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들어 부쩍 쉽게 움츠러듭니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쉬이 눈치를 보고 안절부절못해요. 이렇게 사람이 쉽게 주눅이 들면 반대로 그러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 섣불리 커져서 꼭 대뜸 남에게 짜증을 내게 됩니다. 남의 눈치를 보는 것과 남에게 성질내는 것 둘 다 사실 남을 지나치게 의식해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손님이랑 사장 눈치는 엄청 보면서 애인에게는 퍽 못되게 굴고 있는 요즘입니다. 못났죠.
보다 앞서서 언젠가 애인과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제가 가게 사장을 대하는 태도와 똑같은 것 같다고. 항상 수그리고 움츠러들고 눈치를 살피고 안절부절못하지 못하는 저자세인 것 같다고. 물론 여기에는 제가 단기로 이 나라에 머무는 이민자라는 이유가 크겠지만, 그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좀 지나친 느낌이 없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에게 당했던 따돌림과 외로웠던 시간들은 결국 당사자 몸에 남고 체득되는 것 같습니다. 반복되던 사건은 저로 하여금 어떻게 그것에 대처해야 하는지 학습하게 했어요. 그러니 제가 누군가를 만나든지 간에 그런 저자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저에게 일종의 처세술이자 집단에 속하고자 했던 사회화 과정이었던 거죠.
물론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패턴이었을 뿐이지 그 자체로 항상 부정적이거나 또는 긍정적인 가치를 지니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남의 눈치를 보는 게 때론 조금 더 눈치 빠른 섬세함이 되었고, 남에게 당한 상처는 다른 사람의 상처를 알아차리는 다정함이 되었고, 저의 저자세 패턴은 꽤 자주 다정함이 되어 저로 하여금 쉬이 웃고 맞춰주고 들어주도록 만들었습니다. 저의 나쁜 경험이 오히려 지금의 저의 좋은 점을 만들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네요. 그렇다고 저 또한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남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분명.
저는 누군가에게 있어, 보통 처음 만났을 때 제일 유쾌하고 활달합니다. 애인은 처음에 만난 저를 보고 제가 말이 많은 사람인 줄 알았다고 생각했으니 말 다했죠. 실상은 쉽게 우울해지고 자주 무기력해지는 내향적인 사람인데 말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서로 다른 제 모습이 곧잘 다른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당황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제 모습에 가장 놀라는 건 제 자신이지만요.
저는 제 자신이 일관적인 사람이면 좋겠다고 바랍니다. 둔감하고 평화롭고 여유롭고 예측가능한 사람이면 좋겠다고요. 그러나 실상은 매번 눈치를 보고 계산을 하며 때로는 저자세로, 때로는 공격성으로, 때로는 다정함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죠.
결이 맞는 사람을 찾으라고 하던데, 그렇게 치자면 저의 결은 평탄하고 평평하기보다는, 뾰족하고 둥그렇고 모가 나 있어서 꼭 맞는 친구를 찾기란 참 어렵겠다고 생각해요. 타인에게 닿는 저의 표면이란 이토록 제멋대로에 불규칙하게 생겨먹어서 도통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울퉁불퉁한 표면을 정신과약으로 깎아도 보고 심리상담으로 다듬어도 봤는데 소용이 없더군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아무런 피해도 끼치기 싫어 조용히 물러나있습니다. 유일하게 가까이에서 제 곁에 머무는 애인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들어요.
매일매일의 하루가 예측불가라서 혼란한데, 매일매일의 자신마저 그리하여 꼭 속상해집니다. 제 결이라는 것이 이토록 울퉁불퉁하다면, 이런 결이 다 맞는 친구 한 명 말고 결이 조금씩 맞는 친구 여럿이 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