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운전엔 클래식 / 6.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D장조 Op.35
길지만 벌써 끝이 보이는 설 연휴가 지나가고 있다. 친척들에게 명절 인사드리러 가거나 어디 놀러 가기 좋으니 운전하는 시간도 평소보다 더 많아진다. 함께 가는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가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한다.
번갈아 가며 운전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 집 메인 드라이버는 민이다.
그래서 나는 선곡하는데 좀 더 힘을 쓰는 편인데 세월이 지날수록 새로운 노래보단 시간이 지난걸 자꾸 듣고 싶어 지게 되는 것 같다. 인기 차트를 보며 최신곡을 들으려 해 봐도 귀와 마음에 꽂히지 않는다거나 자꾸 옛날 노래가 듣고 싶어진다.
그중 가장 자주 듣고 제일 좋아하는 개리나 리쌍은 너무 많이 들어서 교가나 군가도 잘 외우지 않던 내가 가사도 어느 정도 외울 정도다. 하지만 이제 신곡은 나오기 힘들어 보인다.
이렇게 선곡을 헤맬 때가 있다. 이럴 때 좋은 게 클래식이 아닐까 싶다.
먼저 곡들이 웬만한 가요보단 길기 때문에 흐름의 끊김 없이 쭉 운전하며 듣기에 좋은 거 같다.
그리고 클래식은 잠들기 좋다고들 해서 운전과 어울리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관심이 있거나 추억이 있거나 혹은 좋아하는 음정이나 리듬이 있는 곡이라면 마냥 졸리지 않는 것 같다.
클래식은 긴 운전의 친구가 되어주거나 음악 감상하며 동시에 교양도 쌓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퇴근 길이 겹쳐 민이와 함께 차 타고 집에 갈 때가 주에 한두 번 있다. 그 시간이 클래식과 친해지기 딱 좋은 시간 같다. 곡도 추천해 주고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옆에서 해준다면 이보다 더 좋은 선택지가 있겠는가.
보통 오케스트라의 시작이 서곡이란 이야기를 듣고 지금까진 서곡들을 들었다. 시대 별 서곡 특징에 꽂혀 여러 서곡들을 들어보며 '아, 특징을 캐치해 내기 어렵구나. 그나저나 이 곡이 그 곡이었구나'를 몇 번 느꼈다. 이젠 협주곡이 궁금해져 민이에게 추천받았다. 이리저리 고민하더니 아무래도 본인의 악기인 바이올린 협주곡을 선택했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협주곡은 보통 3악장으로 구성되는데, 1악장만 이야기해보려 한다.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의 위대한 작곡가다. 그는 대중적인 성공을 많이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위기와 우울증으로 삶이 지속적으로 흔들렸다. 동성애 성향 역시 고통이 되었을 것으로 분석되어 왔으나 동성애가 그의 삶과 음악에 미친 영향이 과장되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상당한 미남으로 보인다.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이 곡이 작곡되기 전에 동성애자임을 숨기기 위한 결혼이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그의 제자 요지프 코데크의 도움과 교감을 통해 불과 한 달 만에 완성시켰다.
다만 차이코프스키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아니기에 바이올린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 연주 난이도가 정말 높다고 한다. 당시엔 연주하기 무척 어렵고 난해한 작품이었지만 지금은 널리 연주되고, 실기시험과 오디션 시험곡으로도 연주된다고 한다.
오케스트라 반주로 시작되어 독주 바이올린이 제1주제를 연주하고 곡이 흘러가다가 클라이맥스가 펼쳐지는데 정말 정말 매력적이다. 그 후에 카덴차로 진입한다. 화려한 카덴차를 마친 후 비슷하게 흘러가다가 아쉽게도 클라이맥스는 다시 들려주지 않고 1악장이 마무리된다. 화려한 바이올린과 기세 넘치며 멋있는 관현악의 조화가 어우러지는 것 같다.
위에서 말한 카덴차는 민이의 설명 덕분에 처음 알았다. 협주곡에서 반주를 멈춘 동안 화려하면서 기교적인 연주를 통해 독주자의 역량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한다. 작곡가가 비워둬 연주자가 작곡하거나 즉흥연주하기도 하고, 작곡가들이 직접 카덴차를 넣어 작곡하기도 한다고 한다.
다른 설명들도 들어보자면, 먼저 보통 협주곡은 독주자가 연주했던 메인 멜로디를 오케스트라가 다시 연주하는 흐름이라고 한다. 특히 이 곡은 로맨틱함의 끝판왕이라고 생각된다고 한다.
우선 1악장만 들어보라고 한 이유는 아직 어렵기도 하고 여러 연주자의 곡을 들어봤으면 해서라고 한다.
협주곡은 협연자(연주자)마다 다르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곡의 해석이나 기교에 따라 다 다를 수 있다.
곡을 해석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큰 틀 안에서 음악적으로 쥐었다 폈다 표현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알레그로의 범위나 해석도 연주마다 다를 수 있다.
물론 음악세계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받아들이는 건 사람마다 다르다고도 빼먹지 않고 이야기해 줬다.
그래서 설 연휴 집으로 돌아오는 귀성길(그래봤자 한 시간 남짓)에서 세 곡을 들어봤다. 역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템포나 힘이 다른 거 같기도 한데?'라는 느낌이 조금 있었는데 신기했다.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연주자의 협주곡을 듣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걸 물어봤다. "1악장만 18분이 넘는데 보면대 없이 저걸 다 외워?"
당연히 다 외워야 한다고 한다. 물론 실기 시험과 오디션에서는 대중적으로 시키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꼼수로 외우기도 하지만 연주는 무조건 다 외워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무대에 오르지 않더라도 외우는 걸 추천한다. 그 이유는 악보 읽는데 급급하지 않고 다른 걸 더 신경 쓸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분 부분을 다 이어서 런 스루 하는 연습과 그걸 끌고 가는 체력도 중요하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6분 남짓 피아노만 쳐도 첫 시작은 힘차게 시작하는데 뒤로 갈수록 손가락과 건반 그리고 음이 심각하게 뭉개지는 내 모습을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면서 악기 연주자들은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느껴졌다.
아무튼 많이 연습할수록 노래를 외워 부르는 것처럼 연주도 저절로 외워진다고 한다. 연휴 끝나고 민이도 열심히 연습하겠지?
애절하고 화려한 바이올린 연주와 폭발적인 오케스트라가 함께 만든 멜로디는 정말 매력적인 것 같다. 덕분에 차이코프스키라는 작곡가에 대해서도 간략히 알게 되었는데 그의 다른 곡도 한번 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