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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일상 - 한 여름의 일본 여행 편 1

첫째 날, 요도가와 불꽃놀이

by 완소준

나도 드디어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무겁거나 진중한 글부터 적기엔 살짝 부담이 되어 어떤 글을 써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번 여름 민이와 다녀온 일본 여행을 가볍게 공유해보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 여행을 다녀오니 특별한 내용이 있을까 싶다가도 우리만의 매력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무더운 8월 일본으로 떠나다니. 하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회사원인 나는 업무 일정만 잘 조정한다면 자유로이 연차 사용이 가능하다.

민이는 프리랜서다. 프리랜서는 쉬고 싶을 때 쉬고, 일 하고 싶을 때 일 할 수 있다고들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오히려 반대다. 연주나 수업이 몰릴 시기에 맞춰 일해야 한다. 물 들어왔을 때 열심히 노 저어야 한다.

언젠간 물을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지도 않을까!? 각각 일장일단 중 장만 섞어서 회사랜서 하고 싶다.


아무튼 쭈욱 바쁘다가 8월 초 조정 가능한 일정들만 있는 잠시 여유 있는 기간이 생겼다.

8월의 일본은 불지옥이라기에 함께 잠시 망설였지만 다시 오지 않을 800엔 시대에 일본 여행이 너무나 가고 싶었기에 애써 걱정을 뒤로한 채 항공권을 예약했다.

애니메이션에서 본 일본의 여름 풍경을 애써 떠올리며 나름의 매력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근거 없는 희망을 가졌다.

그래서 여름에 갈만해?라고 묻는다면 몇몇 관광지 빼고는 충분히 즐겁게 다녔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물론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고 날씨만 좋다면 어디든 좋지 아니하겠지만.


도쿄, 오사카, 홋카이도, 후쿠오카 등 여러 후보에서 오사카를 선택한 이유는 딱 하나다.

맛있는 거 먹는 게 세상에서 최고인 민이가 제일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미식의 도시라길래.


준비(대충 행복한 상상과)

어디 갈 때 자세하게 계획하지 않는 편이다.

현생이 고달플 때 잠시 환기시키기 위해 구경하고 싶은 곳, 가보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곳 등등 정보들을 검색하고 구글 지도에 즐겨찾기만 해둔다.

현지의 상황이나 동선, 기분 혹은 컨디션 보고 움직이는 게 낫지 않은가 싶어서다.

물론 미리 꼭 예약이 필요하다는 건 하는 편이다. 하지만 예약으로 그날이 묶여버리는 게 내키지 않긴 해서 내가 만약 돈이 아쉽지 않은 부자라면 이것조차 하지 않을 것 같긴 하다.

민이는 반대다. 엑셀로 그날 어디 어디 갈지 정리해두지 않으면 불안해하긴 했지만, 정리하긴 또 귀찮은지 단념하는 편이다.


준비 1. 숙소 예약

준비 2. 구글 지도에 캡처하기

준비 3. 유니버설 스튜디오 예약 (닌텐도 월드 확약권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안 샀다. 입장권만 구매)

준비 4. 히라가나 가타카나 외우기

식당이든 쇼핑몰이든 관광지든 우선 저장!

오전: 출발

아홉 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렇게 일찍 가야 할지 생각 못했고 첫차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짐도 전날 밤에 다급하게 챙겼다.

사소한 유심 이슈를 해결한 후에 커피 한잔과 빵 한입 베어 물고 졸린 눈을 비빈 채 비행기에 올랐다.

들뜬 마음에 잠이 오진 않았지만 억지로 눈 감고 에너지를 채우다 보니 어느덧 간사이 공항에 착륙했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앞으로 나갔다.

입국장으로 가기 위해 모노레일을 타야 했는데 어차피 줄이 기니 차분하게 천천히 나가자고 민이를 꼬셨다.

텅 빈 모노레일을 타고 꼴찌로 입국장으로 들어서니 시장 바닥이 따로 없었다.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많다고 느낀 순서)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공항 직원이 손으로 직접 여권 확인하는 입국 심사 모습을 보고 살짝 실망했다.

간사이 공항 모노레일? 승강장

입국 심사를 지나 이미 덩그러니 나와 있는 캐리어를 찾아 공항 건물에서 간단히 규동을 먹고 ATM기에서 현금을 뽑았다. 트레블월렛은 분홍색 '이온 ATM'에서 현금 뽑아햐 한다고 해서 분홍색을 찾아 헤맸다.

(2층 식당 스트리트 건너편 구석에 있다.)


지하철 타는 곳으로 가기 위해 공항 밖으로 첫 발을 내디디니 숨이 턱 막힐 더위 긴 했다.

하지만 서울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다만 여기저기 물을 뿌리니 더 습한 호흡이 쉬어졌다.

외국인,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이 여기저기 섞여 있는 매표소로 보이는 곳에서 이코카 카드를 사고 아까 뽑은 현금으로 충전했다. 실내 매표소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갈 필요 없다. 몰라서 눈치게임을 얼마나 했는지.

미리 좀 알아갔으면 좋았을 걸.


예약한 숙소는 우메다에 있었다. 간사이 패스나 하루카 기차를 미리 예약하질 못했다.

언젠간 해야지 계속 미루다 결국 못하기도 했고, 관광지 들리기 미션 굴레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하루카가 아닌 일반 전철을 타서 그런가 일본 현지인들이 더 많이 보였다.

바깥 풍경을 보며, 전철 안의 광고판을 겨우 외워간 히라가나, 가타가나로 읽어가며 가니 금방 시간이 지나갔다.

그래도 하루카 보단 시간이 더 걸리긴 했지만 '매화 매', '밭 전' 한자 찾아가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우메다에 도착했다.

음식점과 상점들이 가득한 미로 같은 우메다의 지하상가 거리를 지나 세 시반쯤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는 생각보다 너무 좁았지만 깔끔하긴 했다.

사실 숙소가 너무 좁다고 나는 구시렁댔는데 민이는 '잠만 잘건데 이 정도면 됐다. 숙소에 돈 쓰기 아깝다'라고 나를 계속 달래니 사람 마음이란 게 좁은 숙소가 나름 괜찮아 보이기도 했다.


오후

올림픽 배드민턴 한일전을 보며 한숨 돌린 후 우메다 지하상가에서 일본어로 첫 주문과 함께 회 한점 먹으며 일본과 가까와졌다.

작은 맥주 한잔과 첫 음식

비쌌던 햅파이브 관람차를 차마 타지 못한채 구경만 하고, 거리의 유카타 입은 사람들의 흐름을 한번 쓰윽 살펴봤다.

왜냐하면 오사카 요도가와 불꽃축제가 있는 날이었다.

오늘 축제가 있다는 건 미리 알고 왔다. 다만 어디 가서 자리 잡고 구경해야 할지 딱히 정해 놓지 않았다.

'어디로 가야 할질 모르겠지만 괜찮겠군'이란 생각이 들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러 유카타를 입고 나막신을 신고 또각또각 다녔다.


이들을 따라가자 라는 계획과 함께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민이와 유심히 살펴봤다. 강 근처에서 불꽃이 터지기에 강변으로 가야 한다는 건 알았다.

전철을 타러 우메다역으로 갔고, 많고 많은 승강장 중 유카타 입은 사람들이 제일 많이 향하는 전철을 탔다.

사람들이 너무 북적이는 곳에 갈 용기는 나지 않았고 적당히 잘 보이는 곳에서 보고 싶었다. 이내 몇몇 사람이 '나가쓰'라는 역에서 내리길래 따라 내렸다.

역의 모양, 역 앞의 공원과 편의점까지 이색적이면서도 한국에서도 느낄 수 있는 정겨움도 있는 게 오묘했다.


출구와 공원 사이 편의점에 축제를 위한 음식과 음료를 파는 가판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민이와 공원에 앉아 시원한 아이스크림 먹으며 삼삼오오 공원으로 모이거나 어딘가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다시 살펴봤다.

지도를 보니 다들 강변 쪽으로 향하는 것 같아 따라 걸어갔다.

들떠 보이는 한 무리를 따라 계속 걸어가다 보니 웬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행렬에서 멈추거나 기다리는 걸 경찰들이 제지했다. (계속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인파가 너무 많아 보여 다리 건너 강북으로 건너갈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따라 다리에서 내려와 다시 방황했다.


여의도 불꽃축제 명당도 잘 못 찾는데 그때서야 타지에서 준비도 없이 명당 찾을 딱히 방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이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 다시 한번 무작정 따라가기로 하고 그저 따라갔다.

골목길을 따라 맨션들 사이를 걷다 보니 닭튀김, 꼬치 파는 포장마차들과,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동네 한복판이 보였다.

여기다 싶어서 민이와 나도 대충 자리 잡고 닭튀김을 먹으며 기다렸다.

사실 몸도 마음도 지쳐 큰 기대하지 않고 바닥에 앉아 기다리던 중 환호소리와 함께 불꽃이 보이더니 펑-펑-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와.. 아름다웠다. 한국에서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불꽃 구경과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뜨거운 한 여름밤의 불꽃, 소리만큼은 시원한

멋진 광경도 마음에 들었지만 민이와 함께 고민하고 고생하며 결국엔 성공했다는 거에 대해 재밌고 더 기분이 좋았다. 미리 좀 준비하면 좋았을 텐데 왜 하지 않는 걸까.

나가쓰역에서 내려서 돌고 돌아 파란 부분에서 구경했다.

축제가 마친 후 혼잡할게 두려워 민이를 꼬셔 중간에 나왔다. 돌아오는 길과 처음 마주한 공원에서도 삼삼오오 모여 불꽃놀이를 보는 주민들이 보였다. 아직 번잡해지기 전의 전철을 타고 우메다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와 메론빵을 샀다.

나에겐 딱 맥주 한 캔의 체력만 담겨 있었다.

긴 하루였지만 나름 나쁘지 않은 첫 시작이었다.

다음날은 좀 덜 고되길 바라며 더 놀길 바라는 민이의 눈치를 애써 무시한 채 잠들었다.


마무리

인천 공항 -> 간사이 공항 -> 우메다 -> HEP FIVE -> 나가쓰역 -> Osaka, Kita Ward, Ōyodokita, 1-chōme−5 ->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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