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 노놉 - 육아하며 작가의 꿈을 키워요
우리 집에는 요정 넷이 살고 있다. 바로 '쭈쭈요정', '괴물요정', '아빠마음요정', '엄마마음요정'이다. '아빠마음요정'인 다섯 살 첫째 아이가 지어준 별명이다. 참고로 '괴물마음요정'은 괴물을 물리칠 수 있는 용감한 요정으로 아빠를 뜻한다. 두 살인 '엄마마음요정'은 '쭈쭈요정'인 엄마에게서 쭈쭈를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첫째 출산을 앞두고 일을 그만둔 후 전업주부로 산 지 4년이 넘어간다. 2018년에 네이버 포스트에서 공모한 육아에세이 당선으로 상금을 탄 적을 빼고 특별한 소득이 없었다. 성실한 남편 덕분에 고맙게도 먹고살 걱정 없이 지내고 있다. 6일 전이 '엄마마음요정' 첫 돌이었다. 언젠가 단유를 하게 되니 쭈쭈요정은 실직 위기를 앞두고 새로운 직업을 준비 중이다.
아이들 앞에서 엄마는 '작가'가 될 거라며 자신 있게 말했다. 둘째가 딸이어서 그런지 '엄마로서의 나'와 '딸로서의 나'를 같이 생각하게 된다. 나는 그냥 큰 줄 알았는데…. 아이를 키워보니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밤에도 깨서 좀비처럼 앉아 수유하게 될 줄 상상하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지내면서도 나의 정체성을 갖고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다. 집안에서 아내로 살면서도 사회의 일원으로 소통하고 싶기 때문이다. 딸이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는 게 엄마의 행복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감사하게도 육아를 하다 보니 글감이 수두룩하게 나온다.
출생의 비밀까지는 아니지만 '엄마마음요정'은 출생의 에피소드가 있다. 이번 출산 과정에서도 '괴물마음요정'과 함께 있고 싶었다. 2016년에 '아빠마음요정'을 낳을 때 산부인과의 가족분만실에서 1박 2일간의 진통시간 동안 따뜻한 격려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혼자 출산하는 상황이 두려웠다. 첫째를 받아주신 선생님께 진료를 받았기에 첫째가 등원하고 하원 전에 출산하길 바라고 있었다.
'엄마마음요정'의 출산예정일 5일 전인 금요일, 새벽부터 배가 아팠다. 주초에 속이 안 좋고 밑에서 분비물이 나와 출근한 남편에게 연락해 산부인과에 같이 갔었다. 양수검사 결과 양수가 아니라고 토요일 진료 때 보자고 하셨다. 아기 낳기 전에 영화를 한 편 보고 싶다고 얘기해서 첫째 하원 시간 전에 끝나는 '토이 스토리 4'를 더빙판으로 보았다. 황금 같은 휴가를 날린 것 같아 미안했는데 영화는 재미있었다. 내일은 출근 안 하는 주말이라 휴가를 또 쓰기에 아까워서 먼저 출근했으면 했다.
우선 첫째를 등원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괴물마음요정'에게 "배고프니 김밥 좀 사다 주세요. 그리고 오늘 등원을 부탁해요. 병원 가야 될 것 같으면 연락할게요."라고 이야기했다. 직장에서 집까지 차로 10여 분 걸리고 병원도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정 둘을 내보내고 '아빠마음요정'의 출산 때 분만실 간호사분께 들었던 조언인 '화장실에서 힘주듯이 힘을 주세요!'를 기억하며 화장실에서 행동에 옮겼다. 끙끙….
아빠마음요정'은 아들이며 태아의 체중과 머리 둘레가 큰 편이었다. 둘째는 금방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래도 진통 느낀 게 처음이라 가진통일 수도 있고, 설마 벌써 나오겠느냐는 생각이었다. 나올 것 같으면 전화하면 되니까 열심히 힘을 주었다. 밑에서 주르륵 물이 나오고 뭔가 아래에 끼는 기분이 들었다.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상태로는 차에 앉을 수 없겠다는 직감에 뭔가 대책을 세워야 했다.
전화기를 들고 인생에서 처음 119에 전화를 걸었다. "아기가 나올 것 같아요. 빨리 좀 와주세요. 도움을 청하고 남편에게 집으로 와달라고 전화했다. 구급대원의 도착을 어디에서 기다릴지 집 안을 훑어보았다. 침대가 있는 안방보다는 소파가 있는 거실이 낫겠다 싶어 어기적거리며 걸어갔다. 거실에는 '아빠마음요정'의 잠자리 독립을 위해 구매한 요가 깔려있었다. 소파를 잡고 엉거주춤 서서 구급대원이 도착하길 기다렸다. 119에서 전화를 해줘서 도착 전까지 준비할 사항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계속 힘이 들어가는 게 정말로 아이가 나올 것 같았다. 첫째 때 병원 분만대에 누워 힘 줄 때는 잘 안되어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자연분만을 했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아이가 나오려고 하는 게 느껴졌다. 옛날에는 밭을 매다가 아기를 낳았다는데 지금은 2019년이 아닌가…. 그래도 나는 엄마니까 용기를 내서 힘을 줬다.
아이가 나왔다. 아래로 순풍 나오길래 재빨리 손으로 잡아서 요에 눕혔다. 손에 쏙 들어오는 아담한 딸이었다. 아기가 나왔다고 통화하던 119에 이야기하니 탯줄은 어떻게 되어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찾아보니 끊겨있었다. 아이를 낳고 숨 쉬는 걸 보니 요가 피범벅이 되었지만 평온한 기분이 들었다. 젖을 물려보았다. 갑작스러웠지만 엄마를 믿고 세상으로 나온 아이가 사랑스러웠다. 때마침 119 대원이 도착했다. 아기와 나를 병원에 데려다 주시기로 했다. 남편에게 집이 아닌 병원으로 와달라고 전화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구급대원께서 휠체어에 비닐을 깔고 나를 앉혀주셨다. 구급차에 타기 전 휠체어가 트랜스포머처럼 젖혀지며 침대로 변신하는 게 신기했다. 병원까지 상태를 관찰하며 안전하게 데려다주셨다. 그때 경황이 없어 제대로 인사하지 못했다. "119 구급대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와 아기가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 이렇게 사람을 살리는 훌륭한 시스템이 있는 우리나라가 참 좋다.
남편이 병원에 도착해서 입원 수속을 해주었다. '엄마마음요정'은 가족분만실에 태아가 아닌 아기로 들어왔다. 병원 분만팀장님께서 다행히 아기가 건강하다고 해주셨다. 출산은 아기가 나오면 끝나는 게 아니라 이후에 처리해야 될 일이 있다. 양막, 태반, 탯줄이 제대로 배출되어야 한다. 병원에서 신속하게 시행해 주셨다. 그리고 출산 시 회음부가 3cm 정도 찢어져서 분만센터에 계시던 다른 의사 선생님께서 봉합해 주셨다. 아이를 낳으면 엄마와 아기에게 팔찌와 발찌를 만들어 채워준다. 거기에 home delivery라고 적혀있는 게 배달 음식 생각이 나서 재미있었다.
첫째 임신 때 의료 개입 없이 전통 방식 그대로 아기를 낳는 '자연주의 출산'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과 분만 팀장님과 상담을 했었다. 사정상 급하게 병원을 바꾼 상황이라 자연주의 출산은 어렵고, '자연스러운 탄생을 위한 출산 동반자 가이드' 책을 추천받아 읽고 '출산 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대신했었다. 둘째 때는 자연분만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출산 계획서'만 작성한 상태였었다. 출산 후 입원실로 회진 오신 담당 선생님께 정말 자연주의로 출산하셨다며 인사를 들었다.
간호자이자 조산사 자격이 있는 이모와 출산 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출산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면 힘을 주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셨다. 둘째는 빨리 나온다고 말이다. 이걸 낳고서 알았다. '엄마마음요정'은 '괴물마음요정'이 탯줄 잘라줄 틈도 없이 집에서 씩씩하게 나왔다. 우리 집 거실에 깔렸던 요는 박홍근 홈패션 제품으로 산실 역할을 했다. 출산 과정에서 포근하게 큰 역할을 하고 주황색 종량제 봉투에 담겨 이번 생을 마감했다. '괴물마음 요정'이 집의 뒤처리를 해주었다. 사진은 남기지 않고 우리 마음속의 기억으로 남겼다. 갑작스러운 출산이었는데 여러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직계가족만 모인 자리에서 '엄마마음요정' 서윤이의 돌잔치를 했다. 돌잡이에서 '활'을 잡았다. 2차 시도에서 화살을 잡으려고 하다가 화살을 빼니 아무것도 잡지 않았다. 옛날에는 무인을 뜻하는 돌잡이 용품이라고 한다. 1년 키워보니 운동신경이 좋다는 걸 느끼고 있다. 용감하게 큰일 할 수 있도록 엄마가 잘 키워보겠다. 슈퍼히어로처럼 용감하고 씩씩하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우리 딸 서윤이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