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이슈들과 함께한 미국 입국
민이의 짐 점검과 준비 검사를 마친 뒤, 우리는 부랴부랴 오후 다섯 시쯤 집을 나섰다. 공항 리무진을 탈까 잠시 고민했지만, 변수가 적은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서울 동남쪽 끝에서 인천공항까지 한 시간 오십 분이나 걸리는 길이었다. 큰 캐리어 두 개에 작은 캐리어 하나까지 낑낑대며 끌고 가야 했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특히 공덕역에서 내려 공항철도로 갈아탔을 때, 나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부터 모든 게 여행으로 확실히 넘어간 느낌이었다.
하와이안 항공이 있는 제1터미널에 저녁 여섯 시 반쯤 도착했는데 한산했다. 공항은 보통 오전에 붐비고 저녁에는 비교적 여유롭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었고, 인천공항 홈페이지에서 시간대별 출국장 혼잡도도 미리 봤었다.
목적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녁 출국도 꽤 괜찮은 선택인 것 같다. 아침 비행기는 새벽같이 일어나야 하지만, 늦은 출국은 비교적 여유롭게 공항에 도착할 수 있고, 덜 붐비는 공항의 활기차지 않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게 괜찮다.
미처 챙기지 못한 칫솔과 치약을 급하게 산 뒤, 하와이안 항공 카운터를 찾아 체크인을 했다. 그런데 대기 줄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바로 옆 동남아행 비행기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LA행은 한산하기에 비수기라 아무도 안 가는 건가, 혹시 '눕코노미'를 해볼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기대를 잠시 품어보며 출국 심사를 마쳤다.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 빵을 하나 먹으며 깜깜한 창밖에 불이 켜진 비행기들을 구경했다. 이제 이 비행기만 타면 떠난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그때부터 슬슬 졸음이 밀려왔다. 시차 적응을 위해 민이와 앉아서 계산해 봤는데 이륙 후 한 시간쯤 지나서 잠드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꾹 참고 버텼다.
빨리 타고 눈을 붙이고 싶었지만, 예상치 못한 연착이 발생했다. 60만 원짜리 저가 항공권이었기에 우리는 시애틀에서 환승을 해야 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환승 시간을 네 시간 정도로 여유 있게 잡아 두었었다.
그런데 출발이 한 시간 정도 늦어지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미국 입국 심사도 변수였고, 수하물을 찾아 다시 부쳐야 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최소 두 시간 반 정도의 여유는 있어야 마음이 놓을 것 같았다.
그리고 환승 여유 시간이 딱 그 정도로 줄어들었을 무렵 비행기는 드디어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하와이안 항공 특유의 하와이 배경음악이 꺼지고, 비행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활주로를 달렸다. 이륙하자마자 복도 건너편의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혹시 잠을 못 자는 건 아닐까 잠시 걱정했지만, 신기하게도 생각보다 거슬리지는 않았다.
기내식을 빠르게 먹고 곧바로 잠들려고 애썼다. 하지만 들뜬 마음과 불편한 좌석이 함께하니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한 시간에 한 번씩 깨면서도 여섯 시간 정도는 잔 것 같다. 열 시간에 조금 못 미치는 비행 끝에, 더는 잠도 오지 않고 빨리 땅에 내리고 싶어질 무렵 드디어 미국 땅에 도착했다.
시애틀 타코마 공항이 경유지였는데, 여기서 입국 심사를 받고 최종 목적지인 로스앤젤레스로 가야 했다. 생각해 보니 텍사스 오스틴 출장 갈 때도 어디에선가 환승했는데 똑같은 절차였다.
아무 생각 없이 비행기 뒷부분 좌석을 골랐는데, 앞에서부터 내리니 비행기에서 나가는데도 한세월이었다. 좌석 선택할 때 무수히 많았던 좌석 선택 화면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환승 비행기는 최대한 앞 좌석을 골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유지는 시애틀 타코마 공항이었다. 이곳에서 입국 심사를 받고,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가야 했다. 생각해 보니 오스틴 출장 때도 비슷한 절차를 거쳤던 기억이 났다.
아무 생각 없이 비행기 뒷좌석을 골랐는데, 앞에서부터 차례로 내리다 보니 비행기에서 빠져나오는 데 한참이 걸렸다. 좌석 선택 화면에 끝없이 펼쳐져 있던 빈자리들이 떠오르며, 환승이 있다면 무조건 앞 좌석을 골라야겠다고 다짐했다.
짐을 찾고 시계를 보니 거의 오후 네 시였다. 환승 비행기는 다섯 시 반 출발. 괜히 마음이 급해졌다. 입국 심사 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지만, 타코마 공항에서 환승을 어떻게 하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사실이 은근히 불안을 키웠다. 하지만 미리 준비한 게 도움이 된 게 있었다.
출퇴근길이나 일하다 지칠 때 읽던 잠깐잠깐 읽었던 미국 여행 후기에서 우연히 본 *MPC(Mobile Passport Control)*였다. 출국 전에 MPC 어플을 핸드폰에 다운로드하여서 입국심사 준비를 했었다. 어플이 안내해 주는 데로만 따라 하면 어렵지 않다. 입국 심사 줄에 계신 공항 직원에게 MPC를 했다고 말하자 거의 맨 앞으로 안내해 주었다.
미국 내 이민 단속이 강화됐다는 뉴스를 보기도 했고, 여행 기간 중 호텔 예약이 다 안되어 있는 게 찔려서 괜히 긴장했지만, 심사관은 친절했고 질문도 어렵지 않았다.
“LA에 여행 간다.”
“현금은 30달러, 카드 있다.”
“음식은 없다.”
짧은 대답 몇 번 끝에 드디어 미국 입국 도장이 찍혔다.
Exit to Seattle 화살표의 반대 방향으로 가면 머지않은 곳에 다시 짐을 부치는 곳이 있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한인 아주머니가 굉장히 초조한 얼굴로 환승 비행기 놓칠 거 같다고 이야기를 하셔서 줄을 양보해 드렸다. 아마 우리가 탈 17시 LA 행 비행기의 앞 비행 편을 예약하셨나 보다 싶었다. 어떤 직원이 그 아주머니를 포함해서 뒤에 줄 서 있는 우리를 포함한 몇 명을 전부 따로 오라고 한 후에 따로 짐을 벨트에 올려줬는데 이렇게 부쳐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믿고 그냥 갔다. (우리가 탈 비행기의 앞 비행기에 실리면 어쩌려고..)
짐을 다시 부치고 보안검색을 다시 받았어야 했는데, 내가 보안 검색에 걸렸다. 비행기에서 받은 캔사이다를 가방에 넣고 깜빡했던 것이다. 보안 검색에 걸리면 당황하지 말고, 내 가방도 만지지 말고 그냥 옆에 서 있으면 된다. 캔 사이다는 뺏겨서 버려지고 가방을 돌려받은 후 이제야 타코마 공항에 들어왔다.
환승 게이트부터 찾자는 민이의 말에 전광판을 확인했다. 종이 티켓에 적힌 게이트와 다른 번호가 떠 있었다. 전광판을 믿는 게 맞겠다 싶어 그쪽으로 향했다. 따로 트램이나 버스를 탈 필요 없이 걸어서 이동할 수 있었다.
환승이 가능하겠다는 안도감이 들자 그제야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시차 적응에는 공복이 중요하다는 글을 읽었기에, 이 식사가 마지막 끼니여야 했다. 다음 날 아침까지 꼭 굶어야 했다.
미국에서의 첫 음식은 Fish and Chips였다. 양도 많았고, 환율 덕분에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입에서 살살 녹을 만큼 맛있었다.
보딩 시간에 맞춰 게이트로 갔지만 또 연착이었다. 피곤이 몰려왔지만 시차 적응을 위해 절대 자면 안 됐다.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버티려 했지만 항공편 안내 방송도 신경 쓰여 집중이 되지 않았다. 결국 민이와 함께 디저트 가게에 들어가 민이의 눈을 사로잡은 예쁜 젤리를 샀다.
그때 아까 줄에서 뵈었던 한인 아주머니가 인사를 건넸다.
LA에서 수십 년 살았지만 이런 환승은 처음이고, 환승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연착이 되어도 대부분 미국인들은 컴플레인 없이 기다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로 게이트 앞은 조용했다.
한 시간 정도 후 탑승이 시작되었고, 더 이상의 연착 없이 이륙했다. 좌석은 조금 더 넓었고 분위기도 자유로운 국내선 느낌이었다. 두 시간 반 비행이었는데, 결국 잠을 참지 못하고 자버렸다. 공복을 유지해야 했지만 기내에서 나눠준 과자와 젤리도 먹어버렸다.
나 자신과의 사투를 벌이던 중 창밖을 보니 노란빛의 LA 야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심시티 같은 게임에서 보던 도시 같았다. 황금색 빛들이 방해물 없이 넓게 펼쳐진 광경이 정말 멋있었다. 비행기가 점점 하강하자 블록처럼 나뉜 미국 주택들이 더 뚜렷하게 보였고, 그제야 미국의 스케일이 느껴졌다.
LAX 공항에 도착하니 밤 9시 30분이 넘었다. 공항은 한산했고 휑했다. 짐을 찾은 뒤 Hertz 렌터카를 찾으러 이동했다. 어딘지 몰라서 물어보며 Rental Car이정표를 따라가니 많은 사람들이 정류장 같은 곳에 서 있었다. 렌터카 업체 이름이 붙은 여러 버스들이 거길 거쳐가는 걸로 보였다.
나는 Hertz밖에 몰라서 Hertz가 가장 인기 많은 줄 알고 사람 많은 버스를 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착각이었다. 사람이 많을 줄 알았던 Hertz는 오히려 한산했다. 처음 보는 Avis나 Alamo 버스는 가득 차 있었지만 Herz 버스엔 쉽게 탑승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이동해 렌터카 사무실에 도착했다. Gold Member 혜택으로 별 절차 없이 구역에 세워진 차량 중 원하는 차를 고를 수 있었다. 우리는 SUV를 예약했지만, 결국 가장 작은 SUV인 쉐보레 TRAX를 선택했다. 큰 차를 몰 자신이 없기도 했고 미국이나 일본 차를 타보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빌려 보니 TRAX는 한국에도 많은 차였다.
차를 고른 후 운전해서 출구로 나가면, 직원분이 예약 내용을 확인한 후 한국 면허증, 국제 면허증, 신용카드를 확인 후 Deposit을 결제한다.(체크카드는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우리는 운전을 번갈아가며 하려고 인터넷에서 차량 예약할 때 운전자보험 1인을 추가했다. 추가되는 운전자도 동일하게 한국/국제 면허증을 전달드리면 확인 후에 알아서 처리해 주신다.
밤 10시 반이 다 되어 있었다. 구글 지도 네비에 호텔을 찍으니 도착 예정 시간이 밤 11시. 공항 근처로 잡지 않은 걸 몹시 후회했다.
첫 미국 운전은 우리 집 운전 전문가인 민이가 당연히 맡았다. 민이와 함께 동반 긴장을 하며 미국의 밤길을 운전 했다. 표지판과 구글지도 그리고 마일이 어색해서 길을 한 번 잘못 들었지만, 미국 도로는 잘못 나가도 크게 돌아가지 않게 설계되어 있는 것 같다. 애매하면 고민하지 말고 우선 Exit로 빠지는 게 안전하다. 확실히 텍사스보다 LA의 Freeway와 출구들이 복잡한 것 같다.
호텔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예약한 숙소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근처였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갈 생각이나 계획은 없었고 LA 시내 호텔들은 대부분 주차비를 내야 하는데 여긴 주차비가 무료라서 골랐다. 숙소 옆에 바로 내 지정 주차자리가 있다.
열한 시에 체크인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문제없이 체크인했고 방도 좀 낡아서 그렇지 침대나 화장실은 깔끔했다.
마실 걸 사러 세븐일레븐에 잠깐 걸어 다녀왔는데 동네 분위기가 좋아 보여 치안 걱정도 없었다. (여러 지역을 다녀본 뒤에야 그곳이 비교적 안전한 동네였다는 걸 알게 됐다.)
사소한 여러 우여곡절들이 있었지만, 민이와 드디어 무사히 도착했다.
긴장이 풀린 우리는 그대로 골아떨어졌다.
● Seoul ——— ● Incheon Airport ——— ● Seattle-Tacoma Airport ——— ● LAX Airport ———
● El Royale Hotel Near Universal Stud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