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보내는 쪼~금 긴 메모 28

새로운 교양! 말솜씨가 아니라, 말의 온도

by 김현정

요즘은 말 한마디도 참 조심스럽지?


나도 그래. 가끔은 말이 마음보다 먼저 튀어나와서, 뇌를 거치기도 전에 툭 던져져 버릴 때가 많았어.

그리고 그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을 단단히 건드려 버리는 순간도 있었지.

한 10년 전쯤, 네 숙모가 외삼촌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꺼냈을 때가 있어.

중소병원 내과 과장으로 새로 들어갔는데, 병원 외벽에 외삼촌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까지 걸렸다고 하더라.

그 말을 할 때 숙모 얼굴엔 자랑과 뿌듯함이 가득했지.

나도 속으론 “이야, 정말 대단하다” 싶었어. 내 동생 일이니까.

그런데 괜히 어릴 적 우리 형제들끼리 하던 장난처럼 툭, 이렇게 말해버렸지.


"그럼, 이제 성민이가 명의가 된 거야?"


그 말을 들은 외삼촌은 웃으며 넘겼지만, 숙모 얼굴이 순간 굳는 걸 봤어.

그 표정을 보는 순간 알겠더라.

‘아차, 내가 실수했구나.’


내가 한 농담이 숙모가 자랑스러워하던 순간을 웃음거리로 만든 셈이 된 거지.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넘겨버렸는데,

그 이후로 숙모가 나를 대하는 표정과 태도는 분명 달라졌어.

나는 괜히 더 친근하게 다가가 보려 했지만, 숙모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했지.

시간이 지나니까 나도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

그저 예전 형제들끼리 하던 농담처럼 받아들여 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였을까 싶기도 했지.

하지만 한편으론, 내 말 한마디가 상대의 진심을 가볍게 만든 건 분명하다는 걸 알았어.

그날 이후, 나는 속으로 속앓이를 했고, 언젠가 이 어색함을 꼭 풀고 싶다고 마음먹었어.

그러던 어느 날, 외삼촌 딸, 그러니까 빈이가 의대를 목표로 대입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엄마는 그때가 기회다 싶었지.

수시 원서를 넣는 시기에 절에 가서 ‘의대 합격’이라는 메시지를 정성스럽게 써서 등을 달고,

그걸 사진으로 찍어 외삼촌 부부에게 보냈어.

수능 당일엔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시고 다시 절에 가서,

‘실수하지 않고 시험 잘 치고 오라’고 함께 기도했지.

그 순간도 인증 사진으로 남겨 다시 외삼촌에게 전했어.

정성이 통했는지, 빈이는 결국 의대에 합격했단다.

당연히 엄마도 빈이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오래전 내 실수로 멀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기에,

더 간절하고 정성스럽게 응원했던 것 같아.

다행히 그 진심이 전해졌는지,

최근에 다시 만났을 땐, 숙모가 예전처럼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 주더라.


그 미소를 보며 속으로는 이렇게 중얼거렸지.

‘어휴, 내가 이제 너희들 앞에선 입도 벙긋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많은 걸 생각하게 됐어.

‘내가 던진 말은 깃털처럼 가벼운 솜뭉치라고 여겼는데,

그 말이 상대의 삶이나 상처에 닿는 순간, 단단한 돌덩이가 될 수도 있겠구나’라고 말이야.


생각해 보면, 그런 말을 나는 참 많이 했던 것 같아.

상대는 진심을 담아 꺼냈는데, 나는 장난처럼 받아쳤고.

대화를 편하게 하려던 말이 오히려 벽을 만들기도 했지.


그중 하나가 바로 “애인 있어?” 같은 말이야.

예전엔 “애인 있어?” 같은 질문이 자연스러웠지.

가족끼리도, 지인끼리도 자주 오갔던 말이었고,

명절 때 그 질문이 싫어서 일부러 피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한마디가 성적 지향이나 연애 경험, 삶의 선택을 들춰보는 예민한 질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했던 것 같아.


하지만 요즘은 그런 말들에 담긴 가정과 전제를 먼저 생각해야 하더라.

그래서 “요즘 누구랑 자주 연락해?”,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사람 있어?”처럼

관계를 열어두는 방식으로 묻는 게 교양 있는 표현이라고 하더라.


내가 알던 교양은 지식이 많고 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거였는데,

요즘은 말을 꺼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표현에 배려를 담는 사람이 교양 있어 보이는 시대가 된 것 같아.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말에서 마음이 느껴지는 사람이 더 멋있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이건 단순히 말실수를 피하자는 차원을 넘어서,

다른 사람의 감정과 정체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새로운 교양의 기준이 되어가는 시대라는 생각도 들어.


솔직히 말하면, 그 기준에 맞추어 가는 게 쉽지만은 않아.

무슨 말을 하든, 이 말이 어떻게 닿을까를 늘 고민해야 하고,

내가 살아온 시대의 감각과 지금 너희 세대의 감수성이 다르니까,

그 정서적 간극을 공부해서 따라가는 것도 꽤 벅차게 느껴져.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와 나, 우리 모두는

성별, 가족 형태, 외모, 배경 등 하나의 기준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다양성의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잖아.

예전엔 농담처럼 지나갔던 말이

이제는 누군가의 존재 전체를 부정하는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하고,

지식보다 더 중요한 건

‘내 말이 누구에게 어떻게 닿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능력이라는 걸

서로 기억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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