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밤

눈물 가득했던 백일의 밤들

by 임희정

생의 여름마다 분명 덥고 습하고 쨍했을 텐데, 엄마가 된 나의 2020년 여름은 온도와 습도가 없었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 갇혀있던 유월과 칠월 그리고 팔월이었다. 아이로 인해 먹고, 자고, 싸는 이 간단하고 명료한 욕구조차 제때 해결할 수 없는 일상이 괴로웠고 불만이었다. 샤워를 하고 알몸의 나를 마주할 때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배꼽 아래 선명하게 그어진 수술자국, 그 위로 까맣게 남아있는 임신선, 몇 개인지 다 셀 수도 없는 얼룩 같은 점과 쥐젖들, 처진 가슴, 튼 살들. 아이는 세상에 나왔는데 이렇게까지 내 온몸에 출산의 흔적들은 잔인하게 남아야만 하는 것인가.


석 달의 밤 동안 나를 휘덮은 우울을 걷어낼 자신이 없었다. 매일 밤 울고, 매일 아침 닦을 뿐이었다. 아이를 기쁨과 예쁨으로만 표현할 재간도 없었다. 그러기에 내 몸은 심하게 망가져 버렸고, 온종일 아이를 돌보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지독했다. 아이 앞에 놓인 행복보다 내 앞에 가득한 불행이 먼저 보였다.


임신 전에 입었던 옷, 했던 일, 세웠던 계획과 품었던 꿈들은 하루아침에 옷장 깊숙이 그리고 마음 깊이 묻어두어야 했다. ‘엄마’에겐 다 필요 없어 보였다. 나는 엄마가 되었는데, 엄마가 되기 전의 나를 붙잡고 있으니 슬프기만 했다. 아이를 돌보느라 나를 돌보지 못한 날들이었다.


‘육아’라는 두 글자를 나는 괜히 한 번 사전에 입력해 보았다. 그 단어 앞에 화가 나고 슬프고 심통이 나서. 뭐라고 적혀있는지 내심 확인하고 싶어서. 간단했다. ‘어린아이를 기름’ 나는 이어 ‘기르다’라는 동사를 입력해 보았다. ‘아이를 보살펴 키우다’ ‘보살피다’라고 또 적어보았다. 내 새끼를 기르는 이 일이 왜 이렇게 고통스럽고 끔찍한지를 누구에게 라도 따져 묻고 싶어 애꿎은 사전만 무의미하게 계속 검색해 보았다. 그 사이 아이는 잠에서 깨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노트북을 덮고 아이를 품에 안았다. 달래고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또 무한히 반복해야 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90일을 넘겨 처음으로 유모차에 아이를 눕히고 집 앞 공원에 나왔다. 산책이란 두 글자에 큰 용기가 필요했다. 출산 전 매일 드나들던 공원이었는데 새삼스러웠다. 하긴 아이를 낳으면 삶이 새삼스러워진다.


걸으며 생각했다. 그동안 내 바로 옆에 있던 초록과 파랑을 보지 못해 나는 깜깜했구나. 고립은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었구나. 마음 같아선 독박 육아를 법으로 금지시켜야 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절망은 다른 것이 아닌 ‘나만 그런 것 같을 때’ 훅 밀려오니까. 고작 집 앞에 잠깐 나왔을 뿐이었는데 마음의 기운이 달라졌다. 덥고 습한 공기마저 반가웠다. 나는 조금 숨통이 트였다.


아이를 낳으면 삶이 새삼스러워진다.



아이는 곧 백일을 앞두고 있다. 지난 백번의 밤을 어떤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차오르는 말들이 참 많았는데 그 생각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흔적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다. 매일 고달픔이 너무 커 그걸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 아이는 낮과 밤을 잘 구분하고 5시간 넘게 잠을 자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도 엄마와 나를 조금씩 구분 짓고, 고단을 이겨낼 수 있는 의지가 생겼다. 무엇보다 아이가 잠들면 석 장 정도의 책을 읽고, 한 문단 정도의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읽고 쓸 수 있어 나는 많이 숨통이 트였다.


눈물 가득했던 백일의 밤들을 엄마의 언어로 복기해야 할 일이 남았다. 수당을 받는 것도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니지만, 기록이 남으니 마음을 서둘러 본다. 나는 앞으로 오랫동안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으니까. ‘쓰는 엄마’가 되고 싶으니까.





기저귀 옆에 책 두 권이, 젖병 옆에 캔맥주 하나가 놓여있다.

피곤한데 기운 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