고 여전하다고 생각하니 재미있었다.
T와 J는 가게에서 하는 일이 정확하게 나뉘어 있다. J의 말에 따르면 오히려 그렇게 분리가 잘되어서 이렇게 잘 동업할 수 있는 거라고 했다. J의 말에 따르면 J는 가게에서 ‘보이는’ 부분의 모든 것을 총괄하고 있고, T는 가게에서 ‘안 보이는’ 부분의 모든 것을 총괄하고 있다. 그러니까, 메뉴 개발, 메뉴 선정, 인테리어, 외관, 손님 응대 등은 모두 J가 맡고 있고, 직원 고용, 직원 교육, 매뉴얼 개발, SNS 홍보, 재무, 회계 등은 모두 T가 맡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둘을 보면 서로 다르면서도 참 잘 맞는 한쌍이라는 생각이 든다.
T와 J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J는 3년 동안 준비한 자신의 의류 브랜드의 론칭을 앞두고 있다. 매일 아침 T와 J는 전날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꾸미고는 가게에 출근하는데, 지난 3개월 동안 같은 옷을 2번 본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다. T와 J의 손목에는 항상 내가 좋아하는 고급 브랜드의 시계가 올라가 있는데, 그 시계만 보더라도 둘의 패션 센스가 남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오늘은 일하다가 T의 신발을 봤는데, 짝짝이로 신고 있는 그의 신발마저 의도한 미감이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그의 패션 센스에 기분이 숭고해졌다.
T와 J는 친구도 많은 것 같다. 같이 일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T와 J가 가게에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 같을 때가 있는데, 그게 꼭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은 게, 어떤 손님들의 이름과 직업, 특징에 대해 물으면 T와 J의 입에선 줄줄줄 이야기가 새어 나온다. P는 이번에 휴가를 간다, S와 S는 둘 다 명망 있는 의사다, P는 항상 뜨거운 라떼를 시킨다 등등.
가게에 있는 물건,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 가게와 연관된 다른 가게들 등등, 몽 피투와 관련해서라면 T와 J는 더할 나위 없는 ‘구멍가게 사장님’이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 최근 J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몽 피투라는 브랜드를 전 세계로 넓히는 게 목표라고 한다. 뉴욕에 한 지점, 파리에 한 지점, 플로리다에 한 지점, 도쿄에 한 지점, 하와이에 한 지점. 앞으로 갖고 있는 20년 계획이라고 J가 말했다.
요즘 나는 론칭할 의류 브랜드에 대해서 J에게 귀찮을 정도로 많이 물어본다. 어떤 옷이 있는지, 가격은 어떤지, 사진을 보여줄 수 있는지 등등. 가격을 들어보면 절대 저렴한 옷은 아닌 것 같은데, 순수 100% 캐나다 생산에다가 내가 캐나다에서 일하는 가게 사장님이 만드는 옷이라고 생각하니 사고 싶어서 가슴이 뛰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아크테릭스가 그렇게 갖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J의 옷을 한 무더기 사서 한국에 들고 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