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애정결핍. 딱히 애정결핍에 나이 같은 건 상관이 없지만, 그렇다. 나는 애정결핍이다. 그것도 엄마한테. 엄마한테 관심 받고 싶은 1인.
애정결핍이라는 게 뭔가 결여된 것으로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두고 싶다. 예전에 어떤 가수는 이런 노래도 부르지 않았던가.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고.
다음 책 출간을 준비한다, 혹은 드라마 준비를 한다 등 나의 소식을 접한 지인들은 한 번씩 안부를 전해온다. 요즘 글은 잘 써지는지, 혹은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 이번에는 어떤 주제로 쓰는 건지.
그런데 우리 엄마는 정작 단 한 번도 물은 적이 없다. 참 무심하기도 하시지.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그때가.
고3, 특목고(특수목적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시절.
특목고는 특성상 고3이 아니라 고2가 수험생이다. 그런데 나는 그 수험생 시절에 팡팡 놀았던 것. 전공 선생님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너 1학년 땐 글 좀 솔찬히 쓰더니, 왜 그러냐? 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거 알어?"
문제는 엄마는 내가 이런 사정이 있는지조차 몰랐다는 것. 다른 사람들이 다 갖는 관심이 엄마에게만 결여된 건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먹고 사는 게 바쁘고 고단해서 그랬다고는 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 나고 부아가 치밀고.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대학 못 갈지도 몰라."
"뭐? 그럼 재수하던가 취직을 하던가."
"아니 그게 아니잖아! 딸내미 대학 못 갈지도 모른다는데, 걱정도 안 돼?"
"참나. 걱정한다고 결과가 달라져? 이런 거 할 시간에 부지런히 글 한 줄이라도 더 써 그럼."
두고 보라지. 내가 보란 듯이 글 써서 엄마한테 꼭 인정받고 말 테니까!
내가 특목고에 다니던 시절에는 그랬다. 전국 백일장에서 장원(1등), 차상(2등), 차하(3등) 안에 입상을 하지 않으면 대학을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특기생으로 대학교 원서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교육과정이 그때와 달리 많이 바뀌었다.)
나는 그때부터 4개월 동안 한 신문사의 백일장만 죽도록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에 해냈다. 신문사의 전국대회 3등 입상.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혹시 신문 봐?"
"갑자기 신문은 왜?"
"안 보면 00일보 오늘 신문 하나 사서 00면만 봐. 나 입상해서 내 글 거기 실렸어."
"뭘 굳이 사서까지 봐~. 축하한다! 이제 대학가겠네."
시큰둥한 반응의 축하 전언. 다른 엄마 같았으면 내 딸이 쓴 글이 신문에 실렸다고 온 동네방네를 누비며 자랑을 했을 일인데. 이제 대학갈 수 있겠네, 라니.
내가 그동안 이 글 한 편을 위해 얼마나 피를 말리고 살과 뼈를 깎고 깎았는데. 엄마가 말은 그렇게 했어도, 딸내미가 대학을 가네 못 가네 하는데 마냥 속이 편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엄마를 감동시키고 싶었는데. 감동은커녕 대수롭지 않은 엄마의 반응에 꽤 마음을 다쳤었다.
그리고 며칠 후. 아빠의 축하전화로부터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엄마가 그날 자(내가 입상한 날) 신문을 사서 온 동네방네를 누비며 "내 딸 글 신문에 실렸어! 입상했대!" 떠들썩하게 자랑을 하고 다녔다는 사실.
그냥 앞에서 좀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결국 그럴 거였으면서.
신나서 동네를 뛰어다녔을 엄마의 환한 얼굴을 생각하니 풋- 웃음이 터졌다.
그 후로 정확히 19년. 엄마는 여전하다. 앞에서 드러내놓고 이렇다 할 말 같은 건 해주지 않는다.
제발 나한테 관심 좀 가져줬음 좋겠는데. 특히 내가 원고나 대본 등을 쓸 때. 다른 누구보다 큰 응원이 되고 힘이 될 텐데. 내 엄마는 그런 것에는 여전히 무심하다.
그렇게 얼마 후. 상주 집에 내려갔을 때였다.
"어머 언니! 얘가 그 딸이야? 작가 딸?"
한껏 부러운 눈으로 엄마를 보는 동네 아줌마. 그 모습이 좀 쑥스럽기도, 민망하기도 해서, 쭈뼛이는데.
"엄마가 자랑을 얼마나 한던지~. 책도 잘 읽었어요. 언니 진짜 부럽다! 어쩜 이런 딸이 다 있어? 자랑할 만하네 언니가."
옆집 동생의 너스레에 민망했던지 엄마가 또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뭘 또 그렇게까지~."
어느 날부턴가 엄마는 하루에 수십 통씩 전화를 걸어온다. 그게 어떤 날은 귀찮을 때가 있고, 바쁜 날에는 신경이 거슬리고, 한창 흐름을 타고 글을 쓰는 타이밍에는 여간 방해가 되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엄마의 전화를 무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그럴수록 꼬박꼬박 잘도 받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엄마 전화니까.
그러다 알게 됐다. 어쩌면 엄마도 관종이 되고 싶은지도 모른다고. 딸한테 사랑 받고 싶고, 주변의 여느 모녀가 꺄르르 웃으며 지나는 모습에 내 딸이 떠올라서 무심코 아무 용건 없이 전화를 걸지도 모른다고. 그냥 나한테도 딸이 있다는 사실에 안심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내가 엄마가 있어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그 사실이 나를 굉장히 기고만장하게 하는 어떤 큰 힘이 되게 해서 이따금씩 엄마를 속상하게 하고 아프게 할 때도 있지만.
이거 하나만은 분명하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나도 엄마를 사랑한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그 어떤 상대한테보다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
때문에 엄마는 딸에게, 딸은 엄마에게...
관종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