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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계에이방인 Jun 09. 2023

내가 성장하는 방법(feat. 사냥)

2023 거제100k

23년 6월 3일 거제100k


2023년 시즌이 시작되고 4월말 korea50k 트레일러닝대회. 2022년 부터 시작된 장기프러젝트. 1년이 지났다. 성과를 떠나서 작년말 부턴 꾸준히 달리는 거리도 늘리며 충분히 운동량과 강도를 쌓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올해 첫 대회인 korea50k에서 순위권은 안되지만 개인기록에 대한 성과를 만들어 보고자 꽤나 노력했다. 하지만 ‘노력’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참담한 결과가 나왔다. 흔히 말하는 현타가 쎄게왔다.


노력하지 않는 인간

나는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너는 한번도 열심히

한적이 없다.‘ ’뭘 해도 안될 놈이다.‘ 그것이 과거의 나의 평가이다. 정말 나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가? 한번도 열심히 하지 않았던가? 몇년이 지나도 수십년 수백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을 고민이다. 분명한건 노력이 백프로 보상 받지 않는다는것만은 분명이 알게되었다. 나는 노력했는데 그들이 말하는 노력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했다. 같이 밤새 술마시는게 노력일까? 목소리 크면 잘하는 것일까? 아부를 잘하면 실력인걸까? 결국 자신과 친하면 다 괜찮은걸까! 이제 ’노력‘이란 말이 무엇인지 의심스러워진다. 나는 정말 노력하지 않는 존재인 것일까.


본능적으로

korea50k에서의 실패 후 다음 대회로 거제100k.

이번엔 정말 노력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특별히 애를 쓰지 않았다. 더이상의 노력도 하지 말고 그냔 지금하는 루틴만 유지하며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100km라는 거리가 부담이 되는건 맞지만 노력한다고 그것이 편해지지 않는다는걸 알았다. 본능적으로 달리기. 의식하지 말고 그냥 본능적으로. 우리의 DNA에는 이미 장거리를 달리는 유전자가 새겨져 있다. 최대한 그 본능을 살려내보는게 이번 대회에서의 전략 아닌 전략이다. 특별한 훈련은 없이 늘 하던데로 새벽 조깅 정도만 10km내외로 달렸다. 딱 그정도만. 준비는 더욱 심플하게 했다. 코스맵은 전혀 보지 않았다. 전체 거리는 얼마인지, 제한시간은 얼마인지, GPS시계도 없이 그냥 표식만 보고 본능으로 달릴 생각이다. 구간별 거리 시간 아무 상관없이 그냥 앞만보고 달렸다.


그리고 거제100k

대회 전 날인 금요일 오후에 반차를 쓰고 집을 나섰다.

이번에는 운이 좋게도 함께할 전우가 있다. 사람의 인연이란게 참 알수가 없다. 작년 korea50k에서 주로에서 함깨 동반주 하다가 헤어졌는데 그게 인연이 되서 여기까지 왔다. 숙소도 안내해주고 밥도 주고 참으로 감사하다. 처음으로 혼자가 아닌 하루를 보내고 잠도 자고 대회장으로 향했다

 혼자가 아니다 보니 기념촬영도 했다. 아침 일찍인데도 날씨가 제법 뜨겁다. 왠지 굉장히 뜨거울거 같은 날씨다.


출발부터 다리가 무겁다. 안 좋은 신호는 아니다. 너무 좋으면 오히려 더 안좋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대부분 최고 기록을 세운 날은 언제나 그랬다. 꽤 더운 날씨만 제외하면 나쁘지 않은 출발 이었다. 무엇보다 이번은 아무 계획없이 기록 상관없이 순수하게 본능으로만 달릴 계획이라 긴장감, 부담감은 일체 없었다. 좀더 나은 기록을 위해 애쓰지 않기. 그것이 전략이다. 그렇다고해서 힘들지 않는건 아니다.

100km이상되는 거리를 달린다는 것은 상식적인건 아니다. ‘비’정상적 이다. 나는 언제나 그 ’비非’ 속에 속했다. 영원히 주류가 될수없는 운명이다. 술을 마실줄 모르니 비주류인건 확실한거 같다. 특별함 보단 유니크한 B급 감성이 좋다. 러닝이 인기가 높다 하지만 울트라 러닝은 비주류에 속한다. 비非상식적인 스포츠다. 뜨거운 날씨에 상식을 벗어나는 긴 거리. 이보다 완벽할순 없다.


’러닝‘이라 함은 달리는 것인데 울트라 러닝은 마냥 달리지 않는다. 풀코스 마라톤의 두배이상 거리에다 울트라 트레일 러닝은 산을 끊임없어 넘어야 한다. 적정한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 쉴때는 쉬어주고 뛸때는

뛰어야 한다. 선두권 선수들을 제외하면 등산과 걷기와 달리기의 조합이 적절한 전략이다.


순위 경쟁과는 무관하게 마이 페이스로 레이스를 풀어간다. 거제100k는 예전부터 높은 난이도로 악명이 높다. 코스도 힘들지만 날씨도 한몫 한다. 작년에는 비가 그렇게와서 높은 난이도를 더 높게 만들었다면 이번에 뜨거운 햇빛이 난이도를 더욱 높인다. 너무 덥다 못해 뜨겁다. 몸에서 열이 빠져 나가지 않는거 같다.

CP2 에서 아이스크림. 일명 쮸쭈바라 불리는 평소에 사먹지도 않는 ‘빠삐코’를 하나 입에 물고 나니 온몸에 열이 식는 기분이다. 한동안 그늘 없는 해안가를 달려갈수있는 에너지가 보충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금새 산길로 접어들면서 업다운의 반복. ‘고통’이라는 두 글자를 뼈속까지 새겨가는 중이다.


빅 이벤트

보통 마라톤 대회 중에는 거의 그럴일이 없지만 트레일 러닝 대회에는 종종 발생 하는 일이 있다. 이것 때문에 DNF(did not finish) 보다 자주 발생한다.*DNF는 일명 경기를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바로 코스이탈이라고 불리는 알바 이다. 알바를 어느정도 해버렸는냐에 따라 그날 경기의 완주가 좌지우지 될수 있다. 나는 아주 지독한 길치이자 방향치다. 한심하게 봐도 어쩔수없다. 그게 내가 가진 능력인건 부인할 필요는 없는거 같다. 늘 알바를 시전 하곤 하지만 항상 운 좋게도 짧게 끝내거나 페이스기 비슷한 누군가를 만나서 알바로 인한 DNF는 하지 않았다. 나는 필수장비중 하나인 GPS 시계도 없다. 내 위치를 확인이 안된다. 스마트폰으로 하면 된다지만 배터리 문제와 넣었다 뺏다하는 일도 지쳐있으면 번거롭다. 일단 시계는 필수로 있으면 좋다. 하지만 나는 없다. 그래도 이번엔 처음부터 같이 달릴 전우가 있었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산속에서 혼자 길을 잃고 있으면 그것만큼 공포는 없다. 하지만 둘이라면 충분히 극복할 힘이 생긴다. 1+1은 2가 아닌 그이산이 된다. 이것이 시너지다. 어려울수록 더 큰 시너지가 생겨난다. 이것은 동료 이상의 전우 이기에 가능하다. 각자 다른 마음으로 왔지만 100km라는 전쟁 속에서 모두 완주라는 똑같은 목표의 승리를 바라본다. 그래서 처음보지만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며 응원해준다. 말도 안되는 소리 같지만 정말 이 세계는 그런 문화가 단단히 뿌리 내려져 있다. 전우이기에 가능하다. 그리고 지금 함께하고 있는 이 친구도 작년 대회에서 도움을 주다 지금 같이 딜리고 있는 친구이자 전우다. 서로 밀고 끌어주며 산 하나를 넘고 다음 CP로 이동중 같이 달리던 전우의 스마트폰이 없어졌다. 서로  멘붕에 빠졌다. 정상에서 부터 줄곧 내가 뒤에서 달렸으니까 떨어졌다면 놓쳤을 리가 없다. 그 어떤것도 떨어지지 않았다. 찾으며 되돌아 가기엔 너무 막막했다. 그래도 찾아야 한다. 요즘 시대에 스마트폰은 본인 그 자체이다. 나도 예전 파미르에서 자전거 여행중 아이팟도 잃어버려봤고 무엇보다 자전거 여행의 기록의 중요한 부분인 속도계를 잃어버려 완전 멘붕에 빠진적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같은 곳. 삘래판 길을 겨우 달려 왔는데 어디서 잃어 버렸는지도 모르는 상황. 나는 길을 되돌아갔다.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는 상황에서 혼자 아무도 없는 사막같은 곳을 되돌아 갈때의 그 절망감. 나는 너무 처절하게 경험했고 잘 알고있다. 아무리 내 물건이 아니지만 멘붕에 빠진 전우를 홀로 보낼수 없다. 같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기억을 되새겨본다. 분명 떨어트린게 아니라면 놔두고 온것이다. 그렇다면 정상에서 앉아서 쉴때 놔두고 온것이다. 어느정도 찾을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지만 거기까지 거리가 상당하다. 또다시 산을 넘어야 하고 이러다 제한 시간 안에 들어올수 있을지, 아니 마지막까지 할수있는 체력이 될지 의문이었다. 그래도 어쩔수없다. 그냔 앞만 보면 달려가야만 했다. 스미트폰은 찾았다. 하지만 너무 멀리 되돌아왔다. 정신과 육체는 지쳐버렸다. 대략 4~5km를 손해 봤다. 산길의 5km면 흠… 좋게 생각하자. 운이 좋다.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우리가 선택할수 있는 최상의 상황이니 말이다. 되돌아가서 못찾았다면 그냥 바로 DNF 했을거 같다. 울트라 러닝의 놀라운 점은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견뎌내면 서서히 회복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도 다음 CP만 생각하며 천천히 전지하며 조금씩 멘탈을 회복해 나갔다.


어둠이 주는 공포

산속에서의 어둠은 공포다. 헤드랜턴이 있다지만 시야가 급격히 좁아진다. 길 찾기도 어렵고 시야가 좁아 달리기도 쉽지 않다.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란다. 벌레들은 끊임없이 얼굴을 공격해온다. 헤드랜턴 때문이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건 바로 잠이다. 졸음이 쏟아진다. 아침부터 밤까지 땀을 흘리며 진이 다 삐지도록 달려온 상태에서 맞이한 깊은 밤. 피로와 어둠에 정신이 몽롱하다.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혹시나 산길에서 넘어지면 대형사고다. 낭떨러지로 떨어지지 않게 정신 차려야 한다. 하지만 정신이 안차려진다. 걷기도 힘들다. 말 없이 불빛만 보며 걸어간다. 수면압이 높아졌을때 견뎌내면 분명 각성하는 구간이 생기는데 도무지 각성하질 않는다. 끊임없이 졸리고 피로하고 정신은 멍하다. 도로가 나와도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분명 누군가 다리를 잡고 있는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을 향해 걸어간다. 의지가 아니라 본능에 가깝다.

어둠을 지니 다시 빛으로

하루가 지난 깊은 새벽. 잠은 쏟아지다 못해 이제는 뒤통수를 후려 갈기는거 같다. 이 고통을 알고 있으면서도 왜 자발적으로 뛰어들었을까. 이제 마지막 산이 남았다. 이 산만 넘으면 그 뒤는 평탄한 길이다. 물론 평탄하지는 않겠지만 지금 이 고비만 넘기면 된다. 어둠과 피로, 잠 그리고 통곡의 벽. 마치 벽을 마주한거 같은 느낌이다. ‘앵산’ 이름부터 독해 보인다. 코스 막바지에 마주한다면 아마 악마처럼 보일거다.

앵산 오르기전 CP에서 컵라면


사냥

지독히도 끝날거 같지 않던 앵산을 넘어오며 마지막 CP까지 평탄한 도로길로 들어섰다. 어둠도 완전히 사라지고 온 세상이 환해지고 있다. 헤드렌턴을 집어넣고 내달리고 싶지만 이미 몸은 진이 다빠진 상태다. 뛰어지지가 않는다. 마지막 CP까지의 거리는 대략 96km다. 4km만 가면 끝이기에 마지막 피니쉬 라인에서 달리기 위해 힘을 이껴두기로 한다.

마지막 CP

거짓말 이길 바랬다. 마지막 CP 도착전 4km만 가면 될꺼란 희망은 도착후 산산히 부서졌다. 아직도 11km나 남았다. 평소라면 천천히 가도 1시간도 안걸릴 거리지만 지금은 다르다. 미리 거리를 확인하지 않은 내 잘 못이다. 100km가 아니라 109km였다. 끝인줄 알았지만 끝이 아니었다. ‘포기’라는 단어가 머리속을 흔들어 놓는 중이다. 준비를 하지 않은자의 최후다. 그래도 포기할순 없다. 완벽한 정답은 없다. 적응하고 대응 하는수밖에 없다. 지금부터 필요한건 육체가 아닌 정신이다. 최상의 선택지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더이상 그런 선택지는 없었다. 그냥 인내력 싸움이다. 닥치고 버티기.


피니시


조용하다. 결승점을 앞두로 또다시 알바를 했다. 어디가 길인지 보이질 않는다. 나만 남겨두고 모두가 떠난듯 하다. 고통스럽고 힘겹게 긴긴 피니시 라인을 달려간다. 언제나 그렇듯 아무도 없을 결승점에선 항상 나를 위해 환호와 응원을 보내주는 누군가가 있다. 100명이든 한명이든 상관없다. 그 힘들이 나를 이끌어준다. 결승점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나는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였다는 것을


사냥

나는 그냥 달리기위해 달린것이 아니다. 사냥이다. 언제나 나를 따라 다니는 망상을 사냥하러 왔다. 일종의 전투에 나선것이다. 이 망상은 언제나 나를 괴롭힌다. 악순환에 빠지게 만들고 나의 두려움과 공포를 먹고 자란다. 가장 약해질때 나타나 모든걸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사라진다. 이 망상에게 지고 싶지 않다. 결승점을 향해 달려오는 도중 나를 향해 환호와 응원 속에서 결승점 앞에 그 망상이 나를 응시한다. 미안하지만 이번은 내가 이겼다. 앞에서 서서 칼을 꽂았다. 눈 앞에서 사리졌다. 그 망상은 나 자신이라는걸 잘 안다. 내가 죽지 않는 한 이 망상은 또다시 살아나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우리는 전투를 벌일것이다. 내가 패배 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승리를 기억하며 또다시 승리하기 위해 더 강해질거다. 삶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끊임없는 성장만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해답이다. 또다른 성장을 위해 난 여전히 고통에 들어가 준비가 되어있다.


#거제100k

#이세계에이방인

#러닝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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