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변하면 숫자는 무력해진다

살아 있는 것조차 용기가 될때가 있다.

by 주박이
인생의 자격을 빼앗기지 말자


양육 방식에서 엄마는 자식의 행복을 위해 살았다. 반찬을 고를 때도 자식이 먹고 싶은 것이 우선이었고 물건을 살 때도 자식이 사고 싶은 을 사는 게 먼저였다. 자녀가 속을 썩이면 본인 맘이 더 문드러졌다. 자식 자체가 그녀였으며 그녀 자체가 바로 자녀였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다. 양육과정에서 몇 개는 옳았으며 몇 개는 아니었다. 나는 반항했고 우리는 항상 거칠게 싸웠다. 부모가 원하지 않은 행동만 주구장창 하는 딸내미 덕에 그녀는 인생의 현타를 매번 느꼈다. 그리고 이제야 본인 인생을 살고자 결심했다.


“내가 다 너 잘되라고 한 건데 내가 바보였어.”


육십 평생 자식을 위해 살았던 엄마는 아직도 가끔 본인이 먼저라는 것을 깜박한다. 그때마다 나는 장난 반 진담 반 가볍게 알려준다. “엄마, 엄마 인생 살아! 인생의 주인공이 누구라고?” 엄마는 귀엽게 말한다. “나!”


아빠는 한 직장에 평생 몸 바쳐 일했지만,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암이라는 병을 얻었다. ‘신장암’이었다. 내 나이 25살 때였다. 한 집을 지키는 가장인 아버지의 병은 우리 가족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큰딸인 나는 정신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아프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동정한다. 때론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도 모른다. 가족이 아프면 내 마음도 욱신욱신 저리고 현실을 제대로 보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버티고, 중심을 잡고, 쾌활하고,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같이 이겨내야 한다는 것. 다행히 수술이 잘되어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당시에 아빠는 가장이라는 무게 때문에 수술 후 한 달 만에 회사에 복귀했다.

그는 가족을 위해 암과 싸웠고 버텼다.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아빠는 매일매일을 선물처럼 감사하며 지낸다. 60대이신 부모님은 이렇게 말한다.


“난 당연히 이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고 살았지. 억울해서 이제라도 내 인생 살래. 즐기며 살래. 자식이 좋아하는 거 안 먹고 내가 좋아하는 거 먹을래.”


60대인 부모님도 내 인생을 사신다고 한다. 그들 역시 남을 위한 인생을 살았지만 결국 나를 위한 인생으로 돌아왔다.


인생 방향의 나침반은 오직 나만 가지고 있다


30대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무척이나 행복했다. 20대보다 노련했고 마음과 물질적 여유가 있었다. 치열했던 20대가 지나니 어느 정도 기대도 내려놓게 되고 ‘3’이라는 새로운 숫자의 새내기가 된 것 같아 기분도 좋았다.


‘치열했던 나날들이여 안녕! 나는 이제 진정한 어른이며 내가 하는 행동에는 무조건 책임을 져야지. 20대가 시행착오의 나이라면 이제는 진짜 모든 행동에 책임을 질 나이야!’


부딪혀서 배워왔던 나는 나에 대해 믿음이 있었다. 20대 때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계속 생겼다. 아빠가 아프거나 엄마가 산을 타다 넘어져 119를 부르고 몇 개월 동안 병간호를 해야 하기도 했다. 중고 휴대전화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교통사고, 모욕죄, 사기죄는 이제 어느 정도 숙달한 것 같다. 대인관계에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던 내가 때론 좋은 게 그다지 좋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시기이기도 했다.


정신적인 고통은 ‘나’라는 중심만 잘 잡으면 이겨낼 수 있게 된다.


‘할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 나는 극복할 수 있다. 지금은 이렇지만, 반드시 달라진다.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나는 괜찮다. 나는 충분하다. 잘하고 있다.’


날마다 마음속에 외치니 단단해지고 극복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폴 스톨츠가 말하는 위기 대처능력인 (AQ: Adversity Quotient) 역경 지수가 높았던 것 같다. 좌절할 때도 있었지만 일어나는 법을 알았다. 사실 넘어진 채로 있을 만한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부단히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30대가 되면 진짜 변수가 생긴다. 바로 체력이다.


넘어져도 일어나는 법을 알았던 난 20대를 에너자이저처럼 달렸다. 어쭙잖은 소소한 것들에는 절대 지치지 않았다. 자타공인 체력왕이었다. 욕심이 많아서 지하철이나 고속버스, 시외버스가 다니면 어디든 갔다. 버스를 탈 때 터미널까지 가는 설렘도 좋았다. 가보지 않은 곳을 갈 때 그 지역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출장은 회사에서 차비와 숙소를 지원해준다. 일도 여행처럼, 공짜로 여행을 할 수 있다니! 나는 벌써 맛집부터 찾고 있었다. 사람들을 태우고 내리는 터미널엔 와글와글한 열정이 모였다가 흩어진다. 그 자리에 있는 나도 또 다른 자극을 받는다. 기차는 기차대로 버스는 버스대로 각자의 희망을 싣고 목적지로 향해 간다.


뚜벅이 인생이 익숙해지자 뚜벅이의 삶도 느리지만 참 재밌고 좋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될 일이었으니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내 마음의 휴식을 주지 않자 결국 부작용이 생겼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았다. 어제의 체력과 오늘의 체력이 달랐다. 조금씩 체력이 무너진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날마다 기분 좋게 시작하던 하루가 알 수 없이 우울하고 무기력해지기 시작할 때였다.

생각이 많아지고 짜증이 심해졌다.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여행 도 재미가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한숨부터 나왔다. 운동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상 신호였다. 체력이 무너지면 정신이 흔들린다. 그리고 정신이 흔들리는 순간 내 중심도 와장창 무너진다.


내가 변하면 숫자는 무력해진다

난 나를 참 좋아했다. 특히 33살의 여자 사람이라서 좋았다. 30대 아직 ‘어른이’ 나이 3살이지만 나름대로 익숙하고 규칙적이며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는 삶이라 행복했다. 하지만 때론 좋아하는 것을 해도 실패하고 좋지 않을 때가 있다. 싱글인 나에게 친구가 오지랖을 부리며 충고했다.


“남자 만나야 하지 않겠어? 눈을 낮추든지 흠이 좀 있더라도 안고 가.”

“지금 너 나이 때는 따질 때가 아니야. 어차피 완벽한 사람은 없어.”

“너 좋다는 사람 있으면 만나. 일은 절대 관두지 마. 지금 백수 되면 진짜 너 끝이다."


평소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크게 웃으며 “난 잘생긴 사람 만날 건데? 얼굴값은 인정해도 꼴값은 못 봐주겠거든? 톨 앤 핸섬 영 앤 리치 몰라? 너나 잘하세요!”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던 나였다. 어깨에 모든 짐을 이고 살았었지만, 체력적으로 튼튼했던 20대와 다르게 30대가 되면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이 들었나 보다. 나는 그날따라 스쳐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에 쿡쿡 박혔다.


“30대 여자 진짜 끝이야? 정말로 그런 나이가 된 거야?”


말하는 순간 비참하고 우울했다. 입 밖으로 꺼내는 절망감이 참담하게 마음으로 툭툭 떨어졌다.

친구는 아주 매정하게 말했다. “응, 30대 여자는 그런 거야. 현실 똑바로 봐.”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이야기도 한마디 한마디가 꾹꾹 내 머릿속에 비집고 들어왔다.


‘진짜 30대 나이는 그런 건가. 화장하는 법도, 좋아하는 것도, 취미도, 특기도 이제는 어느 정도 능숙해진 것 같은데 나는 왜 하향 평가되는 느낌일까? 3이라는 숫자가 뭐기에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나.’ 마치 성적표에 ‘가’라는 도장을 꾹 찍어버리고 “당신은 이제 더는 쓸모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30대거든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주위는 칭찬보다 아슬아슬하게 내 가치를 후려친다. 잘하는 건 당연한 거고 못하는 건 내가 문제란다. 나름대로 치열하고 절실하게 살아온 내 삶이 다시 리셋되는 기분이다.

퇴사하고 싶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쉬고 싶었다. 적어도 나를 위해 온전히 휴가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진짜 쉬는 게 두려운 나이가 되어버렸나 보다. 당장 나가야 할 카드값, 내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생활비, 꿈과 현실의 괴리감. 과연 내가 퇴사를 하고 다른 회사를 들어간다고 행복할까? 머릿속이 꼬리를 물고 생각을 퍼트리며 어지럽혔다.


“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잘하는 것을 찾으려고 치열하게 쉬지 않고 살았는데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거야? 난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이런 모습이 당장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야. 지금 당장 하나도 행복하지 않다고!!”


짜증과 심술을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 아빠는 이런 상황이 익숙 한지 이젠 한 귀로 듣고 흘렸다. 그들도 이미 나에게 맷집이 세졌다. 자존감이 뚝뚝 떨어지고 나니 기분이 너무 안 좋았다. 난 분명 이렇게 살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된 건지 자신에게 물었다. 그리고 제대로 알았다. 남의 기준으로 남의 인생을 살면 나는 없어진다는 사실 말이다.


‘내가 이때까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일하고 살았나?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지금 충분한가? 나는 무엇을 해야 행복한가?’


그리고 스스로 묻는 그 질문에 정답 하나는 알았다. 남의 인생을 살더라도 나의 인생을 살자! 내 인생인데 내 멋대로 할 수 있는 것 하나쯤은 있어도 된다. 그래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원하는 것과 비슷하게는 될 수 있다.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난 고꾸라지더라도 글을 쓰기로 했다. 적어도 남의 인생이 아닌 나의 인생을 살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책 <남들과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에 쓰인 글입니다.


때로는 살아 있는 것조차 용기가 될 때가 있다.
-세네카


- 아빠는 2021년 6월 드디어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이전 04화인생은 느슨하게, 매일은 성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