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니밤을 만들며

‘현재’를 자각하는 방법

by 이세계에이방인


보니밤을 만들어 먹은지가 9년은 된거 같다. 매년 가을 마다 하는 하나의 이벤트 겸 가을 보내기다.

보니밤은 손이 많이 가는 요리이다. 먼저 밤을 물에 불린다. 겉껍질을 까기 위함이다. 겉껍질을 까고 나면 속껍질이 얇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삶는 과정이 이어진다. 적어도 3번은 30분씩 끓이고 행구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속껍질이 벗겨지고 얇아지면서 속껍질의 떫은 맛이 사라지고 밤의 맛이 살아난다. 그리고 설탕을 넣고 끓인다. 단맛에 단맛을 입히는 거다. 밤을 담구던 물이 조금씩 줄어들어 적당한 때가 오면 비로써 ‘보니밤’은 완성이 된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더 걸릴수도 있다. 늘 이맘때가 되면 일주일 내 밤을 까고 삶고 조리느라 바쁜 한주를 보내곤한다.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일주일이나 시긴과 공을 들일 필요가 있을까? 효율적인 면에서 최악이다. 언제나 효율적으로만 진화해온 우리의 DNA에겐 역행하는 꼴이다. 왜 굳이 이렇게 비효율적인 생산을 하는지 나도 알다가도 모르겠다. 시간 대비 비용을 따지자면 사먹거나 다른 대체재로 먹는것이 이득일텐데 말이다.


시간

나는 여태까지 보니밤을 먹어본적이 없다. 내가 만드는건 보니밤 레시피 이지만 보니밤을 먹어본적이 없어 그 맛을 모른다. 어쩌면 보니밤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만든것은 보니밤이 아니라 보니밤의 과정이다.

밤을 수확하기 위해 겨울을 보내고 따뜻한 봄을 거치며 뜨거운 여름을 견뎌내야 한다. 그래야 밤이 열리는 가을이 온다. 매년 내가 가을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다. 계절은 절대 점프하지 않는다.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기다림의 시간까지 보니밤을 먹는 과정이다.


시간은 절대 되돌릴수도 앞당길수도 없다. 시간이 실제로 존재 하는지는 모르지만 항상 한방향으로만 움직인다. 한방향으로만 움직이지만 끝을 향해가는건 아닌거 같다. 기다리면 되돌아 오듯 시간도 되돌아 오는중일지도 모른다.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현재. 그 순환의 고리 속에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일주일동안의 수고스러움이 귀찮음이 아니라 과정을 만들어 가는 시간이다. 1년을 기다리고 1주일을 기다려 1주일만에 사리질 과정 이지만 매년 이 과정들을 기다리고 고통스러움 겪으며 맛있게 함께 즐긴다. 가을 보내는 일종의 나만의 의식이다.


현재를 살아라


현재를 살고있는데 현재를 살라고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다.

언제나 목적, 목표를 쫓으며 살아가다보니 현재란 것이 미래에 대한 하나의 이정표 처럼밖에 보이지 않았다. 현재란것에 자각이 없었다. 매순간 쫓기지만 좀처럼 잡히지 않는 미래. 과거로 되돌아갈수 없듯이 미래는 잡을수 없다. 현재는 과정만 있을뿐 이었다.


고통이든 즐거움이든 어쨋든 과정이라는 시간이 없이는 나아갈수가 없다. 매년 완벽함에 영원히 도달할수 없는 보니밤을 만든다. 내년에는 좀더 나은 맛이 되길 기대하며 최선을 다하며 밤을 깐다.

내가 매년 가을의 현재를 보내는 시간이다. 다시 가을을 기다리며…


#가을 #보니밤 #현재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