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희망은 있으리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지.
피디가 되는 것만이 나의 길이라고 중학생 때부터 굳게 믿었다. <다큐 3일>과 <그들이 사는 세상> 드라마가 크게 영향을 끼쳤다. 결국 다큐와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홈쇼핑 회사에서 내가 원하던 피디 일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고, 4년 가까이 열심히 했다. 많이 배웠고, 웃었고, 즐거웠다.
그리고 이직과 내부전배를 거친 지금의 나는 프로젝트 매니저다. 아, 중간에 영업을 1년 하기도 했다.
피디와 영업과 기획...? 제대로 섞여버린 나의 커리어패스. 이제 내 커리어를 정의하는 하나의 단어를 찾기가 어렵다. 즉 '제너럴리스트'가 되어버렸다.
끝장나는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나인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제너럴리스트야말로 대체되기 쉬운 인력의 표본이 아닌가?
한 우물을 깊게 파서 그 분야의 장인이 되어야, 관련해서 인맥도 쌓고 창업이라도 할 스토리가 나오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에 불안해질 때가 종종 있었다. 그때 HBR의 글 하나를 읽었다.
커리어패스가 아닌 <커리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나가라는 이야기
위로 올라가는 것에 집중하는 커리어패스의 수직적 개념보다, 옆으로 확장을 하는 수평적 관점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저는 A 직무를 10년 했습니다. A 직무와 관련된 영역 내에선 제가 모르는 게 없습니다
저는 A직무를 5년 정도 했고, B직무를 5년 정도 했습니다. 책을 좋아해서 북클럽을 운영한 지도 3년이 되었네요.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요즘 시대는, 하나의 길을 깊게 판 후보자보다 여러 영역을 두루 파악한 후보자의 인사이트를 더 필요로 한다.
다양한 영역을 경험했기에 기존의 문제에 새로운 시선을 던져줄 수 있고 창의적인 연결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생각해 보면 피디와 프로젝트 매니저 두 롤이 근본적으로 요구하는 역량은 비슷하다.
일의 중심에 존재하면서, 일이 이뤄지도록 끌고 나가는 일.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설득해내야 할 때도 있고, 매달려야 할 때도 있다. 내 욕심을 부려야 할 때도 있고, 그러다 욕먹을 때도 있다.
피디만 했었더라면 전혀 대응하지 못했을 이슈들에 나는 이제 대처할 수 있고, 처음부터 PM만 했더라면몰랐을 애로사항을 피디 경험이 있어 함께 공감할 수 있다.
직업 하나로는 60살까지 버틸 수 없는 이 각박한 세상에, 다양한 시도와 경험은 무조건 +에 가깝지 않을까?
한 우물을 파지 않아 불안한 자들이여, 확장성이 가득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잠시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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