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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진 May 25. 2021

사랑싸움의 룰 네 가지

MZ 딸에게 쓰는 꼰대 아빠의 이야기 13 – 사랑싸움에 대하여

여러 해 전 일이다. 일곱 살인 첫 손자의 돌이 가까운 어느 날 늦은 밤 아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아빠, 우리 키울 때 많이 다투셨어요?” 풀 죽은 아들의 목소리가 신경 쓰였다. 질문에 대충 대답하고 위로하려 했는데 집에들어간다며 전화를 끊었다. 한바탕했구나. 걱정되었다. 아내가 누구 전화냐고 물었으나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다음 날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그 다음 날도 ...

그러다가 며칠 전 아들과 대화하다가 불쑥 물어봤다. 수년 전 밤중에 전화했던 것 기억하느냐고. 아들은 잠시 기억을 더듬더니 푸아~ 하고 웃음을 뿜었다. 그리고 살짝 쑥스러워하며 당시의 맥락을 이야기했다.     


밤에 치킨 하나 시켜 먹자고 해서 시켰어요. 괜찮은 곳에 시킨다고 배달 어플로 조금 멀리, 차로 한 20분 거리에 주문한 것이 배달되어왔어요. 근데 아내는 반반이로 시켰으면 했나 본데 제가 그냥 핫후라이드로 시킨거예요. 아내는 화를 내고 저는 어찌해야 하나 하다가 억지로 가게에 연락해봤더니 양념을 입혀줄 수 있다더라고요. 그래서 그 밤에 치킨 들고 직접 다녀왔어요. 오는 길에 현타가 와서 아빠한테 전화했지요. 애 키우면서 많이 싸웠냐고... ㅋㅋㅋㅋ

대략 이럴 땐 어찌해야 하는지 물은 것 같은데 그냥 아빠도 확 떨어지게 대답하진 않으셨던 것 같아요. 중요한 건 그 덕분에 그날 그렇게 위기를 넘겼다는 거지요. 나 혼자 생각하고 반응했으면 분명히 싸우든지 아니면 다른 액션을 했을 텐데, 물어볼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기억나요. 덕분에 잘 다녀오고 묻혀서 잘 먹었어요. 아내도 나중에 얘기하니 그때 정말 나갈 줄 몰랐다더라구요. 하하하하      


사랑할수록, 사랑이 더 클수록 다툼도 심각한 경우가 많다. 연인 사이가 그렇고 콩깍지 효과가 남은 신혼부부 시절도 종종 그렇다. 핑크빛 행복을 꿈꾸며 굳게 약속했어도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다. 수십 년 따로 살아 온 두 사람이 만나 사랑하고 같아지려 노력하지만 아직은 다른 부분이 훨씬 많다. 시시때때로 저 사람 왜 저래, 저러면 안 되잖아 하는 생각들이 솟구친다. 그리고 다투게 된다.  

   

심각한 위기를 겪는 남편과 아내가 있었다. 소문난 잉꼬부부였던 그들은 힘들고 아프고 정말 나쁜 사람이라서 이대로 더는 못 살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듣고 살펴봐도 그리 큰 잘못이 보이지 않았다. 

오래 듣고 보고 생각해서 내린 결론은 어긋남이었다. 관계에 대한 서로의 생각이 어긋나고 상대방에 대한 실망이 쌓이고 말과 행동이 이해할 수 없어지면서 불편해졌다. 그것이 쌓여 다툼과 싸움이 되어 힘든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그들이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최선을 다해 상대방을 위하려고 했다. 문제는 그 최선이 자기식대로여서 그마저도 어긋나기 일쑤였다.     

궁리 끝에 조용한 곳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반드시 따라야 할 대화의 룰 네 가지를 설명했다. 첫째 이기거나 상대방을 고치려고 하지 말 것. 둘째 오늘 주제에만 집중하고 내용을 확대하지 말 것. 셋째 상대방이 싫어할 말이나 행동은 절대 하지 말 것. 넷째 비난하지 말고 끝까지 상대방의 체면을 세워줄 것. 

룰을 지키겠다고 단단히 약속받은 다음, 그들 각자의 결혼과 부부, 남편과 아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전제), 서로에게 무엇을 바라는지(기대), 상대방의 어떤 말과 행동이 어떻게 생각되고 실망스럽고 고통스러운지(해석)를 정리해서 나눠주었다. 그 엇갈림을 보며 대화해서 해결해서 살지 아니면 엇갈린 채로 살지를 진지하게 의논해 보라고 하고 나왔다. 두어 시간쯤 뒤, 둘은 밖으로 나왔다. 서로 보며 조금 쑥스럽게 웃는 모습이 예전을 닮아가는 듯했다.     


사랑싸움은 매우 격렬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다. 그런데 오해와 상처, 아픔은 내용이 아니라 방법이나 형식 때문에 더 많이 생긴다. 그럴지라도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만 잊지 않아도 사랑싸움은 파괴적으로 되지 않는다. 아들 부부도 다툴 일이 앞으로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사랑싸움을 피하거나 안 하려고 애쓰지 말고 지혜롭게 잘 싸우라고 말해주고 싶다. 오늘도 눈이 초롱한 손자와 밝게 노래하는 며느리, 호탕하게 웃는 아들을 떠올리며 행복한 꿈나라로 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    

 

                                                                                                     < hjkangmg@hanmail.net 2021.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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