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에 만나요

by 장해주

"요즘 소개팅 하면, 몇 시에 만나는 줄 알아?"


친구는 기가 막히다는 듯 토로했다.


"글쎄. 점심 때 아니면 저녁 아니야?"


보통, 으레 그런 시간이 아니냐는 듯 어깨를 으쓱해보이는 내게, 친구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아니거든. 요즘은 오후 3시에 만나."


오후 3시라고 그랬다.

뭘 해도 애매하고, 뭘 안 하기에도 아주 묘한 그 시간. 어찌보면 아주 무료하고 따분하기 그지없는 그 시간, 오후 3시.

이게 잘하자고 만나는 건지, 그저 소개팅을 위한 소개팅인 건지, 그냥 심심해서 한 번 만나나 보자는 심산인 건지. 도대체 왜 이런 꾸리꾸리한 오후 3시의 약속을 정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그리고 이런 나의 의문에 대한 친구의 답변은 아주 간단 명료했다.

한 마디로 투자하지 않기.


상대를 만났을 때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그냥 커피나 한 잔 마시고 각자 갈 길을 가자는 무언의 정해진 규칙 같은 거라나. 다시 볼, 그러니까 인연을 맺을 상대도 아닌데 굳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그것에 더 보태어 상대의 눈 높이에 맞춘 대화까지.

감정, 시간, 물질적 칼로리를 소진하지 않겠다는 의지 같은 것이라고, 했다.


친구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몹시 씁쓸했다. 그래서 입술 끝에 걸린 씁쓸함을 커피 한 모금으로 털어내며,


"그래서, 그렇게까지 해서 만나야 하는 거야? 왜?"


도통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나를, 그런 내가 더 이해 안 간다는 듯 빤히 보던 친구가 입을 열었다.


"야. 지금 나이가 몇인데. 이렇게 안 만나면, 뭐 건수가 있긴 하고? 기회가 없잖아."


기회라.

무슨 기회여야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시간을 내어주는 기막힌 소개팅을 멈출 수 있는 걸까.

기회가 없다는 친구에게 물었다. 왜 기회가 없는 거냐고.

친구의 요지는 그랬다. 회사, 집, 회사, 집. 그러는 날에 어쩌다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는 일상이 전부라고. 이런 날들에 어디서 인연 같은 게 뚝 떨어지겠느냐고. 그런 건 아주 희박한 확률이라는 것.


"너, 틀에 박힌 그 고리타분한 상념부터 뽑아 없애. 네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진짜 인연이 나타날 수도 있어. 가령, 네가 매일 타고 다니는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어느 날 우연히 들어간 식당 같은 데서."


친구는 나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 드라마 같은 건 쓰지도 말라고. 네가 말하는 그런 만남은 현실에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야. 생각도 못하냐? 인생을 왜 그리 재미없게 살아~. 돈 드는 것도 아니고. 그런 짜릿한 상상이 삶을 얼마나 윤택하게 하는데."


삶을 반질반질하게 해줄 너의 그 짜릿한 상상은 지금 내 현실에는 턱도 없다는 듯, 친구는 그저 절레절레 고개만 흔들뿐이었다.

그럼. 어떤 사람을,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야, 도대체가 현실적인 거지?

지금까지 소개팅을 하는 것도. 소개팅에서 마음에 드는 상대를 찾는 것도. 내 타입인지, 네 타입인지 몇 번이나 이상한 시간에 만나서 재고 따지고 해보는 것도.

결국에는 제대로 된 '나의 사람'을 찾는 행위가 아닌가.

그런데. 아주 아이러니한 것은 그랬다. 그렇게 기다리고, 인내하고, 또 오후 3시의 만남을 거듭하며. 이런 시간들만 속수무책으로 흘려보내고 나면,


'저 사람 정도면 괜찮은데... 어떻게, 그냥 만나볼까?'


그렇게 고르고 골라, 결국에는 또 타협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또 결국에는... 결혼을 위한 결혼, 뭐 그런 걸 위해 만나는 셈이 되려나.

세상 이보다 더한, 인생 쓴맛이 또 있을까 싶다.

세상 이보다 더, 찝찌름한 인생 맛이 있을까 싶은 거다.


이럴 거면,

그냥 혼자 살고 말지.

만나기 전, 미리부터 상대 신상털기 같은 건 하지 말고.

은근한 설렘과 약간의 긴장, 슬며시 심장을 쿵! 울리는 기대로.

설사 현장에서 상대를 보고 그 마음이 와장창 한방에 무너져 실망하더라도.


타협하지 말고 조금은 당당하게,

상대가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혼자 온갖 '그럴 것이다'로 채우지 말고,

그저 되어지는 대로,

자연스럽게,

살짝 우아하게,

한 스텝 고고하게,


"나랑, 밥 먹고 맥주도 한 잔 할래요?"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진짜 만나고 싶은 인연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건 아닐까.

가슴 설레고 애틋한 사랑도,

그런 인연을 만나는 것도,

결국은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서 나와 상대가 '같이' 만들어가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