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책을 굳이 찾아 읽는 이유
기획 일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자주 ‘창의성’이 필요하다. 초반 브레인스토밍에서부터 실제 실행 단계까지,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계속 찾아내야 하기 때문. 이때 필요한 창의성은 갑자기 하늘에서 영감을 받는그런 류의 창의성이 아니다. 본인의 기존 경험과 정보를 융합(믹스)해서 새로운 것을 제시하는 것에 가깝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소스를 늘리기 위해 의식적으로 종종 트렌드책을 찾아 읽는다. 모든 트렌드를 직접 경험하는 건 물리적,경제적으로 불가능하니 꽤 고마운 방법이다. <리테일의 미래>, <퇴사준비생 시리즈> 등을 꽤 재밌게 읽었다. 특히 <퇴사준비생의 도쿄>가 기억에 남는데, 한국보다 더 개인화에 포커스한 비즈니스 모델이 일본에 많은 것이 흥미로웠다. 그것이 성공까지 이어지는 것도.
예견된 한국의 고령화와 성장 부진이 어떻게 이 사회를 변화시킬 것인가 고민할 때 가장 적절한 벤치마크는 아무래도 일본이다. 트렌드책의 국적을 '유용성'이란 관점에서 우선순위 매겨보자면, 일본이 미국을 이긴다는 뜻이다.
최근 <도쿄 트렌드 인사이트>를 읽었고, 꽤 생각해 볼 지점들이 있어 기록을 남기고 공유한다.
완독 후 한줄평: 정말이지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기존의 것을 다른 방향으로 전개하거나, 다른 업계의 모델을 내 업계에 적용해 보거나. 앞에서도 융합을 언급했지만, '잘 섞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창의인재이다.
쇼핑에 있어 실패를 피하고 싶다는 Z세대의 심리를 활용한 사례가 일본 최대의 패션 온라인 쇼핑몰인 조조타운(ZOZO TOWN)이 만든 첫 오프라인 점포 ‘니아우 라보(Niaulab)’다. 이곳은 의류는 판매하지 않고 고객에게 의류를 제안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다. 1인당 무려 2시간에 걸쳐 퍼스널 스타일링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조조타운이 모은 1,300만 건이 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축한 AI를 활용함과 동시에 전문 스타일리스트가 상주해 고객에게 어울릴 만한 코디를 세 가지 패턴으로 제안한다. 조조타운이 제안한 옷을 입은 상태에서 헤어와 메이크업 서비스를 받고 사진 촬영도 가능하다.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매장이 아니기 때문에 고객은 구매에 대한 부담 없이 2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만약 원하는 상품이 있다면 상품 정보가 담긴 QR코드를 경유해 온라인에서 구매한다. 고객은 집에 돌아갈 때 스타일링 포인트를 적은 카드와 현장에서 전문 사진사가 찍은 프로필 사진을 받는다. 개인화된 스타일링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닌 ‘어울림’을 찾아주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퍼스널컬러, 체형별 스타일링 컨텐츠가 유행하고 요즘 세대는 퍼스널 컬러 테스트가 일종의 취미인 걸 떠올려본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곳에서 2시간만 투자하여 내게 가장 어울리는 걸 한 번에 파악하는 것은 꽤나 가성비 있는 선택일 지도 모른다.
도조는 선물을 보내는 사람이 선물을 고르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작성해서 받는 사람에게 SNS로 보낸다. 특이한 점은 물건 자체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선물하고 싶은 상대방에게 어울리는 테마를 선택해서 SNS로 보내고, 선물을 받는 사람은 테마에 맞는 5~6개의 선물 중 하나를 선택해 우편으로 받아보는 것이다. 물건이 아닌 테마를 고르는 형식이기에 선물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선물을 고르는 부담이 줄어든다. 또한 단 몇 분만에 선물을 보낼 수 있기에 선물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경우에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좋은 아이디어. 카톡 선물하기를 열면 기획전이나 테마는 많지만, 사실 그 큐레이션을 통해 구매까지 이어진 적이 거의 없다. 이곳저곳 기획전을 돌고 돌다 결국 스타벅스 상품권이나 배민상품권, 올리브영 상품권을 주곤 한다. 대상을 막론하고 실패할 확률이 가장 낮은 선택지기 때문이다.
테마만 선물하고 구체적인 선택은 받는 사람이 한다? 서로의 부담이 매우 줄어드는 현명한 방법이다.
고령자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들을 감정적으로 지원하는 서비스들도 등장하고 있다. 일본의 스타트업 미하루(MIHARU)는 젊은 직원이 정기적으로 노인을 방문해 마치 손주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토 메이트’를 시작했다. 창업자인 아카키 씨는 87세인 자신의 할머니가 골절상을 입었을 때 간병인을 원하지 않았던 경험에 착안해 비즈니스를 구상하게 되었다. 몸은 조금 아프지만 스스로 일상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전문 간병인이 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고령자들의 니즈를 확인한 것이다. 이들에게는 간병인이 아닌 옆에서 불편함을 조금 도와줄 손자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비즈니스의 발단이 되었다.
비용은 시간당 3,500엔(약 3만 5천 원)이며 20~30대의 젊은 친구들이 고령자의 집을 방문해 스마트폰이나 PC 등 디지털 기기의 사용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를 도와 함께 장을 보러 가기도 한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서비스가 운영 중이다. 젊은 직원을 노인 가정에 파견하는 서비스 파파(Papa)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도와 함께 이동하거나 장을 봐서 같이 요리하는 등 일상의 한 부분을 나눈다. 이 서비스도 직원이 단순한 도우미가 아닌 고령자와 친근한 관계를 만들어 간다는 점이 커다란 차별점이다.
시니어산업의 함정: 시니어를 '시니어'처럼 대하면 호응을 얻기가 쉽지 않다는 것. 노인이 된 것은 어쩔 수 없이 인지하지만, 당신이 ‘간병인’이 필요할 만큼 늙었음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늙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일본 유수의 수건 산지인 이마바리시의 지명을 딴 ‘이마바리의 먼지(今治の ホコリ)’라는 이름의 신상품이 화제가 되었다. 제품을 듣는 순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먼지를 판다고?’ 이 상품은 수건의 염색 공장에서 발생하는 솜뭉치로 만든 점화제다. 점화제란 캠핑 시 모닥불을 피울 때 쉽게 불을 붙일 수 있도록 돕는 제품이다.
염색한 수건을 건조하면 건조기 필터에 솜뭉치가 달라붙는다. 니시센코의 경우 그 양이 하루에 120리터 쓰레기봉투 2개 분량, 즉 240리터에 달하며 당연히 처리 비용도 발생한다. 그뿐만 아니라 솜뭉치 쓰레기가 쌓이면 전기 합선으로 인해 공장 화재가 발생하는 등 솜뭉치는 염색 공장의 골칫거리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러한 불에 잘 타는 성질을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니시센코의 상품개발부장인 후쿠오카(福岡) 씨가 캠핑 매니아였기 때문이다. 캠핑에서 모닥불을 피울 때 불꽃을 옮겨 붙이는 불씨가 필요한데 공장에서 나온 솜뭉치를 사용해 보니 놀라울 정도로 쉽게 불이 붙는 것을 발견했다.
던킨도너츠 먼치킨을 사실은 도넛의 중앙에 뚫린 부분으로 만든다는 썰을 본 적이 있다. waste로 돈을 버는 것만큼 완벽한 비즈니스 모델이 있을까. 해당 사례도 이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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