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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진 Jun 05. 2021

왜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을까

MZ 딸에게 쓰는 꼰대 아빠의 이야기 21 – 사과 전에 필요한 것

  지인이 전화해서 사과에 관해 쓴 글을 읽었다고 했다. 그런 다음 자기가 사과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기가 제법 가까운 사람에게 본의 아니게 피해 입혔는데 뒤늦게 그것을 알고 서둘러서 사과했다고 한다. 본의가 아니며 그런 피해가 갈 것이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자세히 설명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평소 자주 대화를 해 온 그 사람이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직접 만나서 사과를 해도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고 우물쭈물 알았다고 대답해 놓고 주위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서운하다, 사과가 흡족지 않다, 진정성이 없다는 등의 말을 한다는 것이다. 이분이 생각보다 크게 속상했구나 하는 생각은 들지만 다시 사과할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사과해도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인은 이 정도 사과하면 됐지 도대체 얼마나 사과해야 하느냐, 진정성 있는 사과란 도대체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통화를 마치고 지인의 이야기를 되짚어봤다. 그의 이야기 포인트는 1)왜 상대방은 나의 사과를 만족스러워하지 않을까, 2)왜 나는 재차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상대방은 내 사과를 만족스러워하지 않을까     


  누군가에 의해 내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불만스럽거나 불편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상대방을 향한 원망의 마음이 생기고,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사과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대방은 내가 사과를 했을 때 왜 만족하지 못하고 재차 요구하게 될까. 간단히 말해서 덜 만족되었기 때문이다. 다음의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첫째, 사과가 초점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 마음의 아픈 곳, 손해 또는 피해에 적중하지 않고 벗어났기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둘째, 사과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미안하다’와 ‘매우 미안하다’는 전달하는 마음의 크기가 다르다. 백 원으로 만 원의 손해를 갚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셋째, 다른 원하는 것이 있을 때다. 다른 본심이 있는 사람은 자꾸 다른 꼬투리를 찾아서 계속 트집을 잡고 만족스럽지 않다고 할 것이다. 그의 본심이 무엇이고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곰곰히 생각하여 찾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그의 뒤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을 때다. 뒤에서 그를 조종하거나 코치하는 사람이 있을 때 사과받는 사람은 말을 자꾸 바꾸게 된다. 말을 자꾸 바꾸는 사람이 있다면 왜 그러는지를 살펴보며 조금 다른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왜 나는 재차 사과하고 싶지 않을까.   

  

  커뮤니케이션은 무언가 전달하고 싶고 전달받고 싶은 욕구가 동기가 되어 일어나는 행동이다. 사과도 미안함과 용서받고 싶은 욕구가 동기인 커뮤니케이션 행동이다. 이미 사과의 필요나 욕구를 충족시켰다고 생각하거나 사과 안 해서 무엇을 잃더라도 그보다 더 큰 어떤 것을 얻거나 지키고 싶을 때 사과하지 않겠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첫째,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나 피해 입힌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사과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둘째, 사과할 만큼 잘못하지 않았거나 그리 큰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구태여 사과해야 할 필요를 못 느낀다. 상대방이 피해라고 주장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부정할 때도 그렇다. 상대방은 나와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셋째, 이미 충분히 사과했다고 생각한다. 내 잘못의 크기에 상응할 만큼의 사과를 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그 평가에 대한 나의 평가와 상대방의 평가는 다를 수 있다. 

  넷째, 상대방과의 관계를 유지-회복할 필요 또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과하기엔 상대방이 싫거나 미울 때, 사과하면 지는 것 같을 때 사과할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중요하지 않은 관계에 대해서는 미안함이나 죄책감, 책임감도 덜 느끼게 된다.     


  이런 경우라면 재차 사과하는 것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며 재차 사과를 요구하는 상대방이 지나치고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 느낌으로 하는 사과는 이미 사과가 아니라 그냥 의례적인 인사치레 또는 입발림 일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상대방은 진정성이 없다고 느낀다. 말 이외의 다른 커뮤니케이션 요소들, 즉 표정이나 말투, 눈빛, 목소리, 억양 응 비언어적인 요소들이 지금의 사과가 진심이 아니라고 알리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민감하게 이 비언어적인 메시지를 감지하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진심의 내용을 해독한다.     


  사과는 용서라는 화답으로 완성되는 커뮤니케이션 루프다. 그런데 사과는 사과하는 사람의 영역이고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의 영역이다. 사과하는 사람은 용서를 구(求)하거나 청(請)할 수는 있어도 요구(要求)하거나 요청(要請)할 수 없다. 용서하는 사람의 영역을 침범하고 그 순간 짝퉁 사과가 되어버려 사과하는 사람의 진심은 반감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용서해달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잘못했다 책임을 지겠다는 것으로 사과를 마무리하라고 충고한다. 만일 용서해달라는 마음을 꼭 전하고 싶다면 진심으로 내 잘못을 용서받고 싶다 정도로 완곡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    

 

  감사에 절대 빠지면 안 되는 조건이 있다. 먼저 고맙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게 없으면 입발림 감사다. 사과도 마찬가지다. 미안하거나 잘못했음을 느끼고 인정하는 것이 선행되지 않는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요즘 숱한 사과들이 썩 흔쾌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반드시 있어야 할 그것이 빠진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21.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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