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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진 May 27. 2021

MZ에 다가서기 (1) - 오솔길 발견

MZ딸에게 쓰는 꼰대아빠의 이야기 14 – 세대갈등 넘어서기

나의 요즘 관심사는 젊은 세대다. 그들이 궁금하고 그들의 감각과 에너지가 부럽다. 얼마 전 딸에게 도움 되는 글을 써 볼까 얘기했더니 반색을 했다. 이왕이면 연애 메뉴얼을 써 달란다. 녀석의 요즘 관심사다. 괜찮겠다 싶다가 바로 꽝! 절벽에 부딪힌 기분이 되었다. 우선 내가 연애를 잘하거나 많이 한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꼰대의 사랑법과 MZ의 사랑법은 매우 다를 것 같았다. 어찌어찌 쓴다 해도 내 얘기만 잔뜩 하면 완전 노답, 꼰대 짓이다. MZ가 초점이다. 그런데 MZ를 잘 모른다. 그래서 아는 청년에게 도움을 청했다. 꼰대와 어떻게 지내는지, 말은 통하는지, 꼰대가 영 아닌 말을 하면 어떻게 하는지 물어봤다. 그의 말을 거의 그대로 옮겼다.     


대화요? ㅋㅋㅋ 저는 일단 피하죠. 말하면 도리어 불리해지니 일단 듣는 척 넘겨야 위기가 안 오더라구요. 제가 접하는 어른들은 말을 해도 어차피 듣지 않을 테고, 직격으로 말하면 돌아올 결과는 대략 '그럼 관둬...' 여기에서 살아남으려면 먹힐 이야기만 해야 한다는 걸 배워야 살아남는 거 같아요. 뭔가 좋은 것이 나오려다가도 꼰대 몇의 언행에 자주 상처를 받아요. 상처받으면 동료들 도움으로 회복하거나 혼자 끙끙대며 곪아 가던가... 순전히 지 복이지요.

어른들 속을 알 수 없을 때보다는 속이 빤히 보이는데 왜 내 말을 안 들을까 싶을 때 더 답답해요. 왜 뻔한 얘기 자꾸 할까, 왜 우리 말을 있는 그대로 안 듣고 자기들 듣고 싶은 것만 걸러 들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답답함의 무게와 깊이와 넓이가 더 넓어져요.

젊은 중간 간부들도 답답한 건 똑같아요. 그들도 어차피 안 듣겠지만 그래도 우린 말을 해요. 결국 이 이상은 안 된다며 알아서 커트하고, 그러면 우린 또 답답해지지요. 돌아서면서 스스로 곱씹어요. 이 답답함을 잊지 말자고. 그걸 당연하게 느끼는 순간 저는 이미 꼰대가 되어 있는 것이니까.     


솔직히 말해 주는 그가 고마웠으나 세대 사이의 강이 이리도 넓다니 가슴이 답답했다. 꼰대 세대를 아예 말이 안 통하는 대상으로 정하고 귀를 닫은 듯 보였다. 그런데 꼰대 세대는 할 말이 없겠는가. 나름 애쓰는데 몰라준다며 답답함과 서운함, 무심함과 무례함을 토로한 누군가가 있었다.  

   

중간관리자입니다. 요즘 입사하는 20대 후반의 신입직원들 90년대 초중반의 친구들, 일명 MZ세대분들에게 질문 있습니다.

왜? 본인들만 이해해달라 하고 선배들을 이해해 보려 하지 않나요? 왜? 입사 당시 조직을 위해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겠다는 분들이 조직보다는 자신의 이득이나 감정이 우선인가요?

직원들 입장의 다양한 복지 혜택과 업무성과에 따른 보상 등, 부족함 없이 시스템과 규정을 만들었는데도 조직의 비전보다는 자신의 이기적인 선택이 우선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의가 없는 부분은 참을 수가 없어요. 불합리하다면 정정당당하게 의견을 제출하거나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혀야지 비겁하게 뒤에서 근거 없는 음해와 억측으로 조직 분위기 망치는 일부 우리 MZ분들 정말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겠네요.     


충분히 공감되었다. 나도 비슷한 말을 하고 싶을 때가 많았으니까. 다시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분 말의 맥락이 궁금하네요. 대충 요약하자면 니들은 왜 우리를 이해하지 않고 맘대로냐, 복지와 보상 등 니들에게 줄 것 모두 조직안에 있는데 왜 조직에 맞추지 않고 니들 생각만 하고 요구만 하냐, 니들 왜 예의 없이 뒷담화 까고 분위기 망치냐, 이거 같은데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디테일한 말은 안 하고 저러는 건 그냥 화풀이지 상황 공유가 아니잖아요. 본인의 말을 수긍하게 하려면 최소한의 맥락 정보와 분석도 줘야 하는데 저건 그냥 비난에 불과해요. 사실 이 정도면 막장 아닌가요?

만일 저 글이 제 윗분이 쓴 거라면? 정말 개빡치죠. 누가 말을 안 듣는데요? 분위기를 망친다고요? 천만에요, 우린 열심히 자기들 분량대로 일하느라 겁나 일정에 허덕이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때려친다고 하나, 못 해 먹겠다고 하나. 그냥 정해진 거 따라야지 이러는데 니들 왜 말 안 듣냐? “야, 똑바로 안 해?”랑 뭐가 달라요? 여기가 군대인가요? 그게 더 기분 나빠요. 그게 아님 니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피 보고 있다고 솔직히 쓰던가요. 혼자 열폭 한답시고 저렇게 말하면 벽 더 쌓는 거 말곤 답이 없어요. 젊은 애들은 "또 저런다 저 ㅁㅊㄴ” 하고 생각할껄요?     


강이 더 넓어져서 이제 건너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 걱정되었다. 그런데 그가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가끔 우리 마음을 끌어당길 줄 아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는 분들 보면요, 자기들도 애들 생각을 모르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도 그냥 같이 있어 준다고. 그러다 보면 아, 이렇구나 하나둘 알게 되고, 그걸 다시 표현해주다 보면 애들도 이분은 다르구나 느끼고... 그런다는 거예요.     


희망으로 이어진 좁은 오솔길 하나가 보이는 듯했다. 가르치려는 것이 꼰대들의 큰 약점이라는, 듣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을 텐데 잘 가르치지도 못하면서 꾸짖고 혼내며 가르친다는, 먼저 그냥 같이 있어 주라는, 꼰대가 다가가서 옆에 앉는 것이 시작이라는 것 말이다. 아무래도 당분간, 아주 당분간이라도... 더 들어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차 한잔 들고 앉는데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2021.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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