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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진 May 24. 2021

그가 가장 아픈 사람일지도 몰라

MZ 딸에게 쓰는 꼰대 아빠의 이야기 12 – 가정폭력에 대하여

운전 중인데 전화가 왔다. “무서워 죽겠어요.” 근무 중이라 숨어서 다는 그분은 핸즈프리 너머에서 떨고 있었다.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급히 차를 세웠다.     


발단은 중 2인 딸. 자신은 이미 출근해서 집에는 남편과 딸만 있는 상태. 이미 여러 번 속 썩이는 일을 저질렀고 최근에는 학교폭력 사건까지 일으켜서 남편은 상당히 화가 나 있었는데 딸이 화통에 불을 질렀다. 손을 다쳐서 병원에 들렀다가 학교에 갈 거라면서 계속 침대 위에서 핸드폰을 만지며 빈둥거린 것이다. 학교에 안 가느냐고 야단쳤더니 대꾸하며 대들었다. 화가 폭발한 남편이 딸의 머리채를 잡고 휘둘렀다. 혼비백산한 딸은 가방을 들고 도망치듯 나왔다는데 과연 학교에 갔을까. 거리 어딘가를 맴돌지 않았을까.

그래도 덜 풀린 남편은 회사에서 일하는 그분에게 전화와 문자로 험한 말까지 쓰며 화를 냈다. 남편의 폭력은 결혼 초기 술 취해 처음 시작되어 점차 심해졌고 친정집으로 피신해야 할 때도 자주 있었다고 한다. 유머 있고 곱상한 모습 뒤에 그런 아픔이 있었다니 놀라웠고 끌어안고 사는 게 어리석게 느껴졌다. 어느덧 안정을 찾은 듯해서 필요한 조치 몇 가지를 이야기하고 목적지에서 다시 전화하겠다고 하여 마무리했다. 많은 생각들이 뒤죽박죽 맴돌았다. 예전에 봤던 기사가 생각났다.     


+폭력 가정에서 성장한 자녀는 폭력 없는 가정에서 성장한 자녀보다 가정폭력을 경험할 위험이 1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 부부간 폭력을 행사하는 가정의 60~70%는 자녀를 학대한다. +가정폭력은 자녀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 자녀들이 아버지의 폭력을 무의식적인 두려움으로 오히려 정당화시키고 어머니를 비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게 만든다. +폭력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부모 자식의 관계가 단절되기도 한다. +이들 중 남자는 자신을 공격자로 정체함으로써 성인이 되어 알코올, 약물중독으로 인한 자기 학대에 빠지거나 폭력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갈등 상황에서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내어 폭력 상황을 야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정폭력은 부부간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구조와 특성에 의해 세대 간 전이되는 것으로, 그 폭력이 자녀를 통해 대물림된다. (2007. 8. 10. 서귀포신문)     


어린 시절 흑백영화 같은 장면들이 떠올랐다. 내가 그 기사의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배고 모범적이며 좋은 일 하며 산다는 말도 듣지만 나는 까칠하고 용서에 인색하며 고분고분하지 않고 반항적이다. 종종 자기주장이 지나치고 반대를 만나면 무리해서라도 이기려고 집착하며, 쉽게 욱하고 자주 뚜껑 열려 화내곤 한다. 어긋난 행동을 하는 아이를 볼 때 증거가 드러난다. 반사적으로 “패야 돼~!” 생각한다. 그리고 수십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아직 다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서 지금은 아버지도 아픈 인생의 굴곡을 살았던 한 남자였다고 머리로는 이해면서도 여전히 애틋한 마음보다 원망과 미움이 더 크다.

폭력이 민주화의 열망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체험했고 힘이 아닌 사랑과 인내와 지성만이 세상을 더 낫게 한다고 믿으면서도 폭력을 방법으로 떠올리는 이 동물적 반응 성향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결코 용서받지 못할 악인이라서 아직도 아버지를 다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내 속 깊이 새겨진 폭력의 문신이 이리도 버겁다.     


“불성실한 태도, 습관은 어떤 환경 탓도 아닌 아이 본인의 마음가짐, 사고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건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매를 들어서라도!” “이제 나도 살고 봐야겠다. 노후대책도 해야 되겠고. 자식 그딴 식으로 키우지 마라. 나하 곤 전혀 맞지 않다! 난 저렇게 농땡이 치는 꼴 절대 못 본다. 절대 절대로!!!”


남편이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그는 지금 삶과 사회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받쳐서 아파 울며 도와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보인다. 어쩌면 내 아버지도 너무 아팠던 사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는 지금 스스로 항을 어려운 것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자신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소중하고 아끼고 싶은 사람들까지 같이 무너뜨리면서 말이다.  아버지가 그랬듯이 말이다.

  이 남자를 어떻게 하면 가족과 사랑을 키우는 자리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을까.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회복 만큼이나 불행을 이겨 일어서지 못하는 불쌍한 가해자들에 대한 관심과 도움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폭력은 우리를 아름답게 하지 않으며 도리어 추하게 한다. 매 맞으며 배운 것 중에 귀한 것은 없다. 부모들은 가르치기 위해 불가피했다는 말이 구차한 변명임을 이미 알고 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고 잘되지 않아 힘들어하는지도 모른다. 가정폭력의 가해자들, 어쩌면 더 빨리 도움받아 치료되고 회복되어야 할 사람일 수도 있다. 불행의 반복을 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어쩌면 나도 용서받지 못할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섭고 힘든 날이다.

    

                                                         <강한진 hjkangmg@hanmail.net 2021.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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