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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진 May 18. 2021

내가 만일 그 동생이라면

MZ딸에게 쓰는 꼰대아빠의 이야기 6 – 직장이 나를 배신한다고 느낄 때

딸의 전화기가 꺼져 있다. 지금 마음이 힘들거나 지쳐 있다는 신호다. 윗사람이 섭섭하고 실망스럽다며 대화해 볼 것이라고 하던데 잘 풀리지 않았나 보다.

딸은 스타트업에서 근무한다. 스타트업은 작아서 성공한다. 성공하고 성장하면서 기능과 역할이 나뉘고 절차와 시스템이 갖춰진다. 외부와의 교류도 넓히고 더 많은 정보와 조언과 제안들이 리더에게 들어온다. 사실 그것들은 리더가 매우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리더가 내부보다 외부의 말에 귀를 더 기울이고 외부 사람을 더 믿으면서 문제가 생긴다. 

딸의 하소연은 다음 이야기와 비슷했다.   

  

사업을 하는 큰형이 동생들에게 함께 하자고 했다. 동생들은 형을 열심히 도왔고 사업도 성장했다. 큰형은 활동을 외부로 넓혔고 어느 모임에서 대화가 통하는 이성을 만났다. 그 사람의 경험과 안목이 사업에 도움 될 것 같았다. 둘은 더 가까워졌고 동생들에게도 소개했으며 결혼을 하게 되었다. 

형수도 자연스럽게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동생들은 형수의 아이디어를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업 여건에 맞지 않거나 준비 단계에서 이미 검토하고 걸러졌거나 부적절한 것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견이 충돌하면서 관계도 불편해져 갔다. 그런데 형은 형수 편을 들면서 말을 더 들어보라는 것이었다. 동생들은 그러는 형이 더 서운했고 배신감마저 느끼기 시작했다.    

  

상황은 큰형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것 같다. 아마도 큰형은 동생들에게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하고 동생들도 마음을 모아 몰입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동생들이 사업의 주인이었을까? 형은 동생들을 주인이라고 생각했을까? 처음엔 그랬는데 점차 생각이 달라진 것일까? 아무튼 지금 그들은 한 이불 속에서 다른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어떤 계기로 동생들이 꿈에서 깨어났다. 이제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의욕과 사기가 떨어질 것이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고 열심히 일한 것이 후회되며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렇게 한번 상한 마음은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되살아나기 힘들 것이다. ‘주인의식이란 내가 주인이라는 착각 속에서 헛되이 열심을 내어 일하게 만드는 무엇’이라고 말한 누군가는 어쩌면 이 장면을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큰형은 일과 사람 모두 잘 어우러지도록 이끌어야 했다. 형수가 새로 합류할 때도 관계 속에 믿음이 쌓이고 서로 의지하게 될 때까지 안내하고 조정하고 조율해야 했다. 모두의 상한 마음을 감싸고 위로하며 회복해야 했다. 불화를 조장하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해결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도 무능하고 나쁜 것이다. 헛되이 주인의식을 부추긴 형은 사기를 친 것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누구의 책임이고 누구의 잘못이 더 큰지를 가리는 것만큼이나 어떻게 상황을 수습하고 문제를 해결할지도 중요할 때가 있다. 그렇다면 만일 내가 그 동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일단 큰형이나 형수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멈출 것이다. 그리고 누가 나를 속이는지 성찰할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스스로 자신을 속이면서도 남이 나를 속인다고 원망한다. 나는 주인이 아니라 조직이 무엇을 이루는데 어떤 역할을 맡으라고 위탁받은 사람이다. 나의 가치는 그것을 어떻게 얼마나 해내는지에 따라서 결정되게 된다. 

그리고 나는 조직에 더 단단히 뿌리 내리려고 노력할 것이다. 오래전 직장을 떠났을 때 조직 밖의 나는 매우 외롭고 약하고 보잘것없다는 것을 절감한 적이 있다. 그것은 생계의 문제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아니라 내가 속한 조직을 향해 인사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사람(人)은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 속(人間)에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지지와 보호를 더 받고 나의 성취와 발전의 의미도 커진다.   

그런 다음, 그 모든 것을 바탕으로 조만간 울타리를 뛰어 넘어 내 세계로 달려가기 위해 실속 있게, 서두르지 않으며 차곡차곡 준비할 것이다.  인생은 누적이며,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이 리셋하여 제로에서 다시 출발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나의 새 출발은 지금까지 쌓은 인생과 경험과 주변과의 모든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무모하지 말아야하고 지혜로워져야 한다.


젊음은 불의에 맞서 싸우고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몸부림친다. 한계를 거부하고 경계를 넓히며 영역을 새롭게 하는 것은 젊음의 본능이며, 비판과 저항은 젊음의 특성이다. 그러나 이기기 위해서 빠르고 예리하고 강해지려고만 하면 거칠고 쉬 지치게 된다. 그래서 꼰대들은 젊은이들에게 차근차근 분수를 지키고 덜 거스르라고 충고한다. 캐미에 매우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충고 속에 자신을 바로 알고 주위와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있음을 느끼는 젊은이는 지혜롭다. 다름과 차이, 반대까지도 감싸서 모두를 한 차원 높은 곳으로 이끄는 성숙한 젊음이다. 그리고 그는 후일 큰형의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강한진  hjkangmg@hanmail.net 2021.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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