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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진 May 28. 2021

MZ에 다가서기 (2) - 순한 맛 꼰대도 있다

MZ 딸에게 쓰는 꼰대 아빠의 이야기 15 – 세대갈등 넘어서기

지난번 글을 올리고 두어 시간쯤 지났을 무렵, 딸의 전화가 왔다. 글을 봤다면서 바로 “아빠, 내가 예전 회사에 다닐 때 회식하다가 전화했던 거 기억나요?”라고 직격했다. 녀석이 전화한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친구와 수다하다가 갑자기 영상 통화를 걸어와서 내의 차림이던 나를 당황하게 한 적도 여러 번인데 기억이 날 리 없지. 글쎄~ 했더니 채근하듯 이야기했다.     


내가 전에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거의 마음 먹은 무렵이었어. 하루는 회식하자고 하더라고. 당시 미투가 한창일 때였는데 C 부장이 술 좀 취하더니 난데없이 ‘여자들이 미투운동 하는 거 다 자기 무덤 파는 짓이야’라는 거야. 그 말 듣고 내가 눈알이 돌아가는 줄 알았거든?

정말 부들부들 떨었어. 혼자 술을 따라 마시는데 표정 관리가 되? 당연히 기분 나쁜 티 팍팍 났지. C 부장이 그러는 날 보더니 ‘왜 너는 내 말이 영 마음에 안 들어?’ 이러는 거야. 진짜 얼굴에 술을 확 뿌려버릴까 하다가 참고 아빠한테 전화 걸어서 큰 소리로 ‘어, 아빠. 나 지금 회식 중인데~’ 하면서 빠져나왔지.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아빠한테 막 화를 냈던 거야.     


이제 기억났다. 당시 워낙 큰 이슈였고 실제 문제는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아는 나는 딸의 주변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걱정하던 참이었다. 더 분명히 기억나는 것이 딸의 분노였다. 안 그래도 성격 못된 녀석 그만두려고 생각하는데 이참에 확 때려치우고 나오는 거 아닌가 걱정되었다. 

사실 많은 기성세대가 비슷한 전제와 잘 바뀌지 않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기성세대의 전제와 사고방식과 MZ의 그것들은 종종 어긋난다. 딸의 회식 사건처럼 그 어긋남이 드러나고 부딪치는 순간, 기성세대들의 말과 행동으로 그들의 인격 수준이 드러나고 가늠된다. 꼰대가 힘으로 내 전제와 사고방식을 따르라고 윽박지르면 MZ들은 표정을 굳히면서도 잠시 고개를 숙인다. 힘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서면서 속으로는 머지않아 퇴물이 될 것이라고 되씹는다. 이 모든 것이 누적된다는 것이 더 무섭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다가서려고 하면 혼자 놀께요, 우리 그냥 놔두세요, 우릴 그냥 가만히 놔두는 게 도와주는 거라며 거부하는 것이다.    

 

딸은 아들 둘을 가진 C 부장에게 딸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저런 소리를 지껄였을까, 자기 딸이 험한 꼴을 당하고 왔어도 같은 말이 나올까, 뭘 어떻게 하고 다녔길래 그런 일을 당했느냐고 했을까 라면서 이중적으로 보이는 면모까지 실랄하게 꼬집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그런 이중성과 미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을 꼰대라고 부른다고 했다. 한참 그렇게 열을 내고는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그리고 “근데 아빠, 좋아했던 J 부장님 기억나요?”라고 했다.      


그 부장님도 꼰대여서 종종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 해~ 하셨어. 그런데 뭣도 모르는 쬐꼬만 게 자꾸 이거 왜 이렇게 하냐고 묻고 따지고 덤비니 얼마나 웃겼겠어? 그런데 내가 그럴 때마다 막 웃으시더라고. 그러면 어떻게 생각하시나? 라면서 늘 존대하시고 절대로 반말 안 하시고. 다 들으시고는 음~ 그럴 수도 있겠네? 하면서 쿨하게 받아들이시고는 그럼 이번엔 ○○씨가 생각하는 대로 한번 해 봐요! 하셨어. 근데 나중에는 내가 다시 새로 하게 되는 거 있지? ㅋㅋㅋㅋ 해 보고 나서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고는 아무 소리 못 하고 밤새우면서 조용히 되돌려놨던 게 기억나. 

부장님은 자기가 커버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내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우도록 열어주신 거였어. ○○씨는 똑똑한 친구니까 알아서 잘할 거야 하시면서. 저 녀석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거야 하고 믿어주셨던 거지. 난 그게 아직도 기억나고 너무너무 감사하고 그래. 그래서 지금도 가끔 연락을 드리게 되. 그 부장님은 꼰대이긴 한데 순한 맛 꼰대였어. 아랫사람들이 좋아하는...    

 

순한 맛 꼰대라는 단어에 마음을 끌었다. 내 나이 이제 다시 되돌려서 한해 한해 젊어질 수 없고 머리도 굳어 예전처럼 빠르게 생각하지 못하고 쉬 관점 바꾸지도 못하는데 어쩌란 말인가. 딸이 말했던 J 부장처럼 젊은 사람들과 잘 지내면서 존경받을 수 있다면 애써 달라지려 할 것까지 없을 수 있지 않을까.


딸은 대조적인 두 얼굴, 마음과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배척과 저항의 대상이 되고 감사와 존경의 대상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설프고 맹랑하며 패기만 있는 딸에게 실패할 수 있는 안전지대를 열어주어서 젊은 생각과 능력을 실험하면서 성장하게 이끌고 마음까지 얻은 그 부장의 탁월한 리더십(?)을 보며 춘추시대 정나라의 재상 자산(鄭子産, 원래 이름은 公孫橋. 子가 子産이라 정자산으로 많이 알려짐)이 유언으로 남겼다는 관맹상제(寬猛相濟 - 너그러움과 엄격함이 조화되게 이끌라)의 교훈을 떠올린다. 관(寬-너그러움)이 먼저이고 맹(猛-엄격함)이 나중이라는 것, 그리고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모두를 행해야 하는 것임을 생각하면서.     


                                                                                                                                                 <2021.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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