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느슨하게, 매일은 성실하게
여행은 나를 다시금 바라보게 만든다
여행은 나를 다시금 바라보게 만든다
해외여행을 다니다 보면 나와 다른 문화를 만난다. 직장생활을 하며 가장 좋았던 한 가지를 꼽자면 오랫동안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는 스케줄 근무였다는 점이다. 덕분에 적어도 1년에 4번 이상은 해외여행을 갔다. 다양한 국적의 고객을 만날 때와는 다른 나만을 위한 휴식이었다.
혼자 동떨어져 있으면 어느 순간 평소에 관심 없었던 것들이 보인다. 트라이씨클을 내릴 때 탕탕거리는 쇳소리, 흙탕물에 잠기는 도로, 조개껍데기로 만든 목걸이를 파는 소년, 모래사장을 장식하는 예술가까지 평소에 스치듯 지나치는 모든 풍경이 천천히 들어온다.
서로 다른 문화를 보며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관대해져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타인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거엔 익숙하지만 나를 존중하고 나를 인정하는 것은 어색해한다. 항상 비교에 익숙해져 인정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또한, 나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나를 칭찬하는 방법도 모른다. 인정은 간단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하나씩 꺼내고 그런 나를 인정하면 된다.
나는 즉흥적이다.
나는 유쾌하다.
나는 눈물이 많다.
나는 마음이 여리다.
이처럼 그냥 나의 있는 그대로를 꺼내자.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이라 인정하자. 인정 후 반드시 나의 좋은 점을 칭찬하자. 우리는 너무 많은 평가를 받아왔다. 적어도 나에게는 관대해져도 좋다.
나는 즉흥적이야!
그래서 도전을 잘하고 실행력이 강한 멋진 사람이야!
나는 유쾌해!
그래서 긍정적이고 행복해서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
나는 눈물이 많고 감성적이지만 공감을 잘하는걸! 좋은 성격이야!
나는 마음이 여려서 상처를 잘 받지만, 누구보다 강한 회복력을 가지고 있어 칭찬해!
이처럼 진짜 나를 정면으로 마주한 뒤 인정하고 칭찬하자. 나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노라 다독여주고 안아주자. ‘비교’와 '가스 라이팅'에서 벗어나 나만의 중심을 잡자. 어깨를 툭툭 털고 긴장을 풀자. 여행 같은 삶에 긴장을 풀고 느슨하게 살아야 지치지 않고 나만의 호흡으로 날마다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진짜 세상은 휴대전화 속이 아닌 눈앞에 있다
인생을 느슨하게 사는 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하루를 여행 온 것처럼, 앞만 보지 말고 주위를 둘러보며 살면 된다.
나는 평소에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출퇴근을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간은 노량진역에서 용산역을 넘어가는 구간이다. 빛 받은 한강이 보이는 한강대교가 시작할 때 그 광경은 눈이 부시다.
출근할 땐 아침 햇살에 반짝거리는 빛이, 퇴근할 땐 지는 해의 붉고 아름다운 색채가 강에 풀어진다.
오늘 하루 수고했노라 자연이 주는 선물 같은 광경이다. 그 순간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 나를 칭찬하고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누구도 풍경을 보는 이 없이 휴대전화만 쳐다보고 있다. 너무 아름다워 눈을 떼지 못하는 장관이라 나도 모르게 옆 사람을 쿡 찌를 뻔했다.
‘하늘 좀 보세요. 너무 예뻐요. 지금 이런 장면을 놓치면 안 되는데….’
지하철을 타고 날마다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은 진짜 인생을 보지 않는다. 그들은 자연이 준 선물을 보지 않고 휴대전화만 보다 멀리 있는 자연을 보겠다고 해외로 떠난다. 주위를 둘러보면 연둣빛 초록 새싹과 파란 하늘, 지는 노을까지 나를 다독여준다. 자연은 나에게 ‘당신, 충분히 잘하고 있노라.’고 위안을 준다.
나는 아날로그를 좋아한다. 서로 주고받는 손편지처럼 잊고 있던 순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약간은 느리지만 정성이 들어간 이 과정이 참 좋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잔뜩 구매해 편지를 쓰고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사서 붙이는 순간 힐링이 된다. 빨간 우체통만 봐도 설레던 그때로 돌아가듯이, 진한 카드 봉투가 우표를 입고 바라는 소망과 감사를 담아 집 앞까지 간다. 한 해 동안 고생했노라 지인과 가족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할 때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매 분기 친척 동생들과 모임을 한다. 20대부터 가진 이 모임의 이름은 ‘박가네 여인들’이다. 외롭고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자 끈끈하게 맺어진 동맹이자 가족 결합체다. 어린 시절부터 때마다 시골에 모인 아버지들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뭉치게 된 여자 네 명은 매년 송년회에 ‘만 원의 행복 마니또’를 한다. 장난스럽게 시작된 우리만의 행사는 어느 순간 연례행사가 되었다. 바쁘게 살아가다 12월이 되는 순간 어떤 선물로 서로를 웃길지 궁리하고 한 해를 열심히 살았노라고 서로 다독인다. 유쾌한 뽑기 행사를 하고 감사를 표현하며 우리만의 파티를 연다. 작고 소박한 일상에 재미와 감사를 담고 살다 보면 ‘그래, 삶이란 이런 거지. 나 잘살고 있다.’라고 자신을 칭찬하고 인정하며 느슨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다.
여유 있는 인생을 추구하라
날마다 성실하게 살아온 나에게 반드시 보상하자. 말로 하는 칭찬보다 커피 한잔이 더 값어치가 있다. 나만을 위한 한잔의 음료, 한 달 동안 고생한 나를 위한 작은 여행 또는 호캉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 지인과 모임, 감사할 수 있는 마음, 만약 다니는 기업에 사회공헌 활동이 있다면 봉사 활동을 하는 것도 좋다.
휴가를 내고 3주 동안 태국 코창이라는 작은 섬을 갔을 때 이야기다. 대부분 직장인이 3~5일 휴가를 간다고 가정할 때 20일의 휴가는 굉장히 긴 편이다. 하지만 나는 그중 정확히 5일 정도는 뭔지 모를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항상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긴장하며 살던 환경 때문인지 와이파이도 잘 잡히지 않는 작은 섬에서 초조한 마음이 생겼다. 무언가 확인해야 할 것 같은 긴장감과 강박관념에 휴대전화를 계속해서 만지작거렸다. 나를 위한 휴가였지만 업무와 나를 완전히 분리하지 못했다. 5일째가 되었을 때 몸은 드디어 휴가라는 걸 인지했는지 긴장을 풀었다.
휴식에 접어든 순간 오직 나만 바라봐야 한다. 늦잠도 자고 게을러져도 좋다. 바다만 하염없이 바라봐도 좋고 공상에 빠져도 좋다. 못 읽었던 책을 읽어도 보고 둘러보지 못했던 자연을 봐도 좋다. 슬프게도 한국의 휴가는 너무 짧다. 365일 바쁘게 일한 것에 비해 휴식의 대가는 너무 협소하다. 특히 열심히 달려온 우리는 막상 시간이 주어 지면 멈추는 속도에 가속이 붙어 멈추어도 계속 달리게 된다. 결국, 그렇게 제대로 쉬지 못한 채 휴가가 끝난다.
한 친구는 여자 친구의 권유로 휴양지를 놀러 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휴가를 떠나기 직전까지 불만을 토로했다.
“도대체 휴양지에서 할 게 있어? 어떻게 있어야 해?” 그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나에게 상담을 청했다. “그냥 쉬면 돼. 좀 내려놓고 가서 그냥 쉬어!”
열심히 살았던 친구였기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말 그대로 휴양지를 즐기는 법조차 몰랐다. 야자수도 보고 모래도 좀 밟으라고 권했다. 따스한 햇볕에 스르르 낮잠도 자고 산책하며 광합성도 해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볼멘소리로 구시렁거렸다.
“뭐 제대로 쉬어봤어야 어떻게 쉬는지 알지. 요즘 틈만 나면 미니멀리즘? 내려놓으라고 하는데 도대체 뭔 소리야. 뭘 가져봤어야 내려놓지. 인생이 맘대로 되냐.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뭘 내려놔!”
“적어도 휴가를 즐길 땐 너의 일, 직장에서의 너를 내려놔.”
친구 말에 틀린 건 없었다. 바쁘게 살아왔고 긴장을 푼 적이 없는 일상에서 내려놓는 건 사치다. 주위만 살펴봐도 1년에 한 번 가는 여름휴가가 전부였다. 또한, 시간과 장소에 쫓기듯 가는 휴가가 많았다. 일과 구분이 안 가는 억지 휴가는 진정한 휴식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참 이상합니다
인생은 생각한 것처럼 술술 돌아가지 않는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할 때도 있고 취직에 실패할 때도 있다. 당연히 만족할 만한 연봉이 아닐 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의지만 있으면 업무와 나를 깨끗하게 분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연습이 부족한 것뿐이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지만 수 없이 반복한 여행과 휴가를 통해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많았고 이를 통해 나름대로 분리할 수 있는 기술이 생겼다. 잡념이 꼬리를 무는 순간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 포인트다. 어느 순간 잡념에 먹히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 순간을 확실히 인식한 순간 곧장 다른 것에 집중하면 된다.
무던히 연습한 끝에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시청하는 방법으로 머릿속 생각 줄기를 끊어냈다. “그런데 말입니다….”가 시작되는 순간 쓸데없는 고민이 싹 사라진다. 불안감이 들 땐 더 큰 불안감으로 스트레스를 분산시켜야 뇌가 쉴 수 있는 것 같다.
인생은 장기전이다. 아니다 싶으면 안 하면 되고,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지치면 쉬고 다시 일어나 걸으면 된다. 그러기에 처음부터 너무 열심히 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생이 기대처럼 흘러가지 않을 때 무너져 버리면 아프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다 정답이 아닐 때 오는 괴리감은 나를 오랫동안 바닥에 묶어두고 회복하는 법조차 까먹게 했다. 그러기에 무너져도 금방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주위를 돌아보며 인생을 느슨하게 바라보는 유연성을 길러야 상처도 덜 받는다.
차가운 밑바닥이 바닥인 줄 알았지만, 더 깊은 지하가 있었다. 최저에서 최악을 넘어 시궁창까지 가지 않으려면 무너지지 않도록 보호막을 만들면서 살아야 한다. 휴대전화의 액정보호필름처럼 인생의 보호필름을 붙이자. 느슨하게 바라보는 눈과 성실하게 움직이는 발로 나를 지키자. 그래야 발을 삐어도 ‘이 또한 지나가겠지?’라고 생각하며 단순하게 긍정의 힘으로 나아갈 것이다.
책 <남들과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에 실린 글입니다.
사람은 마음이 즐거우면 종일 걸어도 싫지 않으나,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잠깐 걸어도 싫증이 난다. 인생행로도 마찬가지니 언제나 명랑하고 유쾌한 마음으로 인생의 길을 걸어라.
- 셰익스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