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친구가 울면서 찾아왔었다. 도대체 자신의 엄마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면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친구의 엄마가 그녀의 남자친구에게 엄청난 상처를 준 것 같았다. 남자친구를 제 엄마에게 처음 소개하던 날. 친구의 엄마는 그랬다고 한다.
한 마디로 내 딸은 최고다. 그런 내 딸을 만난 너는 행운아이며, 네 기준에 어디 가서도 내 딸만한 여자 못 만난다고 했다는 것.
어머니가 좀 너무했네, 싶으면서도 한쪽 마음에서 부러운 마음이 드는 건 왜였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 엄마가 이렇게 전적으로 내 편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남자친구와 싸웠을 때, 속상한 마음에 엄마한테 털어놓으면 우리 엄마의 반응은 대게는 이렇다. 네가 성격이 못돼서 그런다는 둥, 넌 너무 쌀쌀맞다는 둥, 마음이 차갑다는 둥.
이런 말을 들어도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없이 넘어가지만, 내 심장은 이미 짓이겨져 있다는 걸 내 엄마는 알까.
남자친구의 편을 들어서, 내가 인격적으로 못돼고 차갑고 쌀쌀맞아서,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일에서 나쁜 결과가 초래되더라도 그건 순전히 내 탓이고 내 잘못이라며 지적당했기 때문이 아니다.
엄마가 내 편이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 결정적인 순간에 내게 등을 보이는 사람이라는 씁쓸한 지점이 나를 가끔 슬프게 한다는 걸.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엄마한테만은 절대 손가락질 받기 싫다는 걸.
그리고 이럴 때마다 짙은 고민이 생긴다. 도대체 나는 엄마한테 어떤 딸일까. 엄마는 나를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 걸까. 진짜 엄마는 날 사랑하기는 하는 건가. 엄마한테 무한신뢰를 받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내 엄마는 딸을 믿어본 적은 있을까.
잔뜩 상처받은 마음으로 구겨져 있는 지금의 나를, 엄마는 알고 있을까.
내가 좀 잘못을 했어도, 그래서 좀 못된 언행을 했어도, 엄마만은 나를 좀 안아주면 안 되었던 건지. 누군가와의 트러블에서 잔뜩 상처 받은 마음에, 두 번 세 번... 같은 상처의 자리에 생채기를 내는 느낌.
그게 엄마라서 더 쓰리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경험.
내가 지금 필요한 건 날카로운 바늘이 아니라 상처가 덧나지 않게 해줄 마데카솔인데.
언젠가 엄마랑 물은 적이 있다. "엄마. 엄마는 내가 어떤 사고를 치고 잘못을 해도 내 편이야?" 그때 엄마의 대답은 '네가 살인자여도 엄마는 내 딸 편.'이었다.
그런데 이따금씩 이런 상황들이 올 때면, 도저히 믿지기가 않는다. 엄마가 내 편이 돼 줄 거라는 그런 기대 같은 게.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내게 충고하고 비판하고 조언을 하는 엄마가 아닌, 그저 따뜻하게 한 번 토닥이며 안아주는 엄마의 그런 품이 그리웠을 뿐이었다.
그렇게, 사랑받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마다 엄마는 여전히 내 편이 아니라는 사실. 물론 엄마가 너는 언제 내 편이었냐고 따져 묻는다면 "단연코 나는 그랬었노라" 말할 수 없다. 언제나 이 사실 앞에서 민감해지는 건 엄마와 딸이기 때문이 아닐는지.
어떤 날에는 엄마의 이런 반응들에 화가 나서 "엄마! 내 편 좀 들어주면 어디가 덧나!!" 하며 덤빌 때도 있다. 그러면 엄마는 또 "너는 꼭 애매한 것만 들고 와서 편 들어달라 하더라?" 받아친다.
이런 애매한 순간이기에 더 필요한 거다. 엄마의 편 들기가.
누구나가 보기에 다 옳고 그른 걸 말할 수 있는, 그런 뻔하디 뻔한 일이라면 굳이 엄마한테까지 일일이 말해가며 '나 좀 안아달'라고 조를 필요가 없다. 그런 상황의 것이라면 나 혼자서도 너끈히 해결할 정도는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어디 내 마음과 같던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돌발 상황의 연속인 게 바로 인생이다.
엄마가 필요한 건 이런 이유가 아닐까. 같은 여자로서, 또 앞서 간 인생의 선배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로서. 좀 살아본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
이 세상에 태어나 누구나 한 번의 삶을 살고 모두가 처음인 인생을 산다. 그런데 그 처음에서 누군가 먼저 앞서 간 흔적이 보이면 안도하게 되는 그런 마음. 그게 엄마의 발자국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처음 직면한 문제들이 산적하고 뭐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모를 때.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하고 누군가는 저런 말을 해서 혼란스러움을 야기할 때. 뭐가 맞고 틀린지 헷갈릴 때. 무엇보다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건지, 잘하고 있는 건지, 그 답이 절실히 필요할 때.
엄마가 필요하다. 전적으로 나만을 편 들어 주는 그런 엄마가.
그냥 덮어놓고 내 편이었으면 좋겠고, 아니꼬워도 눈 한 번 질끔 감고 "잘했어! 장하다 내 딸!" 이런 말을 해줬으면 좋겠고, 좀 우울하고 울적한 날에는 가만히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었으면 좋겠다.
남들이 보기에 '제 딸 팔불출'이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엄마에게서 그런 모습도 기대어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가 엄마 딸이라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