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 리얼리즘 제왕절개 후기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
‘섬’ - 장 그르니에
제왕절개의 날이 와버렸다. 드디어 아이를 만난다는 설렘과 드디어 내 배가 갈라진다는 공포가 뒤섞여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웃는다고 안 무서워지는 것도, 운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닌 일이었다.
수술실로 들어섰다. 간호사들은 바빠 보였다. 애써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개복을 앞둔 나는 어울리지 않게 밝게 말했다. “네. 수술대로 올라가 누우세요.” 하긴 나는 처음 겪는 초산이지만 이분들에게는 매일 겪는 출산이겠지. 분만실. 그곳은 명랑한 산모보다 불안한 산모가 어울리는 곳이긴 했다.
굵은 링거 바늘이 오른 팔목 혈관에 꽂혔다. 보통의 주사와는 차원이 다르게 아팠다. 주삿바늘이 굵고 길었기 때문이다. 끄응. 힘주어 참았다. 나는 원래 아픔을 소리로 내뱉을 줄 모르는 인간이다. 뭐든 혼자 삭이는데 선수다. 주사를 맞을 때도, 장이 꼬여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도, 이별을 겪을 때도, 아프다고 표현하고 꺼이꺼이 울기보단 그저 입을 다물고 혼자 끄응 했다. 그러고 나면 모든 것은 끝나 있었고 나의 아픔은 덮여있었다. 끄응 끄응 잘 참으면 된다. 이 수술도 그럴 것이었다.
항생제 테스트 주사를 그 위에 한 대 더 맞았다. 한 번 더 끄응 했다. 주사는 아무리 잘 참아도 똑같이 아프고, 이 주사는 더 아프고, 나는 점점 더 무섭고, 그런데 더욱더 아프고 무서운 일들이 남아 있고. “혹시 간호사 선생님. 분만실에서 도망친 산모도 있었나요?” 그러자 간호사가 말했다. “왼쪽 옆으로 누우세요.” 분만실. 그곳은 달아나겠다 농담하는 산모보다 무섭다고 진담 하는 산모가 어울리는 곳이긴 했다.
이제 내 하반신은 곧 마취될 것이다. 먼저 출산을 한 친구는 말했다. 자기는 그 순간 너무 떨려 마치 한 마리 갓 잡아 올린 날생선처럼 수술대 위에서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파닥파닥 날뛰었다고. 제어가 되지 않았다고. 다행히도 나는 몸 대신 심장만 날뛰었다. 그 순간에도 사람일 수 있었다.
이번에는 간호사가 배꼽을 보고 ‘새우 자세’를 하라고 했다. 겨우 사람을 유지했는데 새우가 되라니. 하지만 만삭의 배 때문에 몸을 굽히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자 간호사가 내 무릎과 팔을 앞으로 맞잡아 몸이 강제로 둥그렇게 말리게 했다. 새우가 되었다. 배가 눌려 숨이 찼다. 이어 마취과 의사가 척추에 주사를 놓을 거라며 다리가 저릿하고 조금 아플 거라 했다. 끄응. 찌릿. 끄응. 쏴아. 끄응. 저릿. 끄응. 쩌릿. 척추 마디마디에 주사를 맞으며 네 번의 끄응을 하고 나니 다리의 감각이 조금씩 없어지기 시작했다. 너무 아프고 이상하고 무서웠지만 잘 참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내 하반신은 하나의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허리 아래로 감각이 서서히 없어지고 있었다. 몸을 돌려 천장을 보고 누웠다. 상체만 움직였다.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두 다리를 간호사가 잡고 마저 돌려줬다.
간호사가 다리를 벌려 나의 그곳을 확인했다. “왁싱하셨네요.” 그렇다. 이 순간을 위해 나는 3개월 전부터 ‘임신부 올 누드 슈가 왁싱’을 했더랬다. 출산 3대 굴욕이라는 내진, 관장, 제모 중 하나라도 덜 굴욕적이 되기 위해 의욕적으로 왁싱을 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간호사가 출산 전 나의 그곳을 일회용 면도기로 무심히 급하게 슥슥 밀어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가 미리 말끔히 제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 왁싱을 하러 간 날. 문을 열고 들어서자 왁싱해주시는 분이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임희정 작가님이시죠? 저 책 봤어요!” 윽! 책 쓴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던 순간이었다. 나는 곧 이분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내 몸 가장 은밀하고 내밀한 부위를 보일 것이다. 그곳에 있는 털을 하나하나 제거해 주실 것이다. 그런데 이 분은 내 책을 본 독자다. 내 그곳의 털 하나하나를 뽑으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고통보다 부끄러움이 때론 더 견딜 수 없는 법. “으악! 저 지금 너무 부끄러워요!!” 끄응 대신 소리를 질렀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취소하기엔 이미 환불 불가 계좌이체 선결제를 해버렸다.
독자 앞에서 작가가 아닌 왁싱 숍 고객이 된다는 것은 뭐랄까, 사우나에서 나체로 회사 대표님을 마주하는 것? 민낯에 머리도 며칠 감지 않은 초췌한 모습으로 짝사랑 상대를 마주하는 것?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한 것 같은데. 아무튼 그렇게 나는 털 하나에 책 쓴 이야기를 교환하며 왁싱 숍에서 아랫도리를 벗은 채 휑하니 독자와의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소변줄 꼽을게요. 약간 느낌 이상하실 수 있어요.” 이번 차례는 소변줄이다. 으잉? 근데 이게 뭐지? 가느다랗고 긴 무언가가 그곳 속으로 한없이 들어오는 느낌은? 이러다 오장육부를 지나 목구멍을 타고 입으로까지 튀어나올 것만 같아. 하지만 참을만했다. 내 다리는 점점 더 고깃덩어리가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이어 마취과 선생님이 차가운 솜을 팔뚝에 문지르며 말했다. “차갑죠?” 이번엔 허벅지에 문지르며 말했다. “어때요? 여긴 안 차갑죠?” 네. 그럼요. 거긴 고깃덩어리니까요. 마취 완료. 이제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 “혹시 수술 중 움직이시면 안 되니까 팔 좀 묶을게요.” 피박이라니. 제왕절개는 배만 가르는 게 아니었다. 가르기 전까지 이 모든 과정들이 있었던 것이다. 거절도 사절도 거부도 도망도 저항도 할 수 없는 나는, 그저 할 말을 잃을 뿐이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금방 끝날 거라며 이제 시작한다고 말했다. 끄응. 끄응. 이 충격과 공포를 이겨보려 애써 심호흡을 하며 끄응 거려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제 개복을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로 수술실을 뛰쳐나가 버리고 싶었다. 그러기에 내 다리는 마취 상태였지만. 아무 의미 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 “자, 시작할게요.” 소리와 함께 의사가 내 배 아래 부위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르는 느낌이 났다. 뭐지? 느낌이 난다! 아프지만 않을 뿐이지 생생히 느껴진다! 지금 내 배가 열리고 있구나! 이것이 개복이구나! 마취를 했지만 격렬히 느껴졌다.
이어서 가위로 의사가 그 속을 열심히 여러 번 자르기 시작했다. 삭둑삭둑. 하지만 종이가 아닌 근육과 자궁을 자르는 일이었기에 내 몸은 의사가 자를 때마다 마구마구 흔들렸다. 쉽게 절개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런 비유가 좀 그렇지만 질긴 고기를 씹는 상태, 잘 들지 않는 가위로 무언가를 힘겹게 자르는 상태 같았다.
양쪽으로 간호사들이 내 배를 붙잡았다. 의사는 계속 자른다. 삭둑삭둑. 내 배를 자르고 있단 말이다! 선생님 원래 이렇게 다 느껴지나요? 아니면 마취가 덜 된 건가요? 그러기엔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 근데 느껴져요! 저 너무 무서워요. 이런 공포는 태어나 처음이에요. 습습 후후. 호흡이 빨라져요. 어쩌죠? 왈칵. 악! 이게 뭐죠? 미지근한 무언가가 제 다리 사이로 쏟아지며 흐르고 있어요. 설마 이게 양수라는 건가요? 원래 하반신 마취가 이렇게 양수 터지는 것까지 다 느껴지는 거였나요? 그럼 미리 말해 주시지 그러셨어요. 처음부터 전신 수면 마취할걸! 아. 너무 무서워요! (물론 이 모든 건 속으로 혼잣말한 거였다.)
주사도 마취도 잘 참아왔던 나는 결국 흐느끼기 시작했다. 울어버렸다. “산모분 울지 마세요. 뱃속까지 흔들려요.” 갈라진 뱃속이 흔들리기까지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정신을 차려보려 했지만 이미 나는 혼돈 상태였다. 이윽고 ‘으앙’하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으앙~~~’ 나도 따라 울어버렸다. (물론 이 순간은 진짜 운 거였다.)
“자, 아기 보세요!” 드디어 내 뱃속에서 아이가 나왔다. 그래. 내 새끼가 태어났구나. 아가. 너는 힘껏 울고 있구나. 내아가. 어디 보자. 응? 응? 세차게 울고 있는 너의 온몸에는 피와 알 수 없는 하얀 분비물들이 섞여 잔뜩 묻어있구나. 퉁퉁 불어있구나. 못 생겼... 아니지 잠깐만!
아가야. 엄마는 이 순간을 위해 전신 수면 마취가 아닌 하반신 마취를 먼저 한 거란다. 세상에 막 나온 너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기 위해, 엄마라는 걸 알려 주기 위해, 너를 보기 위해 그 모든 충격과 공포를 참은 거란다. 가만있어보자. 뭐지? 말을 해야 하는데 입이 안 떨어져.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아가야. 엄마야! 이 한마디가 나오질 않아! 말이 안 나온다고!
나는 결국 갓 태어나 악을 쓰고 울고 있는 아기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한마디도 하지 못할 거면 나는 왜 하반신 마취를 했을까. 아가야 엄마는 사실 아나운서란다. 중저음의 목소리와 정확한 발음으로 너에게 사랑의 말을 해주려고 했단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를 않고, 내 직업이 제일 쓸모 없었던 순간이었다.
갓 태어난 아이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한 간호사는 날름 아이를 데려갔다. 이어 후 처치를 위한 수면 마취로 잠들기 직전 감기는 눈을 애써 참아가며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한마디를 힘겹게 내뱉었다. “애기... 건강... 한... 가... 요?...” 잠이 들었다. 한 시간 후 눈을 떠보니 입원실로 이동하는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산모’라 불렀다.
출산. 그것은 내 목숨을 걸고 새 목숨을 만나는 일이었다. 아기의 세찬 울음소리를 듣기까지 몸을 떨고, 고통을 참고,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혼자 오롯이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견뎌야만 하는 일이었다. 수 시간의 진통도, 배를 가르는 수술도, 모두 내가 아닌 아기를 위해 참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괴로움과 아픔은 시작에 불과했다.
'엄마'라는 이름의 엄청난 서사가 동터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