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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진 Jun 12. 2021

친구, 자꾸 손해 보는 기분이 들어요...

MZ 딸에게 쓰는 꼰대 아빠의 이야기 29 – 우정의 경계신호

딸에게는 거의 십 년 이상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여고 시절 친구들인데 지금도 연락하고 만나 몰려다닌다. 딸은 남의 말을 잘 들어준다. 친구들 고민 상담을 도맡는다. 친구 일이라면 제 일 제치고 나선다. 저러다 제 머리 못 깎나 싶어 염려된다. 며칠 전에는 여름 여행을 의논했다고 한다. 

    

주로 바다로 가자는 의견이었어. 지금까지 난 주로 걔네가 원하는 것을 따랐는데 이번에는 내 생각을 얘기하고 싶더라고. 그래서 얼마 전 가족들과 다녀온 곳을 제안했어. 명상하고 산책하며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웬 산이냐는 듯 나를 보는 거야. 무시하고 넘어가려고 하더라고. 다시 얘기했지. 지금까지 바다만 갔었는데 올해는 다른 데 가자고. 조금 언쟁을 하다가 한 얘가 그러는 거야. “너 좀 달라진 것 같다? 전엔 안 그랬는데.” 그 말이 너무너무 기분 나쁜 거야. 그래서 먼저 간다고 하고 나와 버렸어.

돌아오는데 참 많은 생각이 나더라. 생각 없이 툭툭 던져서 속상했던 거친 말들. 하고 싶은 말 있어도 그냥 넘어간 일들, 걔네에게 맞추려고 참은 일들, 손해 본 일들. 그러다가 내가 여태 호구였나 싶은 생각이 드니 화가 치미는 거야. 싹 다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 

    

형제보다 더 가깝다고 생각해 온 친구들인데 왜 이렇게 달라졌는지 아쉬워했다. 자꾸 손해 보는 느낌이 들어 죄짓는 기분이라고 했다. 사회인이 되었으니 관계도 우정도 달라져야 하는 건지, 아니면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것을 지켜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내 친구가 생각났다. 그는 흩어진 우리 여섯을 찾아 연결하고 이끌어온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자기 생활이 있어 쉽지 않을 텐데 나오는 것 없는 일을 도맡아 해 왔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친구를 찾아갔다. 일부러 올 것 없다고 했으나 보고 싶었다. 겨우 입을 연 그 친구의 마음은 짧지 않았다.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의 인연이 ‘우리’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 보람이고 즐거움이었다고 했다. 모두에게 도움되니 기쁘고 가끔 듣는 고맙다는 말이 행복하더라고. 그런데 갈수록 부담이 커지더란다. 몇에게 도와달라고 해 봤으나 마음에 두는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손 놓으면 안 될 일이다 싶고. 부담은 커지고 감당하기 힘들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보여 섭섭하고 심지어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화도 나고. 고민 끝에 고육지책으로 잠깐 물러났다가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돌아오는 내내 그에게 무심하고 소홀한 날이 참으로 미안했다. 오늘처럼 속마음 열어 대화한 적이 거의 없었음도 새삼 깨달았다. 호의도 지나치면 권리가 된다던데, 바로 내가 익숙해지니 당연히 여기고 소홀하게 대했다는 것을 깨닫고 부끄러웠다.     


딸에게 해 줄 말이 정리되었다.

첫째, 그 친구는 손해 본다는 느낌이 들고 더는 안 되겠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영향이 적은 방법을 선택하려 한 것이 참 지혜로워 보였다. 그럴 때 어리석은 선택은 칼같이 끊거나 누구 탓을 하고 추궁하고 원망하며 책임을 돌리는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마 그의 인품이 지켜주었을 것이다.

둘째, 건강한 사랑을 하려면 내가 건강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우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친구를 더 잘 더 오래 사랑하려면 건강한 이기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타적인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닐 수 있다. 

셋째, 친구는 자기가 좋고 행복해서 부담을 떠안고 견뎠다. 그런데 점점 부담이 커지고 힘들다고 느끼면서도 왜 계속 견디려고 했을까. 혹시 ‘좋은 사람 증후군(Nice Guy Syndrome)’ 아니었을까? 만일 그렇다면 다른 일과 다른 관계에서도 스스로 부담을 떠안으면서 자신의 삶을 힘겹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불행한 나는 남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도리어 상처를 주기 쉽다. 벗어나야 모두를 더 잘 위할 수 있게 된다. 아마도 ‘손해 보는 것 같다’라는 느낌이 경계 신호일 것이다.     


친구란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이며 내 인생의 응원군이라고 한다. 우정도 나이를 먹어서 삶의 모양과 내용이 달라지면 우정의 성격과 방법도 달라질 것 같다. 삶이 달라지는데 함께 달라지지 못하는 친구는 어색하지 않을까.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고 지켜주며 책임져 주며 인생을 함께 걸어가는 친구라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친구 관계도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우정의 위험 경계신호를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1.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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