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게 되는 어른은 없다

당장 내일 전쟁이 나도 난 소주를 마셨겠지

by 주박이
당장 내일 전쟁이 나도 난 소주를 마셨겠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꼬마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줌마, 15층 좀 눌러주세요.” 설마 나에게 한 말은 아니겠지. 곧 죽어도 나에게 말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꼬마는 재차 말을 걸었다. “아줌마, 눌러 주세요!” 끔찍하게도 엘리베이터엔 나랑 꼬마 단둘뿐이었다. 아줌마라니. 난 아직 이팔청춘인데 저 꼬마 녀석이 뭘 안다고 아줌마라고 말하는 거란 말이냐. 나도 모르게 억지 미소를 지으며 꼬마에게 말했다. “아줌마 아니고 누나.” 꼬마 녀석은 인정할 수 없는지 중얼거렸다. “눌러주세요. 누나.” 기분이 나빠서 집에 들어가 엄마한테 씩씩거렸다.


“엄마! 글쎄 말이야. 어떤 꼬맹이가 나보고 아줌마라는 거 있지?”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그 꼬맹이 나한테 전에 할머니라고 한 애 아니야? 진짜 기가 막혀서 내가 어딜 봐서 할머니니?” 엄마와 난 씩씩거렸다. 나는 아줌마 소리를 듣고 패닉이 왔다. 엄마는 할머니 소리를 들었던 게 생각이 났는지 소파에 드러누웠다. 마음과 피부가 제 나이를 찾지 못할 때, 마음속에선 열불이 나고 화가 치솟는다.


나는 철없이 살고 싶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철없는 행동을 했고 나름 젊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아마 20대 친구들과 터울 없이 대화할 수 있던 이유는 내가 어른처럼 보이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나 역시 그들과 비슷한 20대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짓궂은 나이였다. 어른이라 불리는 새내기, 철없던 순간순간의 기억, 그 잔상은 기억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을 지니고 있다. 성장의 무게도 생각의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정답도 오답도 없었다. 정의할 수 없는 나이였으며 미흡하고 날 것이었다.


모두에게는 ‘잃어버린 세대’ 즉 ‘로스트 제너레이션’이 있다. 알지 못하고 실패만 하며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순간들, 그것이 나의 20대였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랬다고 말하다가 아니라고 말하고 때론 화내고 분노하다 웃는 오락가락 알 수 없는 기준의 향연이었다.


두 발로 들어가 네 발로 돌아간다는 ‘개(가 된다는) 골목’, 감자탕 집에서 매번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졸아든 국물만큼 쓴 소주를 안주 삼아 꿈이 없다는 이야기를 거창하고 아름답게 표현했다.

개골목을 항상 드나들던 나의 친구들은 서툴고 부족한 것을 인정하지 못했던 서로를 ‘독수리 오 형제’라 칭했다. 서로에게 칼라를 입혀 현실을 회피하는 것, 그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때는 작은 단어에 꽂혀 진짜를 보지 못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줬던 작은 껌 봉투 따위에 의미를 넣어 한 달이고 1년이고 답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관심’과 ‘착각’의 중간 지점이었다는 걸 정의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었지만 무심한 척했다.


무언의 ‘짝사랑’은 그렇게 술안주와 가십거리로 끝났다. 질문의 스무고개 속 찾을 수 없던 정답은 숙취로 남았다. 개가 될 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묻고 물었지만 남는 건 상처뿐이었다. 한탄하며 멈춰있었다. 결론도 없었다. 24살 여름, 미문학사 수업을 듣고 나서였을까. 미국 문학의 한 획을 그었던 ‘잃어버린 세대’와 우리가 참 닮았다고 생각했다.


현재 고학력자들이 쏟아지고 취업난에 허덕인다. 알 수 없는 미래와 불안감으로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9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젊은 층이 가장 많은 이 시기는 허무함과 무기력을 호소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렇게 허탈하고 허무한 삶을 정면으로 마주 본다.


나 역시 회피의 수단으로 글을 썼다.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이 세대의 일부였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었다. 스스로 내린 최선의 처방은 ‘하고 싶은 것을 하자.’ 꿈을 즐기는 욜로(You Only Live Once (당신의 인생은 한 번뿐이다) 라이프’를 시작하는 것뿐이었다. 개 골목, 독수리 오 형제는 와이셔츠 칼라에 진짜 칼라를 입혀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 고뇌의 홍수, 잠식되던 그때 그 순간을 기억하며 우리는 다시금 묻고 또 물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20대보다 달라진 건 조금 더 여유롭고 조금 덜 무서워졌으며 의미 없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로스트 제너레이션’은 겪었다. 고뇌하고 질문하고 도전했던 20대, 멈춰버린 그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또 다르게 나아갈 수 있다.




꼰대는 여전히 무섭다

여전히 알 수 없고 답답하지만, 이제는 조금 굴곡을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어른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냥 되어버린다. 아직도 20대 에 멈춰있을 것 같은 나도 어느새 30대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어른이라 고 생색을 낼 필요도 없고 나이 차가 많이 난다고 거드름을 피울 것도 없으며 어리다고 무시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29살의 만기는 직장생활 3년 차 대리다. 그는 같은 팀 권 과장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 툭하면 웃으며 일감을 몰아주는 그에게 지속해서 교묘한 괴롭힘을 당해왔다. 교묘한 괴롭힘은 심리적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소시오패스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피해자만 만든다. 그래서 피해자는 스트레스를 받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 없어 참는 법과 분을 삭이는 법부터 배운다.

어느 날 권 과장은 회식 자리에서 “나는 연차 쓰는 것만 보면 얄미워서 산통 깨려고 일부러 연차 날 연락해. 내일 출근이라는 걸 확인 사살하면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라고 웃으며 말했다. 꼬여도 한참 꼬인 권 과장이 하필 사수라는 게 너무 끔찍했다. 실제로 그가 쉬는 날 권 과장은 매번 업무 확인을 주기적으로 하고 여행을 가기 라도 하면 틈틈이 전화했다. 또한 내일 출근이라는 걸 꼭 한 번씩 언급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자 그는 이런 압박을 받는 자신이 문제인지 권 과장이 문제인지 헷갈렸다. 마음을 꾹꾹 누르고 팀장님께 면담 신청을 했다. 속 이야기를 하자마자 눈물이 나왔다. 울어봤자 세상은 변하지 않으니 참고 살아라. 이렇게 남에게 눈물을 보이지 마라. 그러면 잡아먹힌다. 그런 말이 다였다. 결국,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회사에 이별을 고했다. 단지, 다음에 들어올 사람이 불쌍했다.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것이 자명했다.


세상에는 당연한 것도 어른도 없다. 어른이기 때문에 세상 모든 지혜를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당연하게 부당한 일을 시킬 수도 없다. 어른인 걸 내세워 강압적으로 생각을 강요한다면 한 귀로 듣기 전에 튕겨내라. 단 듣는 척은 하면서. 꼰대에게 당하게 되면 곱씹어도 화가 날 수도 있으니 흘려들었으면 한다. 나잇값도 적당히 해야 대접받는다. 미운 4살이 아니라 미운 100살이 되면 악당 가가멜처럼 심술 맞은 삐뚠 코와 못된 눈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꼬마 스머프들의 원성을 사고 미움받으며 반려동물 고양이 아지라엘과 외롭고 고독하게 늙을 것이다.


꼰대의 무서움을 아는 나는 혹여 편협한 사고를 하진 않았는지 스스로 반성한다. 만약 다른 것을 틀림으로 간주했다면 진짜 꼰대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다행히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덕분에 상승했던 ‘꼰대력’은 사그라들고 마음속 ‘피터팬’이 스르륵 올라온다.


신기하게도 재미있는 아이디어는 항상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타인에게서 나오며 그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나를 웃게 만든다. 그들로 인해 신선하고 재밌는 아이디어와 즐거운 영감을 받는다. 그래서 난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어른스럽다’라는 말이 칭찬일지 몰라도 철없는 아이로 남고 싶다.


실패하고 상처 받더라도 고뇌했던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몸도 마음도 늙어 용서받지 못하는 노년기가 아닌 순간을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살아가고 싶다. 마음이 늙어서 제대로 앞을 못 보게 될까 봐 두렵다. 편견을 가지고 수평적으로 마주 보지 못할까 봐 무섭다. 실수로 인해 좋은 사람들을 놓치게 될까 봐 겁이 난다.

어린 시절 파랑새를 믿었던 문학소녀로, 실패해도 괜찮았던 그때로 남을 수 있다면 함께 성장할 수 있게 그렇게 남고 싶다. 당연하게 되는 어른이 없는 것처럼 아직 철없는 아이로 남아 재밌는 시선으로 유쾌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만약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난 그렇게 철없는 아이로 살겠다.



책 <남들과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에 실린 글입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봄부터 그렇게 울었나 보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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