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그리드(Greed) 그리고 아이러니(Irony)
벌써 2018년이 끝나가고 있다. 해가 지날수록 점점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라고 어른들이 말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점점 무슨 말인지 알게 되는 듯하다. 분명 구세군을 본 게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눈이 오고,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이 찾아왔다. 쉴 틈 없이 한 해를 보냈다 누구나 그랬듯이. 그래서 18년도에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볼 겸 글을 하나 끄적여보기로 했다.
연말이 다가오고 사람들을 만나면 안부인사 겸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들과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를 나누면 딱 두 가지 말이 나온다.
'벌써 18년이 끝났네요. 뭐했는지 모를 정도로 빨리 지나간 거 같아요...'
'어?! 그게 겨우 몇 달 전이에요??'
상당히 모순되는 두 문장이 내가 최근 제일 많이 들은 이야기다. 오랜 친구를 만나면 '야 벌써 우리 알고 지낸 지 10년 넘었다', '와 그게 그렇게 오래됐냐??! 시간 빠르긴 하다'라는 말들을 많이 하게 된다. 실제로 하루 일하고 뭐 좀 하다 보면 잘 시간이 되고 일어나면 다음 날이 되어있다. 시간 참 빠르다.
두 번째 말은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많이 듣는 이야기이다. 주말도 없이 하루하루 빠르게 트렌드를 쫓아가다 보니 2년은 지난 것 같은데 아직 4개월도 지나지 않은 일들이 부지기수였다. 이 바닥에 들어온 지 벌써 1년이 훌쩍 넘어갔다. 그 사이에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시장은 점점 곤두박질치고, 개발의 장벽은 높아만 가고, 순위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모습을 보았다. 얼마 전에 이게 뜬다!라고 했는데 다음 달이 되니 망하고 다른 것이 뜨고 있는 이 '블록체인'이라는 분야에서 나 그리고 분야의 모든 사람들이 아등바등 지냈다.
분명 올해 초에는 블록체인은 느리다, 무겁다, 비싸다, 어렵다 이 말들을 연신 거듭하며 더 빠르고! 더 가볍고! 더 싼 비용으로! 누구나 쉽게 이용하는! 블록체인을 만들겠다는 사람들 혹은 프로젝트들이 나왔다. 누구는 용어가 이해가 안 돼서 쩔쩔매는데...
엄청난 외계어들이 난무하고 암호화폐(코인)의 가치는 결국에는 올라갈 것이다! 진짜만이 (우리 꺼) 살아남을 것이다. 진정한 블록체인이 등장했다 등등... 자존감 넘치는 우리의 대표들께서 이리저리 날뛰고 다니셨다. (다들 잘 지내시는지 모르겠다)
본의 아니게 이 바닥에서 6개월을 공부한 시점에서 첫 번째 현타(힘이 쭈욱 빠지는 그런...)가 왔다. 나는 이거 이해하려고 엄청 고생하는데! 옆에 있는 새내기 개발자가 한 달만에 다 이해하고 있던 것. 마주한 그 상황이 너무 서글프기도 했다. '아 학교 괜히 다녔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결국에는 내가 잘하는 동향 파악 이런 게 그분들은 없다는 걸 알고 나서야 사그라들었나.
그러던 중 두 번째 현타가 찾아왔다. 먼저 가격이 빠질 때 이 시장 망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거까지는 멘탈 강화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하지만 사기꾼들이 더욱 영악하게 나왔다. 이건 뭐... 구별이 안되더라. 제대로 하는 곳들도 결국 그런 분들과 접촉하니 비슷하게 보이더라. 지금은 프로젝트들에 관심을 안 가진다. 가질수록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무너지거든...
마지막으로 현타가 최근에 왔다. 음... 표현하자면 정치(?)라고 해야 하나. 정치적으로 하시는 분들이 늘어났다. 뭐 당연하게 협약도 하고 그러는 거 비즈니스에서는 당연하지. 근데 내가 말하는 건 무언가 다른 말로 설명하기 오묘한 그런! 정치를 하는 분들이 지금 보면 전문가(?) 겸손하게는 인플루언서 역할을 하고 계시더라. 이건 부정적이라기보다는 그렇다고...
아무튼 이런저런 고민들이 깊어지는 블로쿠체인이었다. 그럼에도 계속 공부하면서 좋았던 점 또한 있다. 여러 가지 분야를 접해본 것. 경제학에 있는 게임이론이나 행동경제학을 본 것, 기획 마케팅에 대해 접해본 것, 내가 학생의 신분으로는 만나지 못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 것( 너무 좋은 분들이 많다.), 그토록 원했던 컴퓨터 공학에 대한 기초 지식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그 어려운 비즈니스도 따라다니며 보고 배운 것, 어쩌다 보니 디자인도 살짝 새끼발가락만큼 해본 것 등 코딩 빼고 정말 다해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럴 땐 우리 과가 짱인듯... 정말! 다 배운다!! 대신 하나도 모를 수 있다...)
내가 이 바닥에 초년생으로 들어와 가장 인상 깊게 가지고 있는 말이 있다. 모두들 이 기술이 애기 기술이라 이야기한다. 뭔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논의되던 분산 시스템에서 해결하고자 한 문제들... 그리고 비트코인이 나온 지 10년, 사실은 시간은 많이 있었다. 그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기 기술이라 말할 수 있는가? 사실 이 말은 어느 모임에 가서 들었던 말이다. 한편으로는 맞고 한편으로는 틀리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그분도 아직 남아있는 걸 보면 가능성이 있으니까 남아있는 거겠지 생각한다. 로봇산업도 옛날부터 이어졌지만 이제 뛰는 로봇이 만들어질까 말까 하니까.
말이 많아졌다. 결론적으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올 한 해는 블록체인과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지냈다. 몸도 많이 상하고 혼자 끙끙 앓으며 1년을 보냈다. 내년에는 조금 쉬엄쉬엄 해야겠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서든 열정을 표출하는 사람을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사실 이 '열정'이라는 단어는 매우 오묘한 느낌을 준다. 긍정의 의미를 지니고는 있지만 잘못 사용되면 퇴색되기 쉬운... 그런 용어이다. 우리나라에서 '열정 페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나 역시 열정 페이를 강요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대이다.
'넌 어리니까,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
'그래도 그런 일이라도 하잖아요.'
'내가 그래도 월급은 많이 못 챙겨줘도 성과가 나오는 것마다 성과급 잘 챙겨줄게!'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도 힘들다. 나도 이 말들을 너무 많이 겪으며 한 해, 아니 짧지만 계속 들어왔다. 내가 첫 사회인(월급을 받는 기준)이 되고 나서는 '아직 너무 어리니까 분명 무시당할 거야'라는 말을 사실 많이 들었다. 정말 당연하게 생각한 나도 이상하다. 그렇게 1년을 버텼다. 그래도 내가 기여한 것에 대해 보상은 받았으니까. 이렇게 나 혹은 주변 사람들을 보면 열정으로 무장한 열정 페이를 당할 바보들이 많이 보였다. 진절머리가 벌써 나면 안 될 텐데(?) 벌써 지쳐버렸다.
열정의 긍정 의미로 다시 생각해보자.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는 건 매우 보기 좋다. 그만큼 하는 이유가 있고, 얻고자 하는 것이 있으니까 하는 거겠지 퐈이아!
나 또한, 열정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많이 접하고 인사이트를 넓혀가니 너무 좋았다. 이 열정이 금방 식지 않기를 계속 바라고 앞으로도 바라고 있다. 하지만 열정이라는 포장 안에 속이 상해 있으면 안 된다. 무슨 말이지?라고 느낀다면 '콩코드의 오류'를 생각해보면 된다. (뭘 또 거창하게 하시려고....)
콩코드의 오류라는 말이 있다. 콩코드 여객기라고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 합장품인 비행기가 있다. 아주 빠르게 지구를 돌아다니게(?) 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시작한 프로젝트지만, 결과는 아주 처참했다.(물론 세계 최초의 초음속 비행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인정하지 못한 그들은 지속적으로 투자를 하고 계속 운항을 했다. 만성 적자, 이렇게 말하면 된다. 좌석도 100석 정도인데 연비는 최악, 소음은 최상이었던 이 프로젝트는 사고가 있고 나서야 마무리가 된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콩코드의 오류는 잘못된 걸 알면서도 억지로 붙잡고 있지 않냐는 거다.
'나는 열정을 가진 사람인가, 콩코드 여객기처럼 오류에 빠진 사람인가?'
이 생각을 계속하고 있는 한 해이다. '나는 열심히 했으니 앞으로도 열심히 해야 돼!'라고 생각해서 나 자신을 혹사시키고 늪에 빠뜨리는 건 아닌지 혹은 내가 열정으로 무장하고 아직까지 잘 견뎌내서 나아가는지 너무 헷갈린다...
올 한 해는 고민과 일만 하다가 보내는 해로 기록될 듯싶다.
최근 제일 바쁜 시기에 넷플릭스에 빠졌다. 넷플릭스를 결제한 이후 시리즈를 꺼려하는데(한 번 보면 다 봐야 하는 습성을 본인은 잘 알고 있다) 정말 우연히 '강철의 연금술사'가 새로 풀려서 나왔다. 강철의 연금술사나 보면서 도시락이나 먹을까?(엄청난 고통을 안겨주는 신호탄이었다. 야호!) 하다가 회사에서 날을 새면서까지 시청을 하였다. 5개의 시즌으로 구성돼있던 만화를 정말 5일 만에 다 봤으니 얼마나 열심히 시청했는지 상상이 갈 것이다.
강철의 연금술사를 보면 악당이 8명이 대표적으로 나온다. 제일 사기 캐릭터(우리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각각 하나의 욕망을 이름으로 가지고 있다. 신은 인간에게 7가지의 죄를 선물했다. 각각 교만(Pride), 질투(Envy), 분노(Wrath), 나태(Sloth), 탐욕(Greed), 식탐(Gluttony), 그리고 색욕(Lust)이다. 이 7가지 대죄를 강철의 연금술사에서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완벽하기 위해서 자식들에게 하나씩 물려준 호문클루스이다.
신이 인간에게 7가지 죄를 줬다면, 나는 어느 죄를 많이 가지고 있을까?
곰곰하게 생각을 해보니 나는 다른 것보다 탐욕(Greed)과 많이 닮은 느낌이었다.(만화에서 나오는 그리드처럼)
7가지 중에 한 해를 돌아보니 나는 탐욕스러웠다. 일을 하고 싶었고,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공부를 뒤처지지 않게 하고 싶었고, 자격증을 따고 싶었고, 운동을 하고 싶었고, 연애도 하고 싶었고, 커피도 배우고 싶었고, 여행도 많이 가고 싶었다. 너무 많지만 다 이야기하기엔 너무 많다.
아무튼, 이렇게나 많은 것들을 하고 싶어 했고, 지금도 원한다. 자격증을 지금 딸 이유도 없는데 시험을 치고, 힘들게 안 해도 되는 것을 더 깊게 파고들어 힘들게 했다. 물론 그만큼 빨리 알게 되고 빨리 성장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강철의 연금술사에서도 그리드는 욕망에 가득 찬 왕자와 한 몸이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싶은 그 욕망. 그 욕망으로 인해 반대로 좁은 안목을 가질 때고 있고, 더 빨리 눈치채기도 했다. 나도 같은 것을 겪은 게 아닐까? 모든 분야를 다 알고는 싶지만 너무 많은 양으로 인해 오히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고 좁은 시야만을 가지고 움직인 것은 아닐지... 우선순위를 아무리 메겨도 결국 갈피를 못 잡으니 닥치게 되어서야 하게 되는 아이러니... 나는 올 한 해 너무 탐욕스러웠다.
블록체인, 이 정도 공부하면 나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절대 아니었다) 열심히 하면 그만큼 나에게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줄 알았다.( 현실은 허덕인다) 탐욕스럽게 책도 사고, 강의도 끊고, 책도 제본 다 하면 정말 1주일에 한 강의씩 돌파할 줄 알았다.(강의의 비즈니스는 노쇼에서 시작된다)
아 정말 탐욕스러웠구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년에는 안 이럴 거지..? 솔직히 모르겠다. 그래도 최대한 여유롭지만 할 목표를 하나씩 깨부수는 그런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앞으로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다. 하루하루조차 정답은 없고, 누군가가 부럽고 또다시 욕망에 불타오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얼마 전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우리는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와 나를 비교하려 안 한다.
우리는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와 같이 잘 사는 사람과 비교를 하지 않는다.
비교가 힘든 이유는 멀리 있는 공감대가 없는 사람이 아닌 내 바로 옆, 혹은 엄친아(혹은 딸) 때문에 비교를 당한다.'
책에서 이 글을 보고 나서 다시금 정신을 차리긴 했다. 아 내가 힘든 이유는 아직 누군지는 모르지만 주변과의 비교 때문에 더 힘들어하고, 더 열심히 하려고 한 것도 꺾이게 되니까 그런 거였다.
나름 마이웨이 정신(?)으로 둘러싼 나 자신이 겁쟁이 같지만 너무 서두르지는 말도록 노력해야지. 열심히 사는 2019년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