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와 이직 회고록 1
지금까지 머물렀던 회사에서 퇴사하고 새로운 회사의 출근을 기다리고 있다. 출근을 기다리면서 지금까지 바빠서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고향에 내려가서 부모님을 뵙는 다양한 일정을 가득 채웠다. '한 주만 더 쉰다고 할 걸'이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지금까지 자유롭게 원할 때, 원하는 곳에 가서 일을 하는 식으로 지내고 있었으니 환경적 자유가 절실히 필요했던 건 아니었다. 물론 이직이 확정되어 현재 직장을 퇴사한 뒤, 마음도 자유롭고 가볍게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이랑은 다르겠지만 재택근무로 환경이 자유로웠던 2년의 시간이 있었고 여행을 가기에도 여러 환경이나 배경이 애매한 시기라 일찍 입사해서 얼른 온보딩을 거쳐 내 일을 하고 싶단 생각으로 퇴사 후, 10일 뒤 입사를 확정했다.
지금까지 다녔던 회사는 풀 재택(외부 미팅이 있을 때도 있지만 1달에 1~2번이었다), 내 일을 끝나면 유동적으로 빠른 퇴근, 회사에 출근할 일이 있다면 출근(퇴근) 시간도 업무시간으로 생각해서 천천히 점심 전에 도착, 러시아워가 되기 전에 퇴근하는 꿈의 직장 같은 곳이었다. 게다가 사람들도 좋아서, 내가 모르는 게 있으면 다 같이 찾아봐주고 알려줬다. 실적이나 성과 압박보다는 왜 이런 문제가 있고,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곳이었고 답을 내리기 어려울 땐 대표님께서 직접 도움을 주셨다. 해당 상황에 대한 최선의 답과 함께 이유를 알려주기도 했다. 심지어 작년에는 다 같이 제주도에 가서 숙소를 잡고 일을 해보자고 하면서 합법적으로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지금까지 다녔던 회사 자랑을 늘어놓으라면 끝도 없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남들은 그렇게 좋다는 회사, 왜 떠나냐?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회사를 다니면 자주 듣는 숫자가 3/6/9다. 권태기, 이직에 대한 생각 등, 회사인이 가질 수 있는 고민이 돌아오는 주기로 입사 3개월부터 시작해서 경력 3년 차까지 시기와 경력을 나눠서 전환점이자 분기점이 되는 숫자. 나에게도 3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간의 프로젝트를 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핀테크와 내가 맞는 것인지, NFT는 과연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는 기술인가? 게다가 하나의 프로덕트를 지속해서 관리해보고 싶은 욕망도 무럭무럭 피어났다. Zero to One은 재밌다. 그래서 PM 일을 하는 게 좋았지만, 유지보수 기간이 길지 않은 SI 프로젝트를 맡다 보니 그 부분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물론 회사에서 새로운 자사 서비스를 만들 예정이라는 소리가 있었지만, 예정일뿐이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고 그동안 일을 하면서 핀테크, 금융 서비스에 권태로움을 느끼고 있는 시점이라 전환이 필요하다 느꼈다.
첫 번째 고민 : 과연 앞으로 커리어를 어떻게 쌓을 것인가?
'디자이너'로 시작했던 커리어. 디자인이 좋고, 시각 작업이 재밌었다. 그렇지만 이게 평생 직업으로 삼을 만큼 내게 흥미롭고 재능이 있는가를 더해서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떠올랐다. 더 재밌게 느껴지는 일,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일단 프로덕트 디자이너와 PM 포트폴리오를 2개 준비해서 둘 다 지원하고 면접을 진행했다.
두 번째 고민 : 인원이 많은가?
작은 스타트업에 다녔기 때문에 모든 인원과 정말 많이 친해졌다. 모든 인원이라고 해봤자 많은 인원도 아니었다.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분들과 제주도 여행을 가서 같이 바다를 보고, 맛집을 가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면서 친하고 즐겁게 지내기도 했지만 사람이 많으면 다양한 관점과 경우를 체험할 수 있을 테니 지금보다 더 많은 직원이 다니는 큰 회사에 다녀보고 싶었다. 그래서 인원과 규모를 확인하면서 회사 리스트를 만들었다. 면접에서는 조직도와 인원을 물어보았다. 내가 같이 일하게 될 인원은 몇 명이고 구성은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고 회사와 프로덕트의 규모를 살폈다.
세 번째 고민 :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나에게 해당 회사의 경력이 무기가 될 수 있나?
프로덕트 디자이너, 프로덕트 매니저 무엇이든 일단 합격을 하면 내 커리어에 한 줄이 생긴다. 근데 그 한 줄이, 미래의 다른 한 줄을 만들 때 도움이 될까? 많은 고민을 했다. 이력서에 한 줄이더라도 무언가를 적을 때, 배운 것이 있고 나만의 무기가 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이직을 하는 곳에서 다른 사람은 없고, 나만 가지고 있는 차별화를 만들 수 있는가? 에 대한 답이 포함되어있어야 했다. 예를 들자면, 도메인이 확장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네 번째 고민 : 내가 일을 즐길 수 있을까?
첫 번째 고민과 유사한 흐름이지만 내가 일을 할 때 고민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일을 할 때 성취감이 들고 손에서 놓지 않을 수 있는지 생각했다. 회사별로 도메인이나 상세 JD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계속 파고들었고, 내가 어느 순간 다 포기하고 될 대로 돼라~라는 말을 하지 않을 만큼 끊임없이 고민하고 배울 게 있어서 즐길 수 있는지, 해당 회사의 성장 방향이나 문화는 함께 즐길 수 있는지 확인했다.
다섯 번째 고민 : 체계가 잡혔는가?
체계가 잡힌 회사는 많지 않다. 완벽한 체계를 원하는 게 아니라 당장 내가 회사에 갔을 때, 나에게 원하는 게 구체적이고 함께 일할 문화와 조직도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있는 상황이길 바랐다. 그래서 채용 과정에서 오는 결과 안내, 메일, 사전과제 등도 유심히 살피고 면접을 보는 회사마다 마지막에 조직 구성(내가 함께 하게 될 인원, 직군 분포)과, 내가 가서 바로 해야 할 일(혹은 백로그의 유무)을 역으로 물었다. 인사담당자, 실무자의 답변에서 회사 내부의 사정을 어느 정도 살필 수 있고, 나와 핏이 맞거나, 그렇지 않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선 누가 들어도 알고 있을 만한 기업 채용 과정과 면접을 통해 실망을 많이 하기도 했다... 역시 보이는 게 다가 아니구나 싶었다.(물론 내가 정말 정확한 회사 내부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단편적인 생각일 수도 있다)
디자이너 면접을 보면서, 디자이너로 질문을 받을 때와 PM 면접을 보면서 질문을 받을 때, 사전과제를 통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힘들고 괴로웠지만 재미를 느끼면서 내가 어느 직무를 더 사랑하게 되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디자이너와 PM 공고를 모두 살펴보았지만, 후반에는 PM 직무만 집중해서 선택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합격하고, 생각해보니 나와 맞지 않을 것 같거나 다른 곳을 위해 거절할 수도 있지만 통화와 비대면 화상 미팅으로 진행된 채용과정에서 단편적이지만 회사가 필요하다면 변하려고 하고, 일 할 때, 다양하고 많은 상황을 겪고 해결하는 도전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회사에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을 신경 쓴다는 점이 예전부터 인상적이었는데, 이번 채용 공고의 해당 직군에서도 그런 부분을 찾아볼 수 있었다. 마음이 기울다가 마무리를 지은 건, 실무자 인터뷰에서 함께 일하게 될 분께 내가 했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복기하면서였다.
면접 마지막에, 지원자가 면접관에게 질문을 하는 시간을 좋아했다. 그때마다 면접관님께 PM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역량, PM이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리고 이직하기로 한 곳에서는 기본적이지만 그만큼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이야기하시면서 PM은 단순히 프로덕트를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비전(미래)을 생각하고 만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한국은 PM이라고 하면 프로젝트 매니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프로덕트 매니저라고 표기하지만 JD를 보면 프로젝트 매니저의 일이기도 하고, 막상 둘의 차이를 모르는 곳도 종종 있었다. 그 곳에서 원하는 프로젝트 매니저도 재밌다! 하지만 나의 커리어는 프로덕트 매니저로 쌓고 싶다. 그래서 면접에서 꼭 PM 직무에 대해서 다시 한번 물어보는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내가 찾던 답이었다!
합격 연락을 받고, 이제 다니던 직장에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근데 재택근무를 하고 있으니, 빠른 소통이자 자주 하는 소통은 채팅인데, 텍스트로 퇴사를 말하는 건 예의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에 출근하겠다고 말하면서 일정을 잡았다. 할 말이 있다는 말을 전하자, 사람의 감은 다들 비슷한지 내 연락을 확인하고 바로 전화를 주시기도 했다. 이직을 하게 되었다고 말을 할 땐 운동할 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 잘못은 아닌데, 여하튼 이런 말을 직접 하는 것도 처음이고 지금까지 같이 일을 해왔던 분께 이제 그만 떠난다는 말을 하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퇴사를 해야 했다. 미루면 서로가 힘들어질 뿐이라는 생각으로, 퇴사 이야기를 하기 위해 회사에 출근했다. 괜히 팀원 모두가 마실 커피를 사서 출근하고 분위기를 보다 전후 사정을 설명하면서 퇴사한다고 말했다. 바로 퇴사를 한 건 아니었다. 인수인계와 지금까지 했던 작업을 정리할 시간이 서로 필요했기 때문에 퇴사일을 따로 정했다. 단순히 작업을 정리하고 떠나는 게 아니라, 내가 했던 것들의 의도나 추가 작업을 할 경우 손이 덜 가는 방향으로 정리해주고, 내가 없어도 대처할 수 있는 예비 문서, 앞으로 사용할 문서 등을 미리 만들어두었다. 퇴사일 전에 종종 정리한 내역을 팀원에게 인수인계를 할 때 마치 사골국을 끓여두고 떠나는 엄마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합격했다고 끝이 아니다. 첫 취업에서는 합격 안내를 받고, 처우 협상이라고 해봤자 연봉 정도였는데 이 부분도 신입이기 때문에 정해진 테이블에 따랐다. 그러니 거의 순식간에 진행되었는데 이직하면서 진행한 처우 협상은 올해 중에 가장 쓰기 어려웠던 이메일로 남을지도 모른다. 작년 초에도 이직을 시도하면서 합격 연락을 받았지만 그때는 처우 협상이라고 할만한 단계에서도 아주 초기에서 상황과 여건이 되지 않아 빠르게 이직을 포기하고 과정을 중단했다.
그래서 처음이라고 해도 무방할 경험으로 합격 이후, 처우 협상을 시작했다. 필요한 서류를 안내받고 회사에 퇴사 이야기와 함께 서류를 준비, 해당 서류를 근거로 원하는 처우에 대한 의견을 작성해서 메일을 보냈다. 사실 메일을 쓰면서 이거... 너무 지르는 건가? 하는 고민으로 유튜브도 찾아보고 주변에도 많이 물어봤다. 일단 지르면 그쪽에서 알아서 조절한 처우로 조정해준다고 하니 적당한 근거와 함께 원하는 연봉을 적어 협의하고 과정 중에 복지 등 궁금한 것도 함께 물었다. 그럼에도 협의가 되는 내내, 묘한 불안감과 긴장감을 없앨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이제 일할 곳이니까 다양하고, 나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꼼꼼히 의견을 전달하고 같이 맞춰나가려고 했다. 인사 담당자분께서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웃으면서 협상을 끝내고 입사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부분을 무리 없이 모두 준비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처음인 게 많아서 버벅거리고 이런 건 어떻게 해야 돼? 이런 것도 준비해...? 하는 것도 많았다. 단편적으로 영어 닉네임을 정하는 일은 무척 고민이 되었는데 막상 내가 하고 싶었던 닉네임이 이미 있던 닉네임이었다. 친구들이랑 같이 이것저것 고민하면서 나한테 잘 어울릴게 뭘까? 했던 게 결국엔 밤에 충동적으로 선택한 닉네임이 되었다.(물론 이 닉네임도 마음에 든다.)
계약직으로 일을 해보았을 때는 계약 만료가 되어서 헤어졌다. 계약이 그러니까 헤어지는 거라고 당연하게 여기고 마지막 회식을 하고 웃으며 헤어지고 종종 연락을 하는 사이가 된 경험이 다였다. 몇 번을 말하지만, 이번처럼 자발적인 퇴사는 처음이었다.
지금의 내가 있게 해 준 동료와 대표님께 감사를 표하고 싶어 많은 고민을 했다. 주변 사람에게 어떤 선물을 주는 게 좋을지 물어보다 결국 바디워시, 로션과 일상 속에서 사용할 수 있는 컵 + 엽서를 준비했다. 선물을 받을 사람마다 어울리는 향을 골랐지만 만약에 취향이 안 맞을 수도 있으니까 교환권도 챙겼다. 그리고 퇴사일에 선물을 가지고 회사로 마지막 출근. 퇴사 하루 전까지만 해도 비가 와서 선물을 어떻게 들고 가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퇴사 당일에는 비가 그쳐서 다행이었다.
선물을 전해주고 퇴사 관련 서류(사직서 등)를 작성, 장비 반납 그리고 필요한 서류를 모두 받았다. 그리고 같이 회식을 하면서 이제 출근하면 어떡하냐고 놀림을 받기도 하고, 혹시라도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돌아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헤어지는데 언제든 돌아오라는 말을 해주는 팀원이 있다는 게 그동안 내가 잘해왔다는 방증 같아 기뻤다. 회사에서 모든 걸 정리하고, 마지막 인사를 한 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엽서를 본 분들이 따로 연락을 주시기도 했다. 괜히 나도 또 감동을 먹어서 답을 바로 하지 못하고 많은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고 뒤늦게 답을 보냈다. 언제나 마무리하는 게 가장 어렵고 슬프고, 묘하다. 게다가 디자이너로 입사해서, 재택근무를 하고 PM으로 전향을 하는 기회를 준 곳이자 항상 나를 배려해주고 이해해준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멈추고 나는 다른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게 낯설었다.
면접에서 받은 질문 리스트(회사 특징 및 회사별 직군이 보이는 질문 제외)
PD - 프로덕트 디자이너 면접 질문
자기소개
디자이너로 어려웠던 경험
추상적이고 모순적인 요청사항이 올 경우 대처법(경험)
일하면서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디자이너로 장단점
포폴에서 마음에 드는 프로젝트
자사 서비스 써보았는지?
지금 자사 홈페이지(서비스) 평가
모바일과 웹의 차이점(물론 사이즈는 당연하고, 그 외의 차별점이나 특별히 다르게 보는 점)
만약에 같이 작업하는 디자이너가 고집을 부린다면?
당장 작업에 투입되었을 때 어떤 것을 할 수 있는가?
(현재 PM인데 다시 디자이너가 되려는 이유)
PM - 프로덕트 매니저 면접 질문
지금 회사는 어떤 회사인가?
포폴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플젝은?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플젝과 지금 다시 개선할 경우라면?
PM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역량은?
지금 회사에서 하는 일 - 구체적으로
일 할 때 어려웠던(힘들었던) 경험
커뮤니케이션하기 가장 어려웠던 경험
워터폴, 애자일 중 어떤 걸 많이 겪었는지?
데이터를 가장 중요하게 보고 사용하는 부분은?
선호하는 사내 문화
역으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경우, 어떻게 제안?
자기만의 강점은 무엇인가?
PM으로 일을 할 때 가장 보람참을 느낄 때
(디자이너에서 PM이 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