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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진 May 21. 2021

나쁜 남자 체크리스트 – 딸아, 이런 남자는...

MZ 딸에게 쓰는 꼰대 아빠의 이야기 8 – 연애에 대하여

사귀는 사람이 생겼다는 딸에게 개구리와 전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교훈을 주는 척 잔소리를 한 적이 있다. 처음부터 좋은 사람을 만나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 후 딸은 생각을 참 많이 하는 듯했다. 그리고 며칠 뒤 저녁에 딸이 조용히 물었다.

“아빠, 근데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야?”     


순간, 명치를 맞은 것처럼 당황했다. 우선 내가 좋은 남자라고 자신할 수 없었다. 혈기 방자한 젊은 시절에는 나보다 잘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는 식의 오만을 떤 적도 있긴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그런 기백은 경륜이란 이름으로 나날이 깎였고 삶의 무게도 어깨를 짓눌러 지금에 와서는 나쁘지는 않은 사람 정도로 에누리되어 있다. 적당히 겸손해지고 적당히 비겁해졌다고나 할까.

조금 치사할 수도 있지만 곤란한 질문을 피하는 작전 중 하나가 그 질문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래, 너는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라고 생각하니?”라고 되물었다. 딸은 나름대로 이런저런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법 생각을 많이 한 듯했다. 딸의 당황스러운 돌직구 질문을 어물쩍 넘길 수 있었다.     


얼마 전 사춘기를 막 지난 딸이 이성 친구와 교제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놀라고 걱정하고 화도 내다가 미안해하는 아빠의 모습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성격과 스타일, 생각, 행동 모두 제각각인 네 명의 아빠들인데 반응하는 모습은 거의 비슷했다. 모르고 있던 딸의 면모를 보며 놀라워하고 어리다고 생각한 딸의 성숙한 행동에 어색해했다. 무모해 보이는 딸의 선택에 걱정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는 기뻐하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네 명의 아빠들 모두 별로 차이가 없었다.      

여러 해 전 딸의 그 돌발적인 질문에 대한 나의 생각과 반응은 어느 정도 순서가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 기뻤다. 딸이 커갈수록 서먹하고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했는데 애인이 생겼다고 먼저 털어놓으면서 성큼 다가와 준 것이 고마웠다. 딸이 나를 훨씬 더 믿고 크게 의지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기쁘고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그 짧은 순간이 지난 뒤에는 대체 어떤 놈(!!)인지 궁금함의 풍선이 부풀어 올랐다. 어떤 놈이 내 딸을 홀렸지? 다행히 묻지는 않았다. 만일 물었다면 질문이 아니라 취조에 가까웠을 테니 물어보지 않기를 잘한 것 같다. (아마 많이 허둥대면서 물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왜 어떤 놈인지 묻고 싶었을까? ‘혹시 늑대가...?’라는 염려가 순간 머리를 치고 지나갔던 것 같다. 내 기억을 되돌아봐도 수컷은 어느 정도 늑대의 속성(오빠 믿지?라는 개그성 유행어로 상징되는)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만일 늑대에게 홀렸다면 큰 일이다. 당연히 내가 나서서 보호하고 물리쳐야 한다. 다른 아빠들이 딸의 애인 또는 사위 지원자를 만난 자리에서 의심 짙은 눈초리로 경계하면서 엄한 척하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힘센 척 폼 잡고 술잔을 내밀며 군기 잡는 것도 같은 마음이 작용한 것이고.


그러나 이미 어엿한 여인이고 사랑과 인생에 대한 자기 생각을 가진 딸에게 그런 수컷의 허세는 효과 없고 공허하며 실패할 때가 더 많다. 도리어 감정적으로 반발하고 아빠를 더 멀리하게 만든다. 그놈(!!)에게서 떨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훌륭한 모범답안이 있지 않는가..

사실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인지 정의하기도 쉽지 않다. 사람마다 생각이 천차만별이고 조건과 기준도 너무나 다양해서 정리가 쉽지 않다. 그리고 세상 사람 대부분은 좋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나쁜 남자만 구분하고 걸러내기만 해도 딸의 연애는 훨씬 안전해질 수 있다. 그래서 딸 스스로 위험한 전갈을 감별하는 지혜의 도구를 만들어준다면 좋을 것 같다. 그런 생각으로 딸이 만나지 말아야 할 남자 유형을 ‘전갈 감별 체크리스트’로 정리했다.     


전갈(나쁜 남자) 감별 체크리스트 – 딸아. 이런 사람은 만나지 마라

    1. 자주 뚜껑이 열리고 분노 조절이 안 되는 남자

    2. 지배하려 하고 너그럽지 않은 남자

    3. 책임감이 없는 남자

    4. 비밀 많고 거짓말을 하며 말과 생각이 자주 바뀌는 남자

    5. 자기 비하하는 남자

    6. 중독 성향이 있는 남자

    7. 지나치게 의존적이거나 집착하는 남자

    8. 가족과 사이가 나쁘거나 함부로 대하는 남자

    9. 직업이나 장래 계획이 불안정한 남자

    10. 끝맺음하지 않는 남자     


아빠는 딸에게 다가오는 어떤 위험도 무조건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쁜 남자는 아빠들의 큰 고민거리다. 힘들게 하고 불행을 가져오는 남자는 무조건 피하라고 말하게 된다. 이 리스트는 나의 경험의 범주에서 나온 것이라 허술할 수 있다. 그래도 딸이 한 번만이라도 이 목록으로 점검해봤으면 좋겠다.


남녀의 이끌림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을까? 현대의 뇌과학과 첨단학문은 사랑도 설명 가능하고 예측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그러면 사랑은 과학이 된다. 나는 사랑이 인간의 신비한 부분으로 계속 남아 있으면 좋겠다. 각자의 사랑이 만나서 연애를 하면서부터 함께 우리의 사랑을 만들어 가게 된다. 이해와 배려와 상호 책임이 사랑을 지키고 키워가기 위해 중요해진다. 그래서 사랑이 클수록 혼자 더 많이 성찰해야 하고 지혜로워져야 하는 것이다. 아빠들은 그 지혜에 사람을 잘 가리는 것도 포함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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