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스물 아홉

일촌 공개하고 싶은 글

실패이력서_11

by 핫쩡

실패 이력서라는 주제로 글을 쓰려고 하다 보니, 막상 내 인생 29년의 시간은 너무 짧았다. 한국 나이로 스물아홉이지만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아 만으로는 스물일곱에 지나지 않은 내 인생에 뭐 얼마나 큰 실패들이 있었을까.


생각보다 내 인생에 글로 쓸만한 임팩트 있는 실패들이 별로 없다고 느꼈을 때, 아는 언니가 연애 실패담도 써보라고 했다.


지난 시간 동안 꽤 여러 번의 연애를 했고 많은 이별을 했다. 그런데 나는 내 연애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연애 실패에 대한 글은 쓰고 싶지 않았다.


물론, 위의 이유는 표면적인 이유이고 진짜 이유는 연애 이야기를 쓰는 건 좀 부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전 남자 친구들과 헤어지며 배운 것들도 있고 깨달은 것도 있기 때문에 그 이후에 더 좋은 연인 혹은 반려자를 만난다면 연애의 실패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재 나는 남자 친구가 없다.


최근의 연애를 끝내며 너무 속이 시원하고 후련했다. 그리고 당분간은 연애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연애를 거듭할수록 나에게서 내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의 연애 스타일은 마치 독불장군이었다. 내 멋대로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그랬더니 연애의 지속기간이 길지 않았다. 그래서 이십 대 초중반 이후로는 남자 친구에게 배려하며 맞춰주는 것에 많은 노력을 했다.

그랬더니 청소를 좋아하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난 후 청소에 대한 강박이 생기고, 주식에 큰 관심을 둔 남자 친구를 사귈 때는 주식차트를 보는 게 내 일상이 되었다.


청소를 잘하고 주식과 재테크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는 삶은 물론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근데 나는 뭔가 내 모습을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당분간은 연애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요즘 나는 운동에 심취해있다. 관절이 아픈데 걱정인 건 아픈 게 걱정이 아니고 운동을 원하는 만큼 못하게 되어 걱정이다. 그만큼 운동이 너무 재밌다. 근데 만약 내가 누군가와 연애를 하게 되면, 근데 그 누군가가 운동하는 시간보다 자기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려달라고 요청하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나는 연애할 때 상대방에 너무 푹 빠져버린다.


이 이야기를 친한 언니에게 했더니, 혼자서 단단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혼자서 단단하지 않아서 마음 한가운데 빈 공간이 있고,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는 거라고. 그래서 누군가 들어왔다가 나간 자리를 또 다른 사람으로 자꾸 채우고 싶은 거라고. 이 말에 반박할 수 없었던 것은 나는 실제로 끊임없이 연애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혼자서 단단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깊게 생각했다. 그런데 혼자서 단단해지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내가 진짜로 혼자서 단단해지고 싶은 것 인지 아니면 연애를 하다가 또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 방어기제로서 '혼자서도 잘해요', '혼자도 괜찮아요'라는 프레임을 내게 씌우고 싶은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사실 누군가 들어왔다가 나간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우려고 하는 건 나쁜 게 아닐 수 있다. 나는 사랑하는데 에너지를 듬뿍 쓸 수 있는 사람이고 누군가의 곁에 있는걸 행복해하는 사람이라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되는 일이다. 근데 이렇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게 혼자서 단단해지는 것만큼 어렵다. 아마도 내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나와 현실의 나와의 간극을 아직 내가 인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연애를 수 없이 해봤어도 새로운 연애 앞에서 두려움을 갖게 되는 걸 보면, 어쩌면 내 연애들은 실패한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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