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여백

by 낙타

요즈음은 돈이 없이 보내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보다 요즘 시기의 나를 제대로 설명하는 말을 찾을 수 없다. 이사를 끝내고 나서 집기와 가구를 사며 어느 정도 두 사람 사는 공간의 구색을 맞추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이 얼마 되지 않는다. 다가오는 박싱데이에 나와 애인을 위해 무언가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여유가 나지 않겠지.

그런 것에 비해 연말 밴쿠버의 하루하루는 파티와 모임 약속으로 가득하다. 내가 속해 있는 밴쿠버 거주 한인들의 오픈채팅방에는 매일 새로운 약속이 잡히고 매일 새로운 파티가 열린다. 나라고 왜 나가지 않고 싶겠는가. 한 번 나가면 50불 가까운 금액의 돈이 깨지니 쉬이 나갈 마음을 먹지 못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돈이 있어야 되니까.

이렇듯 뭔가 여백을 채울 수 있는 친구가 갖고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막상 그런 여백이 없으면은 내 삶이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질소 없이 포장된 포카칩이 쉽게 부서지듯이. 내 삶에도 질소와 같은 여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또 기왕이면 내 삶이 빽빽하게 들어찬 다이제 쿠키 같았으면 하기도 하고.

이사를 하고 집의 구색을 맞추어 온 한 달 동안 내 인생의 목표는 지루함을 즐기는 거였는데, 막상 연말이 되니 지루함을 버티는 게 녹록지 않다. 그나마 밴쿠버 공립 도서관에서 빌려온 갖가지 소설들을 읽고, 애인과 리커샵에서 사온 맥주를 마시며 영화나 드라마 따위를 보고, 최근 시작한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남자친구>의 스토리를 생각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도파민 섞인 얘기가 도는 한인들의 단톡방을 읽으며 여백을 채운다.

이제 상황은 정리되었고 안정도 되었다. 그러니 여유를 찾는 게 다음의 과제다. 이것을 달성하고나서야 비로소 친구 찾기도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