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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진 May 12. 2021

사랑 고백 만큼이나 어려운 일

MZ 딸에게 쓰는 꼰대 아빠의 이야기 3 – 직장생활에 대하여

부모 역할은 등산과 비슷하다. 숨이 차게 언덕 하나를 넘었더니 더 큰 등성이가 이어진다. 자질구레한 우여곡절을 거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넘어 대학이라는 언덕까지 올랐으니 이제 좀 쉴 수 있으려나 했는데 왠 걸, 취업이라는 더 높은 절벽이 떡하니 앞을 가로막는다. 

그래도 취직을 하고 아침에 출근하는 딸의 뒷모습에 마음이 놓이며 돌아서는 순간, 퍼뜩 또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저 성질머리가 직장에 적응은 잘할런지, 능력이 부족해서 뒤처지고 혼나지 않을지, 동료들과는 잘 지낼지 생각이 복잡하다. 가려졌던 또 다른 언덕이 나타났다.


한 2년 지나니 어엿한 직장인 티가 난다. 일도 맞고 뭔가 이루는 재미도 느끼는 것 같아서 보기도 좋다. 그런데 어느 날,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딸의 메시지가 왔다. 

    

아빠, 우리는 전혀 동의한 적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엉뚱한 낙하산이 내려오고 이것저것 조언한답시며 가르치고 간섭하고 방해하면서 그냥 저 잘난 척하는 꼰대가 나타났어.

어떤 사람인가 알아봤더니 몇 군데 대기업을 컨설팅도 한 적 있고 이것저것 파는 브랜드를 키워 보기도 했다는데, 아직도 이것저것 한다고 설치고 다니는 것 같아. 자기 사업도 여러 번 망했다는거야. 저 나이 되도록 성과마저 없다면 참 초라해 보일텐데 그나마 조그만 성과는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은 사람이야. 근데 딱 봐도, 진짜 같이 일하기 싫은 스타일 있잖아요. 그냥 자기만 잘났다는 사람이야. 

내가 인격적으로 못된 것은 인정하지만 이래서 자기 포장 그럴듯한 사람들은 일단 거르고 보는 버릇이 더 생기는 거 같아. 이 사람도 첫눈에 그럴 것 같다 싶더니 역시나 그래.   

   

어떤 상사 때문에 속이 상하나 보다. 직장인의 스트레스 주요 원인이 상사와 직장 선배라는 통계도 기억이 났고 나를 힘들게 했던 직장 상사와 선배들도 떠올랐다. 딸이 상사와 잘 지내지 못하는 것 아닌가 염려되기 시작했다. 자신 만만하고 에너지 넘치지만 누가 억누르려 하면 고슴도치가 되는 녀석이기 때문에 더 걱정이 된다. 


딸애의 상황을 상상하긴 어렵지 않다. 단군 이래 가장 잘 배웠다는 요즘 젊은이들은 기민하고 과감하다. 의욕과 창의력은 기성세대들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나이 많은 상사가 자신의 경험을 내세워 직원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들추고 평가하면서 이것 저것 가르치려 했을 것이다. 첨단지식과 기술로 무장한 젊은이들의 귀에는 우주선을 돌도끼로 만들라는 말로 들렸을 것이다. 더 힘든 것은 고압적인 꼰대들의 태도다. 하지만 지위가 깡패니 어쩌겠는가. 치미는 뭔가를 애써 눌러야 한다. 


딸애도 화를 억누르려고 애쓰면서 내게 저런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다. 적절한 처세와 대응 요령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화를 다루는 지혜가 먼저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지금까지 공부하라고는 해 봤지만 감정을 어떻게 다루라고 가르쳐 본 적이 없다. 손의 기술은 가르쳤으나 가슴의 기술은 가르치지 않은 것이다. 무엇을 해내는 능력만큼이나 자신을 유지하면서 사람들과 잘 지내는 능력이 중요한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다 큰 딸을 혼내며 가르칠 수 없다. ‘내가 젊을 때는 말야~~’ 라고 라떼 어법을 썼다간 나마저 꼰대 취급 받을 것이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어느 날 책 두 권이 눈에 띄었다. ‘왜 능력 없는 사람이 승진하는 걸까?’, ‘열심히 한다고 성공하지 않더라.’

 

성공한 젊은 커리어우먼이 쓴 책이었다. 젊은 감각과 생각, 경험들이 들어 있었다. 디자인도 젊다. 내가 알려주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한 직장생활에 대한 설명과 처세, 적응의 지혜를 알려줄 것 같다. 딸에게 직접 배송이 되도록 주문했다.


며칠 후, 도움이 되었겠지 기대하며 딸의 숙소를 찾았다. 책 두 권이 책장에 꽂혀 있었다. 잘 읽었을거야 생각며 책을 펼쳐 봤다. 어~! 읽은 흔적이 없다. 조심스럽게, 최대한 살짝 책이 도움 되었느냐고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응. 봤는데… 컨셉이 너무 올드해. 요즘 저런 생각 안 통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한번 보라고, 도움이 될 거라면서 일어섰다.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물가의 아이를 보는 듯 안타깝고 조마조마해서 어떻게든 세상 사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은 내 마음을 올드하다는 단어 하나로 정리하다니... 돌아와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생각하다 문득 오래전 아내에게 고백하려고 끙끙대었던 기억이 났다. ‘나 너 좋아해’라는 다섯 글자 말하기가 그리 힘들었던 것 만큼이나 딸에게 삶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 


나는 딸을 사랑한다. 딸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가끔 조금 잘못된 부분이 눈에 띈다. 그러면 나는 조급해져서 최대한 빨리, 한 번에 바꾸려고 서두른다. 그러나 대부분 실패한다.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들을 마음이 아닌 딸은 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버럭! 하며 윽박지르게 된다. 내 목소리가 커질수록 딸의 반발도 더 강해진다. 그러면서 관계는 상처 입고 망가진다. 

아무래도 접근하고 전달하는 방법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며칠,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 생각을 하다가 딸애가 자기 생각을 하도록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다 질문을 해 오면 더 좋겠고...  그런 마음으로 조금 긴 메시지를 보냈다.

     

어느 학자가 여러 어린이를 40여 년을 추적 조사한 연구를 한 뒤 삶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 첫째, 다른 사람과 잘 지낼 것. 둘째, 실패해서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것. 셋째, 자신의 감정, 특히 분노를 다스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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