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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진 Jun 21. 2021

말문 닫고 돌아서지는 말자

밀레니얼이 직장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얼마 전 딸이 ‘흔한 95년생은 이렇게 생각해요’라며 시작되는 글을 내게 공유했다. “보통의 밀레니얼이 직장을 대하는 태도”라는 제목의 글 속에는 요즘 사회적 대세로 확실하게 부각되어 자리를 잡은 MZ세대의 직장에 대한 자신의 주관을 요령 있게 정리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첫째, 승진에 열 올리기보다는 그냥 일을 덜 하고 싶다. 그 시간을 다른 가치 있는 일에 쓰고 싶다. 승진하면 더 바빠진다. 지금도 지금대로 좋다.

둘째, 직장에서 일 열심히 한다고 누가 알아주나. 즐기기나 하자. 내 가족 내 애인이 내가 바쁘게 되는 것을 과연 좋아할까.

셋째, 어차피 월급으로는 강남에 아파트 못 산다. 사이드 프로젝트해야 하며, 성공하려면 무조건 일찍부터 사업이나 투자로 돈을 벌어야 한다.

넷째, 직장에서 나는 그저 직원 한 명에 불과하지만, 직장 밖에서 나는 작가고 창업가고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나’라는 브랜드다.

다섯째, 진짜 인간관계는 직장 밖에서. 원격 근로야말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최고의 방법.     


‘나는 원격 신봉자다. 나는 다시는 사무실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라는 글로 마무리한 그 글을 처음 봤을 때 조금 당황스러웠다. 직원이란 함께 마음을 모아 일을 하자고 하는 관계의 약속 위에 세워지는 것인데, 글은 ‘그냥 약속한 월급 주세요. 난 최대한 적게 일을 할 거예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한 마디로 자신은 직원이 아니라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선언이었다.


다시 읽으며 느낀 것은 마음 밑에 깔린 기성세대와 기성 체제에 대한 불신과 포기의 심정이었다. 그들이 말문을 닫는 것은 기성세대에 대한 처벌 또는 책임추궁이라고 느껴졌다. 이 길로는 내가 원하는 목표 또는 성공에 이르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안쓰러웠으나, 당분간 양다리 걸치고 사업과 투자의 가능성을 찾겠다는 것은 얌체 같았다. ‘나는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직장보다는 자신과 자신의 개인적 생활, 관계에 더 시간과 노력을 할애할 것이라는 확신에 찬 결론을 접할 때는 이들에게 워라벨이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졌다.      


문득 최고 인기를 끄는 가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혜성처럼 나타나서 스타가 된 그도 오랫동안 편의점 알바 등 온갖 일을 했었다. 가슴속에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은 넘치는데 알아주는 사람 없고 기회도 보이지 않던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지금 꽃피는 시간을 맞고 있다. 내 관심을 더 끈 것은 오디션에서 탈락한 많은 지원자와 아직도 힘들고 긴 시간을 걷고 있는 무명의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이었다. 어쩌면 글쓴이도 지금 외로운 긴 시간을 걷는 그들 중 하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희망 없는 사회를 만든 것은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글쓴이는 기존의 사회적 방식들을 벗어나서 자신들의 특장점이랄 수 있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소통방식, 능력 공유의 방식으로 기성세대와 기성 체제가 주지 못한 것을 스스로 찾으려는 것 같다. 사업을 생각하는 것도 투자를 고민하는 것도 그를 위한 가능한 길 중 하나일 것이다. 

원격 근무 형태, 탈사무실 또는 탈 직장의 직업 형태는 슈퍼컴퓨터와 AI, 네트워크에 의해 미래에 구축될 초연결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나의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필요한 사람이 나를 검색해서 연결해야 직업적 관계가 성립된다. 대부분의 관계는 프로젝트 성격일 것이고, 내가 그 일원으로 선택되는 이유는 지금까지 축적한 성과 또는 평판의 기록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그렇게 연결되는 관계는 매우 단편적이고 짧은 기간만 유지될 것 같다는 점이다. 그러면 더 외로워지지 않을까. 먼 길 더 오래 걸어야 하지 않을까.     


미래는 분명 지금보다 나아지고 MZ의 영역도 더 넓어지고 가능성 또한 커질 것이다. 그러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만큼 행복도 더 커질까 질문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함께. 

더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균형을 갖추라고 조언하고 싶다. 사람이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사람과의 관계는 생산적 관계와 소비적 관계로 구분된다. 생산적 관계란 삶을 이어가는데 필요한 경제적 자원(급여, 재산 등)을 창출하는 직장 또는 직업적 관계를 의미하고, 소비적 관계란 그 자원들을 사용해서 나누는 관계를 의미한다. 생산만 하는 삶은 피곤할 수 있고 소비만 하는 삶도 허무할 수 있다. 균형이 바람직하며 진정한 워라벨의 의미도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균형되어야 계속되는 행복을 만들며 누릴 수 있다.     


딸은 왜 별다른 설명 없이 내게 이 글을 공유했을까. 최근 전시회와 신제품 마케팅 등 밀리는 업무로 쉴 틈이 거의 없는 상황이 연속되고 직장에서도 썩 마음이 편치 않아 많이 힘들다는 것을 이런 글을 빌려서 내게 하소연하고 싶었을 것이다. 말 걸어도 돌아오는 대답 무뚝뚝하고 윽박지르는 꼰대 앞에 서면 숨이 턱턱 막혔을 것이다. 당당하게 자신의 주관을 밝히는 MZ의 도발적인 글이 더 공감되었을 것이다.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든 아빠에게 심정의 일단이라도 표현해 준 것이 고맙기 그지다. 그냥 말 안 통할 거라고 단언하며 말문을 닫고 돌아서지 않은 것만 해도 너무나 다행스럽고. 


고맙게 마음을 열어 보여 준 내 딸은 이미 모든 것에 결론 내리고 말 안 통할 것이라고 단정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꼰대에 대한 미운 마음 때문에 대화의 문을 먼저 잠그는 어리석음만은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정 MZ다운 가능성을 더 많이 키우고 더 잘 이루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2021.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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