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연애

by 장해주

"연애라는 건 왜 나이를 먹을수록 더 힘들어지는 걸까."


커피잔을 만지작 거리던 친구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그런 친구의 말에 나는 커피 한 모금을 천천히 넘기며 대꾸했다.


"그러게. 뒤로 갈수록 누군가에게 특별한 대상이 된다는 거, 참 어려운 거 같다."


둘은 서로의 말에 절절히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다 푸핫- 하고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 넓고 넓은 지구에서, 길에 가는 사람들이 죄다 '어떤 남자'이고 '어떤 여자'일 텐데. 수많은 남자와 여자 사이, 그러니까 그 중간 즈음 어딘가에, '남자와 여자' 중 '와'의 위치에 자리 잡은 것만 같은 기분.

20대 때의 내 연애는 물불 가리지 않는 연애였다. 키가 작든 크든. 얼굴이 좀 생겼든 말든. 직업이 변변찮아도.

내가 좋으면 그만.

그래서 올인할 수 있었고, 때문에 마음껏 양껏 내 힘 닿는 데까지 상대에게 푹 빠져 사랑할 수 있었다. 그냥, '그 사람'이 좋아서.

단지 그뿐이었다.

다른 이유 같은 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그 사람이 좋은 것. 그저 그 사람이기에 너무나 애틋해 죽겠는 마음. 당장 안 보면 미칠 것 같고 하루 온종일 그 사람 생각으로 뇌가 가득 차버려 어쩌지 못하는 그런 거.


나의 연애는 언제나 그랬으니까. 미친 연애.

상대에게 미쳐버리는 연애. 그 사람한테 온 정신이 집중돼버려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하루 종일 제멋대로 반응해버렸으니까. 그 사람이 아니면 정말 안 되는. (그렇다고 해서 미친 집착증이 있는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만.)

사랑한단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 말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한 것만 같고. 얼굴을 맞대고만 있어도 헤죽헤죽 웃음이 비어져나오고. 가만히 내려앉은 그의 볼이며 입술에 쪽쪽, 자꾸만 뽀뽀를 해대고.

어떻게 보면 살짝 돌은 자처럼.

"너는 어떤 연애를 하고 싶어?"


이따금씩 나는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럴 때 내가 뱉는 말은 딱 한 줄 문장이다.

뜨거워지고 싶다고.

뜨거운, 그래서 미친 연애.


내 답에 누군가는 그런다. 아직도 순수한 로맨티스트라면서. 네가 말한 로맨틱이 지금 우리 나이에 될 리가 없다고. 네가 말한 그런 연애란 10-20대나 가능하다고.

아직까지 그런 설렘설렘 드라마틱 한 사랑에 올인하는 나를 보며 혀를 끌끌차면서 하는 말은 그랬다.

무모하다고.


"정신 차려. 지금 네 나이가 몇인데. 사랑만 가지고 되니. 연애란 게. 또 결혼이란 게."


맞다. 무모하다는 말이. 때문에 네 나이를 생각하라는 충고가. 어쩌면 종종, 나 역시도 이런 감상에 젖은 누군가에게 같은 의미의 말을 한 적이 있으니까.

그러나. 정말 그럴까? 꿈꾸지 않기에, 내 삶에 대한, 또는 내 사랑에 대해 접어버린 기대가,

절대로 닿을 수 없다고, 그렇게.

로맨틱이란 의미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그 단어조차 스스로 소멸시켜버린 건 아닐는지.

그리고 나 역시 그랬다. 30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사랑에 대한, 또는 '그 사람'에 대한 어떤 답을 내려놓고 있었던 듯하다. 이것도 맞아야 하고. 저것도 맞아야 하고. 또는 이건 안 되고 저런 건 되고. 온통 '되고 안 되고'이거나 '맞고 안 맞고'에 초 집중이 되어 버린.


그런 나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 책장에 꽃힌 시집을 꺼내 스르륵 넘기다가, 마음을 쿵! 하고 때리는 시구에 멍하니 시어를 몇 번이고 읽어 내렸던 기억.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무나도 유명한 시인지라 모르고 있지는 않았으나. 그때의 나의 상황에, 나의 그 시절에 꼭 맞는 어떤 메시지처럼 다시금 다가왔던 것이다.

그랬다. 나는 잊었다. 아니, 버렸다.

나의 뜨거움을. 뜨거울 수 있는 시간에 온 에너지를 쏟아넣던 사람이었음을.

친구들이 유독 부러워했던 나의 마음은 그런 것이었다.


"넌 상처 받는 거 안 무서워? 어떻게 매번 상대한테 그렇게 올인할 수 있어?"


이런 물음에 늘 내 고개는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갸우뚱하게.


"그게, 어떻게 하면 안 되는 거야?"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천진한 표정을 짓는 내 얼굴에 질문을 하던 친구들은 '그저 웃지요~" 표정으로 일관했던 기억.

그리고 정말 몰랐다. 사랑하는 상대로부터 상처받지 않기 위해 여분의 마음을 남겨두는, 내 마음을 지킬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아니, 별로 지키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을 지키는 선택부터가 이미 나에게는 사랑을 할 수 없는 조건이 돼버리니까.


어쩌면 그때의 연애가 더 어른스러웠을지도. 꾸밈없이,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에 집중하는. 환경, 배경, 조건, 외모 이런 건 아무래도 좋았을 그 시절이.

서른이란 나이를 훌쩍 지난 지금, 누군가 "소개팅 할래?" 전하는 한 마디에 피식- 웃음을 흘린다.

좀 무모해도 좋지 않을까, 싶은.

아직은 무모해도 좋다고.


갈팡질팡, 다가갈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에, 정말 그러는 '사이'에,

나의 단 하나뿐인 '그 사람'은 봄날의 그것처럼 후욱 날아가버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