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자율성에 대한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공개 대화방이었습니다. 어떤 분이 대뜸 글을 하나 공유했는데요. '자율출퇴근제'에 대해 비판하는 글이었습니다. 글쓴이는 일은 함께 해야 능률이 오르는데 출근시간이 달라지면 그만큼 일할 시간이 줄어든다고 했고, 함께 논의해야 할 회의에 누군가 늦게 들어온다면 그 사람의 의견을 반영할 수 없게 되므로 본인 손해라고 했습니다.
업무 방식의 변화 중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건 일종의 대세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글이라서 상당히 당황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이런 꼰대스런 발언을 여러 사람이 보는 채널에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니, 오히려 제가 잘못 알고 있나 싶더군요.
아시겠지만, 꼰대라는 말은 은어입니다. 젊은 세대가 받아들이지 못할 옛날 생각을 강요하는 아버지나 선생님을 일컫는 말이었죠. 그러나 젊은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지 못할 생각을 강요하면 '젊은 꼰대'라고 불려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여기에 나름의 합리성과 체계를 부여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현재 전 세계의 VoD(주문형 비디오) 시장을 모두 씹어먹고 있는 넷플릭스, 넷플릭스의 인사 책임자였던 패티 맥코드는 <파워풀>이라는 책에서 넷플릭스의 인사 정책의 핵심이 "어른 대접"이라고 밝혔습니다. 직원들에게 여러 가지 규제를 가하는 건, 직원들을 말썽 부리는 아이로 본다는 것이고 말썽을 방지하는 정책을 쓰지 않는 걸 '어른 대접'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가능한 한 자율성을 보장하는 거죠.
직원들을 어른으로 대접할 경우 그들은 자유를 남용하지 않았고 더 훌륭한 업무 결과를 만들었다는 게 패티 맥코드의 주장입니다.
출간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라는 책에서도 구글의 전 인사책임 임원이었던 "라즐로 복"은 "자유"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유가 전혀 필요 없을 것 같은 단순 작업에도 자유가 중요하다고 말하는데요. 라즐로 복이 예로 든 건 멕시코 나이키 티셔츠 공장이었습니다. 티셔츠 공장에 자유가 주어진다고 특별히 차이가 날 것도 없을 것 같은데요. 의외로 자유를 부여했을 때 생산성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특히 지식 노동 분야에 있어서 자유는 작업 결과에 극단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요. <소프트웨어 프로젝트 생존 전략>에서 스티브 맥코넬의 다음 이야기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책상에 앉아 턱을 괴고 사색에 잠겨있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그의 매니저가 "알버트! 상대성 이론이 지금 당장 필요하니까 빨리빨리 서둘러! 가만히 앉아만 있지 말고 말이야!(쾅쾅!)라고 다그치고 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아인슈타인처럼 똑똑하지는 않으리라. 그렇다면 아인슈타인보다는 더 나은 개발 환경이 필요하지 않을까?
세세한 부분까지 제어하고 옭아매는 인사정책은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는 방법입니다. <경영의 실제>에서 피터 드러커가 이야기한 것처럼 조직의 목적은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지, 구성원들을 제어하는 게 아니거든요.
조직구성원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제어하는 방식이 조직을 위해 올바른 정책이라고 보는 관점은 아마 군대 문화에서 기인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상당히 오랜 기간 군인들이 사회전반에 영향을 끼쳤고, 대부분 남성들은 군대에 가서 그 문화에 익숙해진 다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니까요.
<창조적 시선>의 김정운 소장님은 이런 "군대 문화"의 시작을 자동소총 이전, 1800년대 말 군대에서 찾아내셨더군요. 즉, 총을 쏘면 자동으로 장전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일일이 수동으로 장전하는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장전하는 동안 또 다른 사람들은 총을 쏘고 있어야 전술적으로 유리해지기 때문에 이를 42개 동작으로 나눠서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여러 사람이 정확하게 정해진 동작을 정해진 타이밍에 해야 하는데, 앞에서 뛰어오는 적군을 바라보며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극도로 긴장시키고 자유를 박탈한 상태가 필요했던 거죠.
하지만 이제는 그런 연습이 필요 없습니다. 자동소총이 개발된 것도 거의 백 년쯤 지났고, 소총이 전쟁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는 시대도 아니거든요. 게다가 우리는 민간 기업, 사회 조직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박탈해야 한다면 합당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면 넷플릭스나 구글보다 잘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할 만한 근거 말이죠.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다니엘 핑크는 동기부여에 관해 쓴 <드라이브>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관리직을 맡고 있다면 당신의 어깨너머를 얼른 한번 보기 바란다. 그 근처에 유령이 떠다니고 있을 것이다. 바로 프로드릭 윈슬로 테일러이다. 앞부분에도 언급되었던 테일러는 당신의 귀에 "업무란 주로 단순하고 별로 흥미롭지 않는 일로 이루어져 있네, 사람들에게 적절한 자극을 주고 세밀하게 감시해야만 이런 일을 하게 할 수 있지"라고 속삭인다.
관리직 어깨너머에 "테일러"유령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말인데요. 테일러는 "과학적 관리법"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과학적 관리법'은 노동자의 업무를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누구나 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게 만들고 작업량을 측정해서 잘하는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빈둥대는 사람에게 징계를 주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을 의미하죠. 1900년대 초 업무 관리 방법 자체가 전무했던 상황에서 '과학적 관리법'은 혁신적인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직원들이 업무를 잘하게 하려면 '감시'가 필요하다는 고정관념이 인사 관리 부서에 각인된 것 아닌가 싶네요. 하지만 이런 방식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본능인 "자율성, 자기 결정성, 관계성"등을 무시하기 때문에 동기부여에 적절하지 못하다는 게 다니엘 핑크의 설명입니다.
사이먼 사이넥은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에서 이른바 골든서클의 중심 "왜?"로부터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왜"는 두뇌 변연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신뢰와 충성심"등에 관련 있다고 하고요.
그리고,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를 따지려면 먼저 자율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죠. 즉 자율성이 없다면 자기 업무에 대한 동기부여나 충성심 역시 기대할 수 없습니다.
소련의 레닌은 테일러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테일러가 살아있을 때는 여러 번 초청을 했고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애도했다고 하네요.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시스템"이었습니다. 테일러는 "생각은 근로자들의 몫이 아니다. 생각은 우리가 할 일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이는 조직을 일종의 시스템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조직의 상부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며, 조직에 아래쪽으로 갈수록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면 조직이 성공할 거라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스템의 부품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인간은 부품보다는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게다가 노동자들이 아무것도 몰라도 되는 산업은 이미 끝났습니다. '지식 사회'에서 '지식 노동자'들은 뭘 몰라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조직의 상부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테일러 유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건, 조직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방법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