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던 2019년 4월. 브런치에 연재 하던 <엄마의 자화상> 매거진에 대한 출판 의뢰를 받았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훌쩍 흘러 꼭 1년이 지난 2020년 4월, <엄마의 자화상>은 [엄마도 엄마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라는 이름으로 출간을 앞두고 있다.
엄마에 대한 글을 풀어낸 나의 시간들은, 어쩌면 정말 엄마란 이름에 대하여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했고 '내 엄마'의 인생을 제대로 바라보고 마주했던 시간들이었다.
책 작업을 하며. 1여년의 그 시간들을 보내며. 나는 비로소 엄마라는 이름을 제법 내 안에 품고 사랑하는 법을, 그리고 '엄마'라는 이름이 주는 엄청난 용기와 힘, 그 이름으로 하여금 나는 이 세상 가운데 당당한 나 자신으로서 살아갈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엄마. 이 두 음절에는 참 놀라운 힘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아주 오랫동안 책장에 꽂아두고 펼치지 않아서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어떤 책처럼, 엄마는 내게 늘 그런 존재였다. 꺼내서 다시 펼쳐보고 싶지 않은, 어쩌면 펼쳐서 들여다보는 게 내내 무섭고 두려운.
그러다 어느 날인가 후배작가를 통해 작가들이 글을 자유롭게 올릴 수 있는 공간, 브런치에 대해서 알게 됐다. 어떤 소재로 글을 쓸까, 고민을 하다가 문득 엄마가 생각났다. (음... 그게 왜인지는 나도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그냥’ 엄마 생각이 났고, ‘그저’ 엄마가 떠올랐다.
가만히 내 속을 들여다보니 마음 안에서 이제는 용기를 내야 한다, 라는 어떤 울림 같기도 한 것이 댕그랑 댕그랑 소리를 내고 있었다는 것 외에는. 그래서 용기를 조금 내보았다. 엄마라는 그 존재를 마주 대하기 위해서.
엄마라는 이름과, 그리고 그 엄마에 대해 펼쳐서 글을 쓴다는 건 내게 있어 어쩌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했고 또 어떤 면에서는 일생일대의 엄청난 도전과도 같은 거였기에. 그만큼 내게 엄마는 어떤 한 부분에서는 풀어도 풀어도 끝끝내 답을 찾을 수 없는, 내 스스로가 결코 풀 수 없었던 수학 문제 같은 그런 이야기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느냐. 글쎄... 그건 그때 내 마음 안에서 울렸던 그 울림에 순순히 응했던 것 같은. 그러다보니 비로소 엄마가 좀 제대로 보였다. 내 마음 안에 있는 진짜 엄마가.
그래서였을까. 글을 쓰는 내내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그래서 눈물이 났고 그래서 엄마가 못내 더 사무치는 날들이었다.
엄마의 인생을 잔잔하게, 그리고 가만히 더듬어본 시간들.
우리 엄마는 상처가 참 많은 사람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늘 상처와 부둥켜 안고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나날들. 어떻게 보면 상처로 인해 얼룩진 인생이 참 지난하게도 보이고 또 한편으로는 애잔하기도 하고. 그런 엄마를 글로 풀어내며 눈물 콧물을 짜기도 하면서.
이 글이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를 가만히 생각해본다.
누군가에게는 잔잔한 위로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1도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몸서리가 쳐질 만큼 내 얘기 같아 마음을 쥐어뜯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겠거니. 하면서.
그렇기에 써냈다. 엄마의 그 상처들을 마주하고 바라보는 시간들이 내내 아파서 한 줄 쓰고 눈물을 훔치고 또 한 줄 쓰고 노트북을 닫아버리고. 엄마의 그 지난 삶과 함께 동행하며 그렇게.
상처로 얼룩진 이 세상의 모든 엄마, 그리고 여자, 딸들의 삶이. 그 마음이. 내 글로 인해 조금이나마 덜어내질 수 있다면. 싶어서.
이 책을 읽을 그대에게 잔잔하고 평범한 위로가 전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