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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안녕하세요, 저는 낙타입니다.

by 낙타

천리길 같은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의 첫걸음은 뭐니 뭐니 해도 자기소개라 믿는다.


안녕하세요, 저는 낙타입니다. 제가 낙타인 이유는 별 거 없습니다. 머리에 작은 혹이 하나 나있거든요.


1994년생이고 현재 워킹홀리데이로 밴쿠버에 거주하고 있어요. 남들처럼 사는 게 목표였어서 가장 무난한 대학을 가서 경영학을 공부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름 있는 대학의 이름 있는 학과를 졸업해서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 평범하게 가정을 일구고 살고 싶었어요. 그러나 글쓰기가 좋았어서 그런지 문학동아리에 들어가 시도 쓰고 소설도 쓰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인생의 방향성이 틀어진 건 우연히 같은 동아리 선배에게 페미니즘을 배우게 되면서부터입니다. 그때 이후로는 인권운동을 하고 퀴어퍼레이드에 나가고 일종의 정상사회의 아웃사이더 혹은 아웃사이더의 앨라이(Ally)로 스스로를 정체화했어요. 관련 공부를 더 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고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무사히 학위과정을 마치고 졸업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미뤄두었던 군복무를 시작했어요. 다른 건 다 몰라도 책을 무진장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모든 일이 2024년 5월에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참 할 일이 없더라고요. 그해 5월은 저의 학업과 군복무를 비롯한 모든 의무와 숙제와 책임이 마무리된 해였어요. 제가 그해 11월에 밴쿠버에 오지 않았다면 저 역시 지금쯤 '쉬는 청년'으로 분류되었을 거예요. 아니면 절박한 심정으로 속아 누군가에게 이용당해 저 멀리 타국에 끌려가거나요. 그들과 저의 상황과 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도 놓은 적이 없는데, 사실 아직은 돌아갈 수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그런 마음으로 여기서 버틴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네요. 언제 죽을진 모르겠지만 아직 3년 더 남았고요.


말씀드렸듯이 저는 군복무 이후로 책 읽는 걸 무척 좋아하게 되어서 밴쿠버에 갈 때도 한국책을 한가득 싣고 갔는데, 생각보다 이곳에서 한국책을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밴쿠버 공립 도서관에 가면 한국책의 좀 때늦은 신간을 크게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답니다. 그래서 쉬는 날이면 공립도서관에 가 책을 빌려오곤 해요.


한국에 살던 페미니스트는 이제 밴쿠버에서 바리스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며 저의 길지 않은 삶에 이런저런 스펙터클이 많았다고 느껴서인지, 아니면 말을 하지 못하고 산 기억이 많아서 그런지, 요즘 글을 쓰고 싶은 것 같아요. 아뇨, 사실 언제나 그랬죠. 여기까지가 저의 자기소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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