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사랑하면서도 멀어지는 이유
3학년 새 학기를 앞둔 아영이는 옆집 이사 소음과 강아지 짖음에 짜증을 내며 강아지를 괴롭힌다. 오빠 우람이가 말리지만, 아영이는 큰 개 짖는 소리를 틀어 강아지를 겁준다. 이 장면을 본 옆집 아주머니가 항의하러 오고, 상황은 우람이 탓으로 오해받는다. 아영이는 침묵한 오빠 덕분에 혼나지 않았지만, 우람이가 편지를 쓰다 말고 사라지자 불안해진다. 오빠를 찾아 나선 아영이는 놀이터에서 불량 청소년들에게 핸드폰을 빼앗기고 위협당한다. 그때 미끄럼틀 터널에 숨어 있던 우람이가 나타나 경고음으로 그들을 물리친다. 위기를 넘긴 후, 아영이는 오빠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며, 처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며 편지를 쓴다.
『초등 문해력을 부탁해』 중 《가족의 힘》
성인 아영이:
“오늘도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 나 혼자 이런 감정 끌어안고 있다는 거, 넌 신경도 안 쓰지?”
남자 친구 민수:
“(잠시 침묵)… 신경 쓰고 있어.”
성인 아영이:
“그럼, 뭐라고 말 좀 해 봐! 뭘 어떻게 신경 쓰는지!”
남자 친구 민수:
“네가 너무 감정적으로 나오니까… 무슨 말을 해도, 더 화낼 것 같아서 말이 안 나와.”
성인 아영이:
“봐봐, 또 내 탓하잖아. 난 싸우자는 게 아니라, 네 마음을 알고 싶은 거라고.
너한텐 내가 그냥 불편한 존재야?”
남자 친구 민수:
“그런 거 아니잖아…”
성인 아영이:
“그럼 왜! 내가 화를 내야 겨우 대답해?
내가 너를 이렇게까지 흔들어야 네 마음을 알 수 있는 거야?”
남자 친구 민수:
“…그냥, 네가 화내는 걸 보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랬어.”
성인 아영이:
“가만히 있는 너한테 나 혼자 소리 지르는 이 상황, 얼마나 외로운 줄 알아?”
<가상의 시나리오>
위 <가상의 시나리오> 대화글은 성인이 된 아영이가 남자 친구랑 다툴 때 감정 표현하는 방식을 가상으로 만들어 봤어.
한쪽은 서운함을 감정으로 꺼내 놓고, 다른 한쪽은 침묵으로 반응하지.
서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서 갈등이 깊어지는 거지.
어떤 사람은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며 감정을 이어가려 하고,
어떤 사람은 말로 감정을 확인받고 싶어 해.
서로의 감정 표현의 언어가 다르다 보니, 그 차이가 오해로 쌓이고 결국 마음이 멀어지게 되는 거야.
내가 쓴 <가족의 힘> 동화 속에 ‘아영이’라는 캐릭터가 나오는데, 이 친구는 부모님께 혼날까 봐, 자기 잘못을 숨겼어.
그런데 자기 대신 꾸중을 들은 오빠 ‘우람이’가 말도 없이 사라지자, 아영이는 갑자기 화를 내며 오빠를 찾으러 나서.
왜 아영이는 잘못한 건 자기인데도 오빠에게 화를 냈을까?
그건 오빠가 사라졌을 때, 아영이 안에 숨어 있던 진짜 감정이 드러났기 때문이야.
‘오빠는 항상 날 감싸줬으니까, 이번에도 괜찮을 거야.’
아영이는 그런 이기적인 기대를 하고 있었던 거지.
하지만 오빠가 사라지자, 그 순간 두려움과 후회, 외로움이 한꺼번에 밀려왔어.
‘오빠가 날 미워하게 된 걸까? 나 혼자 남겨지는 건 아닐까?’
아영이는 사실 화가 난 게 아니었어. 무서웠고, 미안했고, 외로웠던 거지.
그런데 그 감정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화’라는 방식으로 표현한 거야.
이런 감정 표현 방식은 어릴 때 익숙해진 대로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성인이 된 아영이도 <가상의 시나리오> 속에서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연인과 갈등을 겪게 되지.
속상하고, 걱정되고, 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도
“왜 나한텐 신경도 안 써?” 같은 짜증 섞인 말을 꺼내게 되는 거야.
다시 말해 아영이는 자신의 감정을 말로 정확히 표현하지 않고,
상대가 알아서 내 마음을 헤아려 주길 바라는 방식에 익숙해진 거지.
그리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감정은 금세 분노로 바뀌는 거야.
하지만 아영이의 남자친구 민수는, 어릴 적 아영이 오빠 우람이처럼 감정을 조용히 처리하는 사람이야.
문제에 대해 생각은 하지만 말로 드러내진 않아.
그래서 아영이에겐 그 침묵이 외면이나 무시처럼 느껴졌던 거야.
그러니까 아영이는 “뭐라고 말 좀 해봐!” 하고 소리치고,
민수는 “지금 말하면 서로 상처 줄까 봐” 망설이는 거지.
그 결과 두 사람은 점점 서로가 멀어지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거고.
이쯤에서 동화 속 ‘우람이’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
우람이는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을 뒤집어쓴 억울함,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신뢰가 깨진 충격 때문에
혼자 미끄럼틀 속에 들어가 조용히 감정을 삭이고 있었어.
그 공간은 우람이만의 감정 은신처였던 거야.
우람이에겐 침묵이 회피나 포기가 아니라, 감정을 정리하는 방식이었던 거지.
하지만 이런 방식에도 단점은 있어.
말하지 않고 감정을 오래 쌓아두면 마음속에 병이 생기기도 하고,
상대가 그 침묵을 무관심이나 냉담함으로 오해할 수도 있거든.
그리고 적절한 시점에 표현하지 못한 감정은
“난 항상 참기만 해”라는 피해의식으로 바뀔 수도 있고.
그래서 나는 생각해.
감정 표현이라는 건 단순히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의 문제인 것 같아.
아이든 어른이든, 감정을 스스로 정리해서 표현할 필요가 있고,
참았던 감정이라면 언젠가는 꼭 말로 풀어낼 센스도 필요한 것 같아.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조절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
그게 결국 더 건강한 관계, 더 단단한 마음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