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와 버스를 갈아타는 일, 지하철과 지하철을 갈아타는 일, 버스와 지하철을 바꿔 타는 일. 이 번거로운 모든 절차를 짧은 말로 '환승'이라고 한다.
환승은 매일 새롭다. 늘상 같은 출근길, 늘상 같은 지하철, 늘상 같은 시각에 행해지는 이 모든 행동들이 내게는 신선하다 못해 어느 때엔 낯설기까지 하다.
어느날엔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는데, 삑-
"환승입니다"
소리가 낯설게, 그리고 어떤 깊숙한 내면의 뿌리를 툭, 하고 건드렸다.
그날은 어떤 회한 같기도 하고, 어떤 박탈감 같기도 하고, 또 어떤 자괴감 같은 것이 하루종일 따라다니며 나를 못살게 구는 고약한 날이었다. 마음도 괴롭고, 몸은 물 먹은 솜마냥 축 늘어지는 날.
나는 아마도 후회 비슷한 걸 했던 모양이다. 작가가 된 걸 말이다.
'나는 왜 작가가 되었을까?'
정말이지 모를 일이었다. 내가 왜 작가 되고 싶었는지. 나는 어떤 색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나는 내가 화이트 도화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색이 강한 누구와도, 그 색이 옅다 못해 구분이 잘 안 가는 사람과도, 섞일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게 답이 아니었다는 데 있었다. 나는 하얀 도화지가 아니라 그냥 색이 없는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해 내 색깔이 무언지 모르는 사람인 거였다.
좋아하는 글은 있지만 정작 내가 어떤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인지, 나는 어떤 글을 잘 소화하는 사람인지, 어떤 글을 쓸 때 나는 빛이 나는 사람인지, 몰랐다. 그저 주어진 글을 쓰고, 주어진 일들을 감당해내는, 어떤 노력과 훈련으로 만들어진 그런 글을 쓰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걸 알게 된 그날부터 나는 몇 달을 그렇게 헤매다가 그날에야 내 안에서 무언가 터진 듯했다.
'나는 작가가 맞을까? 계속 이렇게 글을 써야 할까? 나는... 나는... 어쩌지...'
작가라는 타이틀을 그만 내 인생에서 빼내야 하는 건지. 생각이 깊어져 침대에 몸을 더 깊숙히 옹송그리는 날이었다.
그날 나는 고등학교 때 썼던 시 한 편을 발견했다. 뭔가 기분이 묘했다.
내가 이런 글을 쓸 줄 알았구나. 같은. 전에 끄적이던 노트에 내가 글을 쓰려고 부단히 애를 썼던 흔적들도 보였다. 한참을 그렇게 바닥에 앉아서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그리고 방송생활을 하며 팍팍해질 때마다 썼던 글들을 읽어내려 갔던 듯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글 쓰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는 사실. 절대로 작가란 일을 포기하거나 버릴 수 없다는 걸. 이미 나는 그런 사람이란 걸.
그날 나는 내가 써야 할, 쓰고 싶은, 내게 채워져야 할 글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게 됐다.
부족한 내 글이 어떤 이에겐 위로로,
삶이 두려운 누군가에겐 용기로,
공허하고 허전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하루하루를
그저그런 날로 살아가는 누군가에겐 충만한 사랑으로,
사춘기, 혹은 삶의 갈림 길에서 설렘과 예민이 공존하는 청춘들에겐 가슴 속에 수줍게 간직하고 싶은 공감의 한 줄로.
그렇게 기억되길 바라며...
활자의 어려움과 두려움 앞에 한 자 한 자 적어내려가며 새로운 작가의 길을 걷는 나는 지금,
"환승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