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7개월이면, 엄마도 7개월인 거예요.”

산후 우울. 그냥 버티지 말고 잘 버티자

by 임희정




슬픔은 상황에 걸맞은 우울함 이지만 우울증은 상황에 걸맞지 않은 슬픔이다.

‘한낮의 우울’ – 앤드루 솔로몬





오랜만에 친구와 깔깔거리며 통화를 했다. “그래 잘 지내고 또 연락하자!” 웃으며 전화를 끊었는데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좀 전까지만 해도 껄껄거리며 웃고 떠들던 내가 식탁에 앉아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아이 이유식을 만들고 있었다. 냄비에 물을 붓고 주걱으로 휘이 휘이 젖고 있었다. 물이 부족한 것 같아 컵에 물을 담고 한 번 더 냄비에 붓는 순간 난데없이 눈물이 흘렀다. 아무 감정도 생각도 없이 반복해 손을 휘젓고 있었던 내가 싱크대 앞에서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샤워를 하고 있었다. 따뜻한 물로 몸을 적시니 피로가 조금 가시는 듯했다. 머리를 감고 몸을 헹구고 마른 수건을 집어 들고 물기를 닦으려는데 느닷없이 눈물이 흘렀다. 개운하다 생각하며 조금 상쾌해진 기분으로 화장실을 나온 내가 거실에서 또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자꾸만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그전에는 슬픈 생각을 하다 울고, 육아에 지쳐 울고, 몸이 아파 울고, 눈물에 맥락이 있었는데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가만히 있지 않아도 계속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생각했다. ‘내가 많이 아프구나’ 이 뜬금없는 눈물들은 내 몸이 괴롭다고 자꾸만 티를 내는 것 같았다. 나는 치료를 받아야 했다.



fitting-2930485_1280.jpg 자꾸만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상담을 받아야겠다고 결심한 건 아이가 7개월이 됐을 때였다. 매일 심각해지는 코로나 때문에 그동안 간간이 해왔던 일마저 모두 멈췄을 때였다. 외출도 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내가 유일하게 하루하루 해야 하는 것은 ‘독박 육아’였다. 달력을 세어보니 현관문 한 번 제대로 열어보지 못하고 아이만 붙들고 집안에서 혼자 쩔쩔맨 지 한 달 반이 넘었다. 그 시간 동안 아이는 자라났지만 나는 무너져갔다.


산후우울증은 처음 아이를 낳은 초반부터 있었지만, 그때는 너무 지쳐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죽지 못해 버티는 날들이었다. 그런데 최근 내 증상과 상태를 보니 내 눈물도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며 자꾸만 흐르고 쏟아지는 것 같았다. 결국 버티고 버티다 못 버티겠어서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상담센터를 찾았다.







“잘 오셨어요. 7개월이면 몸은 회복됐나요?”

대화는 안부로 시작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요. 엄마가 된 게 너무 버겁고 힘들어요.”

대답은 고백으로 이어졌다.


“힘든 게 당연하죠. 아이가 7개월이면, 엄마도 7개월인 거예요.”


나는 통곡했다.




candle-3026952_1280.jpg "아이가 7개월이면, 엄마도 7개월인 거예요.”




그랬다. 갓난아이 앞에 나도 ‘갓 된 엄마’였다. 아이도 세상에 태어나 모든 것이 처음이고 낯설어 자지러지게 우는데 나도 처음 엄마가 되었으니 뭐든 서툴고 혼란스러워 눈물만 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거였다. 그 어색함과 미숙함 앞에 괴로워 도망가고 싶기도 한 마음이 드는 것도 마땅한 거였는데 그걸 받아들이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게다가 나는 심각한 산후통으로 몸까지 너무 아팠다. 그런데도 7개월 동안 내 얼굴에 자꾸만 흐르던 눈물이, 내 몸에 너무나 버거운 돌봄이 계속 이상하다 생각했다. 이 당연한 증세와 마음을 유난스럽고 나약한 거라 느꼈다. 엄마가 된 지 7개월이 됐을 뿐인데, 마치 서른일곱에 엄마가 되었으니 37년 된 베테랑 엄마처럼 육아도 잘 해내야 한다고 여겼다.


아이가 7개월이면 엄마도 7개월이라는 선생님의 한마디는 세상 모든 엄마가 들어야 할 정확하고 확실한 위로이자 진단 같았다. 아픔은 이렇게 누군가의 인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정도는 똑같아도 견딜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준다.


‘그래. 나는 엄마로 산 지 겨우 7개월이 되었다. ‘엄마’ 앞에 내가 살아온 생은 경력도 노련도 되지 못한다. 그동안 나는 엄마가 아니었고, 처음으로 엄마를 겪고 있는 중이니까.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 엄마도 태어나고 아이가 자라는 정도만큼 엄마도 조금씩 되어 간다. 그러니 처음 앞에 따라오는 우울, 고통과 침울은 마땅한 것이지 이상하고 유별난 것이 아니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상담의 마지막, 선생님은 말했다.


“당분간 오시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야기도 하고요. 못 오시게 되면 전화로 이어가고요. 우리 정기적으로 만나서 일주일의 삶이 어땠는지 이전의 삶은 어땠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얘기 나눠요. 꽉꽉 쌓여있고 닫혀있는 것들을 언어로 풀어낼 수밖에요. 힘들겠지만 그 마음을 느껴가며 견디는 연습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 시기를 함께 지내보죠. 어쩌겠습니까.”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이 시기를 ‘함께’ 지내보자고 하니 나는 또 눈물이 나면서 힘이 났다. 선생님의 말대로 일주일에 한 번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와 언어로 풀어내야지 생각하며 일주일 후로 두 번째 상담 예약을 했다.


‘이제 상담도 받고 치료도 받고 도움도 받아야지. 어쩌겠는가. 아이는 태어났고 나는 엄마가 되었는데. 내 앞에 생명은 너무나 선명하고 내 생도 함께 밝아지려면, 그냥 버티지 말고 잘 버텨야지.’


7개월 차 엄마인 내가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