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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진 Jun 03. 2021

사과를 잘 준비하려면

MZ 딸에게 쓰는 꼰대 아빠의 이야기 19 – 사과 아닌 사과도 있다

전국이 사과로 시끄럽다. 저게 사과냐 라는 비난도 크고 왜 사과를 했느냐는 비난도 작지 않다. 사과해야 할 사안이 아니라는 사안 자체에 대한 부정도 만만치 않다. 그중 영혼 없는 사과라는 비판이 눈길을 끈다. 누군가는 촌철살인의 감각을 다음과 같은 짤로 보여준다.    

이상언의 ‘더 모닝’ - 무한루프에 빠지는 영혼 없는 사과 

출처 : https://stibee.com/api/v1.0/emails/share/s91xd9rN4x-1ayx89nmxEbWCvZdXEQ==?cloc=joongang-mhome-Group13     


그러면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미안해’하는 상황을 모면하기에 급급한 건성건성 사과는 또다시 사과해야 하는 무한루프의 징벌을 받게 된다고 마무리한다. 이 불완전한 사과가 조직 분열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후폭풍을 예상하는 사람도 있다.


기억나는 사과를 했던 또 다른 유명인도 있다. 감성적이고 유려했으나 말만 번드르르하고 핵심은 교묘히 피한, 도덕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면서도 실질적인 책임이나 보상, 배상은 피해 갔던 그 사과도 적지 않은 비판과 비난을 받았다. 말로만 책임지려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실패한 사과들은 화려한 언변보다 마음을 정확히 짚는 사과가 더 중요하며 반드시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를 기반으로 해야 하고 의도가 있거나 거짓스러운 사과는 분노까지 일으킨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것을 심리학자 에덴 라자르 박사는 네 가지 사과의 요건 네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자기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정하라, 둘째 자신이 잘못한 것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하라, 셋째, 그것을 후회하며 어떻게 보상, 배상, 회복하려는지 밝혀라, 넷째 재발 방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제시하라.     


그런데 내게는 조금 다른 사과의 기억이 있다. 한 직원이 동료에게 상사가 자신을 이러저러하게 괴롭혔다며 갑질을 신고하려 한다고 하소연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상사는 걱정이 되었고 그 직원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싶었다. 부하직원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원한다고 했다. 상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부하에게 갑질 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괴롭힘을 당했다는데 어쩌겠는가. 자신이 부족한 탓이라고, 모두 내 잘못 때문이라고 길게 사과의 편지를 썼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나 손해, 상처를 입혔다면 당연히 미안하고 내 잘못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게 선량한 사람들의 양심적인 반응이다. 그 상사도 일단 모두 내 잘못 때문일 것이라는 구체적이지 않은 인식을 바탕으로 일단 사과부터 하고 가라앉힌 다음 달래려고 생각했다. 그 뒤로는 요즘 많아지는 새로운 ‘을질’ 사건으로 전개되었다. 부하직원이 상황을 주도하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형국이 된 것이다. 긴 시간의 고생 끝에 부하직원의 주장이 대부분 무고에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으나 그 상사는 긴 시간 참으로 많은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그래서 너무 착해도 안 된다는 말이 격하게 공감되는 것 같다.     


사과는 칭찬이나 격려, 위로처럼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중요한 커뮤니케이션이다. 사과는 내가 어떤 구체적인 피해나 상처를 입혔을 때도 필요하지만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실망시켰을 때도 필요하다. 그런데 미안하다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기 쉽고 어느 정도의 형식과 방법, 규칙이 필요하다. 

문제는 실제의 피해가 생겼을 때 예상치 못한 의도적인 상황들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자해하고 뒤집어씌우는 수법에 넘어간 유명인 중에 이런 사례가 종종 보인다. 피해를 주장하면서 상대방의 명예나 기타 손상되기 쉬운 부분을 이용하여 과도하게 요구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럴 때 자신을 지키면서 상대방 마음을 적중시켜 문제가 풀리도록 사과하려면 한 호흡 쉬면서 충실한 사과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사과의 준비 조건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감정 상태에서 벗어나라. 화가 나거나 흥분해 있으면 사안 자체를 잘못 볼 수 있고 과도하거나 과소하기 쉽다.

둘째, 제삼자 입장이 되어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살피고 생각하라. 주관적인 상태에서는 상대방에 대해 대립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객관적이고 균형 있게 보고 생각할 때 해결의 길이 보인다.

셋째, 개인적 관계와 사회적 기준 모두를 배려하라. 개인적으로 중요한 사람이라고 사회적인 옳고 그름을 초월하는 것도 좋지 않고 사회적으로 옳다 해서 내게 중요한 사람을 외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지혜다.     


사과는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 그런데 함부로 하는 것은 사과가 아닐 수 있다. 마음의 위로와 실질적인 책임 둘은 사과라는 동전의 앞과 뒤와 같다. 둘 중 하나라도 부실하다면 그것은 가짜일 가능성이 크다.      


                                                                                                                                       <2021.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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