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한다

by 장해주

요즘 인기 책들이나 서점, sns에 떠도는 글들을 보면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글귀들이 유독 많이 보인다.

나를 소중히 대해라, 나를 사랑해라, 나를...나에 대하여... 나만을 위한.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런 글들에 공감하고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한편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 것. 이건 참 슬픈 일이다.

나도 한때 '내가 내게' 너무나도 가혹하게 대한 적이 있다. 학대를 했다는 표현을 써도 넘치지 않을 만큼.

먹지도 자지도 않으며 프로그램을 서너 개씩 하기도 했고, 술 담배도 달고 살았었다. (물론 지금은 담배도 끊었고, 술은 잘 못먹는다) 여하튼 내 자신에게 좋지 않은 것들만 골라서 하며 살았었으니까. 그런데 이런 육체적 학대보다 더 심각했던 건 내 영혼을 병들게 하는 습관이었다.


괜찮다. 이 한 마디가 내겐 그랬다. 전혀 괜찮지 않은 상황도 괜찮다며 누르고, 괜찮지 않은 나를 외면해버렸다. 그렇게 방치하고 들여다보지 않았다. 괜찮지 않은 나를 정말 괜찮지 않게 방치하고 내버려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속사람과 겉사람이 다른 '내가' 형성되어갔다.

겉은 웃고 있는데 마음은 갈수록 우울하고 아프기만 했다. 나는 내가 왜 그런지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사랑할 수 없는 존재라고, 스스로 그렇게 여기게 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사계절이 돌고 돌고 또 돌고.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날씨가 한창 좋은 어떤 가을날. 나는 우연히 드라마 작가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알았다. 내 마음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상처투성이의 내가 보였고, 그 상처들을 마주하게 되는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나 이젠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었다. 모를 땐 몰라도 알아버린 이상 내가 더 망가지게 둘 수는 없었다.

나는 정성껏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시간들을 겪는 과정은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힘들고 괴로운 날들이었다.


내 안의 상처들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마주한다는 건, 내 속에 두껍게 쌓인 썩은 껍질을 벗기고 벗기고 또 벗겨내는 작업이다. 썩은 껍질은 피딱지가 지고 찐득한 진물들과도 엉기고 붙어있기에 떼어낼 때 여간 아픈 게 아니다.

그래서 어느 날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그만 포기하고도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작업을 이를 악물며 견뎌낸 것은 그 아픔을 참고 피떡이 진 상처껍질을 벗겨낼 때마다 저 밑에 있는 '진짜 내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원래의 나. 반짝반짝하게 빛나고 있는 나. 썩은 낙엽들을 헤치고 파냈을 때 그 속에 하이얀 내가, 그 눈부신 속살이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그 하이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동안 미안했다고 사과도 했다.

나는 그날 눈물이 미어터지게 쏟아졌다. 어쩐지 내 안의 내가 반갑기도 하고, 내가 나를 영영 잃기 전에 그 한조각의 귀한 나를 찾은 것에 대한 안도감 같은 것에.


상처와의 지난한 싸움이 갈무리가 될 무렵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내게 전해온다.


"요즘 무슨 좋은 일 있어?" 안 본 사이에 좀 변한 거 같아. 뭐랄까... 분위기가 많이 바뀐 거 같아"

"자기 표정이 되게 좋아진 거 알아?"


나는 그때마다 설풋, 그저 미소 지을 뿐이다. 그리고 스치듯 짧게 그간의 근황을 전한다. 그러면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물어온다.

도대체 나를 사랑하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나는 나를 되게 사랑하는 것 같은데 내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닌 것도 같다고. 자기 자신이, 스스로가 나를 너무 부려먹는 것도 같고, 귀히 여기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면서.


내가 그 상처의 껍질을 벗기는 작업 중 하나는 나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부족한 나도 그러안는 것. 어쩌면 나라는 존재는 잘하는 것보다, 뛰어난 것보다, 장점보다, 모자라고 실수하고 연약하고 나약한 게 많은 사람이라는 것. 그게 바로 나라는 사람이라는 것. 무언가 특별히 잘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것. 그렇기에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며 사랑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애를 쓰지말라는 것.

왜냐면 나는 있는 그대로도 충분히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까.

부족해도 나다. 실수해도 나다. 그리고 이런 나를, 아낌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젠가 내가 쓴 글을 아주 심하게 평가한 사람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왜 이거 밖에 못했을까' , '어째서 이렇게 밖에 안 됐을까' 생각에 갇혀 몇 날 며칠을 골머리를 앓으며 자괴감과 박탈감에 몸부림을 쳤을 테지만 지금의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정성스레 쓴 글을 마구 평가하는, 비난조에 가까운 말을 들으면 속이 상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날의 평가가 지배적으로 나를 괴롭히지는 않는다).


이런 날이면, 누군가는 내게 좀 이상하다고도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내 엉덩이를 스스로 도닥도닥 해준다. 오늘도 수고했어! 라고.

그 한 줄의 문장과 글들을 써내려가느라 고민하고 고심했던 내가 기특해서.

나를 사랑하는 것의 처음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주는 것이다. 내가 나에게 자꾸 가면을 씌우고 포장을 덧입히게 될수록 진짜 나는 가려진다. 그런 나를 보지 못하면 나는 어쩌면 영영 누군가의 복사본으로만 살다가 생을 마감하게 될 수도 있다.


실수 좀 하면 어때. 좀 부족하면 어때. 내가 잘 할 수 있는 걸 생각하자. 다른 사람을 따라가지 말고 나에게 집중하자. 비교도 하지 말자. 저 사람은 저게 탁월하고, 내게는 저들에게 없는 탁월함이 있는 거니까.

다음엔 더 좋은 걸로. 반드시.


나는 오늘도 내 안의 내게 담담한 위로를 건넨다.

나는 너를,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