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인정하는 자세
후회가 남지 않은 인생을 위하여
오랜만에 천호동과 성내동 사이에 있는 주꾸미 거리를 가게 되었다. 그 거리를 처음 알게 된 건 여수에서 만난 동생의 소개 덕분이었다. 좋은 기억을 가진 거리이기에 지인에게 추천했고 그는 흔쾌히 새로운 장소를 받아들였다. 골목길에 들어서자 주꾸미 집의 빨간 간판이 우리를 반겼다.
줄이 짧은 한 집을 골라 진로와 주꾸미를 시키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시 그는 나에게 충고를 해주었으나 난 그 말을 비난으로 듣고 있었다. 다정한 말투가 아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매번 강한 명령조로 말하는 말투에 불만이 많았던 난 친절하게 말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 순간 강력한 한 마디가 내 머리를 띵하고 쳤다.
“이런 거 한두 번 보냐?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래. 너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지.”
울화통이 치밀어 그에게 따발총처럼 다다다다 쏟아부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아주 통쾌했다. 스트레스는 불쾌한 사람의 몫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방어기제가 불쑥 튀어나와 상대를 공격한다.
낯선 타인보다 가까운 나에게 상냥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내 마음이기에 이기심이고 욕심이다. 어째서 나는 매번 다름을 인정해주길 원하면서 다름과 싸우고 있는 것인가. 마음 언어를 해석해 진실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생겼으면 좋겠다. 상대방의 진심을 오해하지 않도록, 차라리 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자꾸 퉁명스럽게 말하니까 좋게 들리지 않잖아. 나에게 친절하게 설명 좀 해 줄래?"
서운한 마음에 괜히 툴툴거렸다. 그 순간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한 남자분이 귀를 긁적이며 혼잣말을 하셨다.
"누가 우리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대화가 잠깐 멈췄고 옆 테이블을 쳐다봤다. 인상 좋은 부부와 눈이 마주쳤고 순간 멋쩍은 웃음이 터졌다.
그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어서 엿듣게 되었다며 유쾌하게 웃으셨고 젊은 시절 자신들을 보는 것 같다며 즐거워하셨다. 와이프분은 나에게 아주 성격 좋은 친구를 두었다며 저렇게 들어주는 친구를 둔 것은 행운이라고 말해주셨다. 남편분 또한 나에 대한 칭찬을 그 친구에게 해주셨다. 그 순간 나는 고개가 숙여지고 부끄러웠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말했다.
“성격이 모두 나와 같아지기를 바라지 말라. 매끈한 돌이나 거친 돌이나 다 제각기 쓸모가 있는 법이다. 남의 성격이 내 성격과 같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좋은 면만 바라봐도 모자라다. 하지만 나는 매번 비판에 약하고 상처를 받는다. 듣기 싫은 소리는 거부감이 들고 화가 난다. 화를 내면 지는 것이라 배웠는데도 항상 그렇다.
제발 나를 침범하지 않기를 바랐다. 각자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자는 말을 매번 했으며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존중이라는 말과 친절한 말투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강요하는 건 나였다. 친한 사람을 가장 삐뚤게 보고 있는 것은 나였다. 오히려 투박하고 솔직한 말을 하는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하여 그의 친절을 비난으로 매도했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그는 단지 나와 다른 언어를 사용했지만, 진심을 무시했고 그의 말을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나 역시 그를 오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법은 그가 해주는 말을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하면 됐던 것이었다.
덕분에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낯선 부부는 주꾸미를 사주시고 산신령처럼 홀연히 사라지셨다. 감사함을 표현할 겨를 도 없이 떠나신 그분들을 보며 고마움을 느꼈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유 쾌하고 재미있게 사는 두 분의 모습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타인이 베푼 친절은 의도치 않은 감동을 주고 특별한 위안을 받게 된다. 어떠한 방식이든 베풀 수 있는 삶은 참 멋스럽다.
갑작스러운 친절은 누군가에게 어떤 방법으로든 행복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후회가 남지 않을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 각자의 기준이 있지만 내가 가진 것들로 남에게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삶이야말로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판에 담담하게, 시선에서 자유롭게
난 대학교에 다닐 때 전공의 의미를 찾지도 못했다. 내 친구들의 70% 는 자퇴를 했다. 난 이상하게 좋아하지 않는 과목은 듣기 싫었고 그래서 듣지 않았다.
그렇게 학사 경고를 2번 맞았다. 세 번째에는 제적이었다. 학적에서 이름을 지워버린다는 뜻이다. 3학년 2학기부터 정신을 차렸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등록금을 마련했다. 그 돈으로 계절 학기를 미친 듯이 들었다. 부모님은 알지도 못했 다. 한 한기 등록금을 올 F로 날려버렸다는 것을 알았다면 머리가 다 밀렸을 것이다.
내가 만약 스티브 잡스였거나 마크 저커버그였다면 자퇴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들이 아니었다. 그 사실은 나에게 '어떠한 이유든 제적을 당하면 넌 인생의 루저다.' 라고 말하고 있었다. 패배를 인정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결국, 어쨌든 졸업은 했다. 성적이 꼬리표로 달라붙어 결과는 참담했지만 나 자신에게는 당당하고 정말 뿌듯했다.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삶을 또 한 번 경험했다. 취업이 잘되지 않았다. 그래서 졸업을 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말해준다. 학점 관리하고 사회에 나오라고, 졸업을 최대한 미뤄도 학점은 맞춰서 나왔으면 했다.
내가 느낀 사회는 너무 추웠기에. 시련의 연속은 나에게 후회를 남겼다. 집에서는 가끔씩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그때 만약 내가 충실했으면 내 인생은 변했을까?'
절망감이 밀려왔다. 잠을 자도 불안감이 엄습해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물 마시는 것조차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난 ‘그냥’ 취업에 목매지 않기로 했다. 배울 수 있는 것을 찾아, 경험을 찾아 그렇게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라 방황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일어섰다.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그것을 위해 찾아 나섰다. 내가 만약 성적도 잘 받고 취업도 잘 했으면 후회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가? 후회한다. 가보지 않은 길이었기 때문에 후회한다.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였던 미셸 오바마는 자신의 책 『비판에 담담하게 시선에서 자유롭게』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 나를 잘못 묘사하거나 나쁘게 부를 때마다 약해졌다면 난 결코 프린스턴을 졸업할 수도, 하버드에 갈 수도, 지금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불평등이 만연하는 세상에서 거짓말 같은 동기부여에 지쳤다. 자기계 발을 하라는 말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들도 알고 보면 배부른 사람들의 투정 같기도 했다.
내 마음의 청개구리가 개굴개굴 울면서 말했다. ‘남들과 다르게 살아도 충분히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보통 사람이 필요해.’ 나를 세상이 알린다는 두려움도 있지만, 그것이 나의 존재 이유였다.
단 한 번이라도 시선에서 자유롭게 세상을 마주보고 목소리를 내보고 싶었다.
나는 1등도 아니었고, 특별한 재능이 있지도 않았다. 방황했고 학사 경고를 2번 맞았으며, 학점은 2.91로 졸업했다.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영어영문학과를 나왔고 가지 못할 것 같은 대기업의 꼬리표라도 달기 위해 자회사로 갔으며 영어를 쓰고 싶어 미군 부대의 현장직 영업직군으로 달리며 살아왔다.
그렇게 채워지지 않은 만족감을 채우기 위해 살았다. 남들보다 빠르게 주제를 파악했으며 여전히 도전하며 살고 있다.
지금 나는 밥벌이는 하고 사는 회사원이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주체적인 삶을 산다. 사회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으로 세상을 만나는 내가 장하다.
내가 했던 것들로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 로 충분히 후회가 남지 않는 인생이 될 거라 확신한다.
매번 후회가 남는 삶만 살았다. 그리고 그 후회는 절대 가슴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기에 오늘 당장 최선을 다해서 하고 싶은 것을 시작하고 내일은 후회 없는 삶을 살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현실은 절대 바뀌지 않고 후회도 바뀌지 않을 것이기에 후회가 남지 않는 인생을 살 것이다.
책 <남들과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 에 쓰인 글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만 후회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재커리 스코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