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게, 부드럽게, 토닥토닥

박하사탕 이야기

by 장해주

되는 일 하나 없고. 맘대로 살아지지도, 뜻대로 굴러가지도 않는.


그 당시 나는 참 되는 일도 지지리도 없었다.
일은 하는 것마다 꼬이고 안 풀리기 짝이 없었고, 사귀던 남자친구와는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기 바빴고, 믿었던 친구에게는 배신을 당하고.
어쩐지 서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부아도 치밀고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분풀이 할 대상은 더더구나 없고. 내 인생은 참 기가 막히게 막연했다.

무언가 대단히 욕심을 낸 인생도 아니었다. 무언가 대단한 포부를 품은 인생도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가 좀 평안하고 온화하게 지나가길 바라는 게 전부인, 어쩌면 그걸 철칙처럼 여겨온, 인생이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인생이라니. 이건 해도해도 정말이지 너무했다.


그래서 죽고 싶었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NO. 그보단 오히려 나는 반대였다. 부득부득 이를 악물고 이 인생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오기를 지나 독기까지 품어지는 터였다.


"내가 보란듯이 살아준다!"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기차를 탔다. 목적지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만 아니면 되었다.

간단한 짐을 배낭에 챙겨서 기차역으로 향했다. 뭔가 울적하기도 하고, 뭔가 무기력하기도 하고, 조금은 시원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런저런 기분을 느끼며 들어오는 기차에 올라 타 내 자리를 두리번두리번 찾아서 앉았다. 그런데 자리에 앉자마자 한숨이 푹 쉬어졌다.


창가 쪽 자리에 앉고 싶었는데. 그때만 해도 나는 그런 거 저런 거 신경 쓸 정신머리가 아니었으므로. 그것보단 무언가 선택을 하는 게 자신이 없었다. 그것마저 내 선택으로 잘못된 결과가 나올 것 같은 기분에.

기차표 하나 사서 좌석 지정하는 선택도 하지 못하게 된 지경에 이를 줄이야. 내가 이렇게 될 줄이야.

어쨌든 간에 나는 그런 이유로 역사 직원이 주는 아무런 표를 그대로 받아 든 것이었다.

참담한 기분이 더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그런데 나의 '참담한 기분'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자리야 뭐 그렇다 치고. (가까스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마음을 털었을 때였다.) 사실 창밖 구경은 통로 쪽 자리에서도 못할 건 아니었으니까. 나는 기차가 달리며 쓱쓱 보여주는 그림 같은 풍경을 볼 기대감으로 모든 '나쁜 생각과 마음'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내 기대감이 물거품처럼 꺼지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차창마다 들어오는 햇살을 막기 위한 커튼이 꼼꼼하게도 쳐져 있었다.

내 옆에 앉은 아줌마 역시 자기 쪽 창에 커튼을 친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잠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줌마한테 양해를 구할까.'


그러나 이내 그만 두었다. 방송생활하면서도 출연자나 섭외 건 등등 읍소하는 게 일이었는데. 여기서까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실소가 절로 비어져 나왔다.

그럼 그렇지. 안 될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댔던가. 햇빛 한줌도 내 맘대로 볼 수 없는 처지라니. 꼭 내 인생 같았다. 깜깜하기만 해서 어디로 나가야할 지 모르는, 그 막연하고 침체된 그때의 나.

울컥, 하고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이어폰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는 내 마음을 더욱 울적하게 만들었다. 그런대로 저런대로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괜찮다고 자기 최면을 걸며 지금의 상황에서, 그 이상한 모든 기분들로부터 떨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내 마음과 기분은 더 비참해졌다.

사실 나는 하나도, 조금도 괜찮지가 않았다. 그걸 애써 누르고 달래려니 더 미칠노릇이었다. 이럴 거면 집에나 있을 걸 그랬나, 그냥 다음 역에서 내려 집으로 갈까.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그리고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렇게 다음 역이 가까울 즈음, 갑자기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눈을 떠보니 옆 자리에 앉은 아줌마가 수줍게 웃으며 무언가를 내미는 것이었다. 박하사탕이었다. 나는 이어폰을 귀에서 빼고 아줌마와 박하사탕을 번갈아쳐다보았다. 아줌마는 그런 내가 멋쩍었는지,


"아가씨, 어디까지 가요? 음... 입이 좀 심심할까봐. 이거 입에 넣고 깨물지 않고 살살 녹여 먹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다 왔더라구"


나는 아줌마가 준 박하사탕을 감사하단 말과 함께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 옛날식 박하사탕 비닐을 벗겨 입에 쏘옥 넣었다. 달달하고 홧홧하고 시원하고 씁쓸한 맛. 박하사탕 맛을 곱씹다 나는 그만 풋, 하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박하사탕이라니.

박하사탕을 찬찬히 입 안에서 녹이다보니 어느새 내 참담했던 기분이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작은 박하사탕이 나를 위로하는 기분.


그날 박하사탕은 나를 그렇게 감싸 주었다.

따뜻하게, 부드럽게,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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