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단절의 시대

어느새 이방인이 되어 버린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

by 바람소리

평균 수명

<영국의 역사>라는 책을 읽다가 한 구절에서 책장 넘기기를 멈췄습니다. 워낙 당황스러운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당황스러움이라 표현할 수준을 넘겨버리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이런 도시 환경은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했고, 그래서 농촌 지역에서 평균수명이 보통 노동자가 38세, 전문직 종사자가 52세였던 데 비해, 맨체스터에서는 노동자가 17세, 전문직 종사자는 38세에 불과했던 것이다.


'평균 수명'이 17세였던, 1800년대 초 영국의 맨체스터 지방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일까요? 물론 책 한 권으로 당시 상황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17'이란 숫자는 많은 걸 함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은 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책장 넘기기를 멈췄던 그 찰나를 잊지 못합니다.


평균 수명에 대한 이야기는 '숫자'라는 뉘앙스가 강해서 그런지, 아무런 느낌을 주지 않지만, 특정 시간, 특정 지역의 '평균 수명'은 많은 함의가 있는 것 같습니다.


1930년대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34세였습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 1930년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끔찍한 시간이 지나고 1960년대 1970년대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증가합니다. 1975년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64쯤 되었으니까요. 사회가 많이 안정을 찾은 셈이죠. 당시 30대쯤 되면 '중년'이란 말을 들었습니다. 40대가 넘어서기 전에 며느리를 맞는 시어머니들도 많았고요.


2000년 한국인 평균 기대수명은 76세, 2020년엔 83.5세, 2025년엔 84.5세입니다. 올해 태어난 아이들은 평이하게 살면 84.5세까지는 살 거라는 예상이 되는 거죠.


1960년대 후반 미국의 피터드러커는 평균 수명이 급격하게 연장되면서 사회체계가 바뀔 것을 예견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를 '지식 사회'라고 불렀습니다. 단순한 화두를 던지는 정도가 아니라, 지식 사회의 사회상 자체를 세세히 예견했던 피터드러커의 예견은 적중했고, 우리는 현재 그런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월스트리트 저널에는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기도 했습니다. 이제 지식 산업은 단순히 소프트웨어 자체의 한계를 넘어 다른 모든 산업에 영향을 미치게 될 거라는 예견이기도 했고, 최근 AI의 발전은 이를 더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느끼지 못하지만,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변화해 왔던 것입니다.


지식의 줄기

지식이 산업에 변화를 이끌기 시작한 건 산업혁명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창조적 시선>의 김정운 소장님은 "'산업혁명'이 아니고 '지식혁명'이다"라는 말을 하셨는데요. 장인들의 손에서 사람과 사람사이로 전달되던 '기술'이 지식과 만나서 혁명을 일으킨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약 200년 만에 지식은 기계산업의 위상을 넘어서서 '지식 산업'이라는 분야가 되었고, 산업전반을 '삼키'는 상황이 이른 것이죠.


문제는 우리의 수명입니다. 산업혁명 이전 장인이 되는 과정은 도제교육을 마치고 나서 죽을 때까지 그 기술을 써먹으며 살 거라고 가정할 수 있었는데요. 지식 사회가 되면서 이런 가정은 새벽안개 같이 사라졌습니다.


모든 엔지니어가 졸업한 지 10년이나 15년 후가 되면 이미 시대에 뒤짐으로써 '재교육'을 받기 위해 학교로 다시 가야 한다는 것은 오늘날 상식이다. 그 점은 물리학자, 수학자, 회계사, 교사, 그리고 요컨대 지식을 작업에 적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피터드러커, <단절의 시대>


심지어 소프트웨어 분야는 '무어의 법칙'의 주기인 2년 정도가 기술 변화 주기라고 보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그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삼키고 있고, 소프트웨어는 AI에 의해 삼킴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마드로 살게 되었습니다.


노마드

노마드라는 말은 '유목민'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뉴 노멀>이라는 책에서는 '디지털 노마드'라는 용어를 만들었거든요. 디지털 노마드는 디지털 네이티브(원주민)에 대비되는 말입니다. 태어나서부터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 대비해, 아날로그 네이티브로 살던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강제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디지털 노마드죠.


하지만 우리는 곳 AI 노마드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네이티브 아이들이 3,4살이면 아이패드 같은 디지털 기기에서 동영상을 골라볼 수 있게 되었던 것처럼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은 디지털 기기의 AI 에이전트를 자연스럽게 느끼며 살게 될 겁니다.


디지털 노마드로 피곤한 삶을 살았던 우리는 AI 노마드로 또다시 적응의 노력을 하며 들판을 헤매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의외로 적응이 힘든 족속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하나의 체제가 법률적인 의미로나 또는 권력 구조로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경우에도 그 가치 (또는 반대가치) 그 철학, 그 교육은 우리 속에 남아있다. 이는 우리의 생각 우리의 행동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지배한다. 이러한 상황은 악마적인 역설이다. 우리는 이 체제를 전복시켰지만 아직도 내 몸속에는 그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다.
- 리처드 키푸친스키, 폴란드 언론인 - <웹 강령 95>


'유전인자'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건 원숭이들에게도 발견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닐 포드'라는 개발자는 <능률적인 프로그래머>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합니다.

1960년대(과학자가 별의별 시험을 다 하는 게 허용됐던), 행동 과학자 몇 명이 천정에 바나나 한 송이를 달아둔 방에 접사다리 한 개만 가져다 두고 5마리 원숭이를 가둔 후 행동을 지켜봤다.
접사다리만 올라가면 바나나를 먹을 수 있다는 걸 모두 금방 알아챘지만, 누구라도 그 근처만 가면 차가운 얼을 물벼락을 맞도록 해뒀다.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짐작이 갈 거다. 성난 원숭이 떼, 머지않아, 접사다리 근처에는 어떤 원숭이도 가지 않게 됐다.

무리 중 하나를 물벼락을 맞은 경험이 없는 신참으로 교체했다. 두 말할 것 없이 오자마자 접사다리부터 기어오르려고 했다. 그러자 다른 모든 원숭이가 달려들어 신참을 쥐어 팼다. 신참은 왜 맞아야 했는지는 몰랐지만 이거 하난 빨리 배웠다. 접사다리 근처에는 가지 말 것, 차차 원래 무리의 원숭이를 신참으로 교체했고,
마침내 물벼락을 맞아본 원숭이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됐지만, 누구라도 접사다리 근처만 가면 여전히 다짜고짜 몰매를 놨다.
닐 포드 <능률적인 프로그래머>



적응이 필요한 줄 알지만, 아마 우리는 적응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보완 혁신은 아마도 신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기업의 경영 프로세스와 조직의 관습을 바꾸는 것일 것이다. 스탠퍼드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의 경제사가인 폴 데이비드는 전기가 처음 들어왔을 때의 미국 공장들의 기록을 조사했다. 그는 공장들이 전기를 들여온 뒤에도 증기기관(또는 수차)으로 동력을 얻던 시절의 조직과 설비 배치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는 곳이 많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증기기관으로 가동되는 공장에서는 동력이 대형 중심축을 통해 전달되고 그 힘을 일련의 도르래 톱니바퀴 더 작은 크랭크축을 통해 전달되고 그 힘을 일련의 도르래 톱니바퀴 더 작은 크랭크축을 통해 이용한다. 중심축이 너무 길면 비틀림 때문에 축이 부러질 것이므로, 기계들을 주요 동력원 근처에 모아놓아야 하며 가장 동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기계를 가장 가까이에 놓아야 했다.

산업공학자들은 증기기간과의 거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계들을 증기기관의 위와 아래까지 3차원으로 배치했다.

세월이 흘러 범용 기술인 전기가 증기기관을 대체할 때 공학자들은 그저 구할 수 있는 가장 큰 전기 모터를 사서 증기기관이 있던 곳에 설치했다. 새 공장을 지을 때도 같은 방식으로 배치했다. 그러니 기록상 전기 모터가 생산성 향상에 별 기여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전기 모터는 매연과 소음을 줄여주었을지 모르지만, 그 신기술이 늘 믿음직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생산성에는 별변화가 없었다.

기존 관리자들이 은퇴하고 새로운 세대가 그 자리를 물려받을 만큼 긴 시간인 30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공장의 배치가 바뀌었다.
....
즉 자연적인 작업 흐름에 맞춰 기계들을 배치했다.

이렇게 조립 라인이 갖추어지지, 생산성은 그저 찔끔 향상된 것이 아니었다. 두 배 심지어 세 배로 뛰었다.

에릭 브린욜프슨, 앤드루 맥아피 <제2의 기계시대>

적응이 필요한 줄 알지만, 아마 우리는 적응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조직들과 사람들이 '지식 사회'이전 조직과 관습에 지식 노동자들을 끼워 맞추려 노력했던 것처럼, 아날로그적 사회에 디지털 네이티브들을 적응시키려고 강제했던 것처럼, 아마도 100년도 훨씬 지난 테일러 주의 시스템에 'AI 네이티브'들을 끼워 맞추려 들지도 모릅니다.

푸줏간 주인은 칠면조에게 1000일 동안 먹을 것을 준다. 그는 매일 통계적 신뢰도를 조금씩 높여가면서 칠면조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애널리스트들에게 확인시켜준다. 주인은 추수감사절 며칠 전까지 칠면조에게 계속 먹이를 줄 것이다. 그러다 칠면조는 자신이 칠면조가 된 것을 원망하는 날이 오게 된다.
여기서 핵심은 이처럼 놀라운 상황이 바로 블랙 스완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현상은 푸줏간 주인이 아니라 칠면조에게만 해당한다.

나심 탈레브, <안티프래질>


그렇게 적응하지 못하더라도 운이 좋다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운이 없이 시간이 지나간다면 아마 도살당하는 칠면조가 될 겁니다.


바람은 촛불 하나는 꺼뜨리지만 모닥불은 살린다.
나심 탈레브, <안티프래질>


또 다른 단절의 시대에 노마드로서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 모든 동지들을 응원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