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달의 '불행복'

잉태는 얼마나 신비롭고 참혹한 지

by 임희정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모순’ - 양귀자





‘동의하지 않아도 봄은 온다’고 했던가. 계절에 상관없이 나에게 찾아온 생명을 ‘봄’이라 생각하고, 이제 내 뱃속 씨앗에 물도 주고 햇빛도 주고 사랑도 주며 잘 키워야 한다. 그럼 배아는 태아가 되고, 그 태아는 배 밖으로 나와 신생아로 영아로 유아로 어린이로 커 가겠지.


살면서 무언가를 길러본 건 몇 개의 화분 속 식물과 잠깐의 강아지와 고양이가 있었고, 내 몸의 무언가를 길러본 건 손톱과 머리카락 정도인 것 같은데 이건 차원이 다른 육성이었다. 도대체 내 뱃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나는 그 모든 세포분열과 착상과 형성과 발달을 알지 못한다. 엄마가 된 내가 겪게 될 많은 것들도 그럴 것이다.



‘동의하지 않아도 봄은 온다’고 했던가.




이상했다. 임신인 걸 확인하자마자 배가 나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같은 게 아니라 배가 나온 거였다. 어? 왜 이러지? 이렇게 임신 확인을 하자마자 3주 차부터 배가 나오나? 보통 임신 4, 5개월은 되어야 배가 나온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빨리 나오지? 피검사로 임신인 걸 확인한 후 다음날부터 배가 부풀어 올라 땡땡해지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속이 답답했다. 임신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내가 입을 수 있는 옷은 쫙쫙 늘어나는 시폰 원피스뿐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누워서 갑갑해하는 것뿐이었다. 임신 초기에 임신 막달을 경험하고 있었다.


과배란 부작용으로 배에 복수가 찼다. 보통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하는데 시간이 지나고 안 괜찮다면 주사로 복수를 빼내야 한다고 했다. 처방전은 이온 음료와 소고기였다. 수분 섭취와 단백질 보충이 중요하다고 했다. 내가 받아본 가장 맛있고 비싼 처방이었다. 매일 1.5리터짜리 포카리스웨트를 마시고 등심과 안심을 구웠다. 씹고 맛보고 마시는 동안 다행히 배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복수가 빠지자 두통이 시작되었다. 정말 온종일 머리가 쑤시고 아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머리통을 부여잡고 누워서 내내 괴로워하는 것뿐이었다. 의사는 타이레놀 한 알 정도는 먹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혹시라도 약이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조심스러워 먹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미련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생명을 품은 초기 임신부는 먹고 보고 느끼는 것 모두가 조심스럽다. 임신 초기 모든 임신부들은 검색창에 ‘임신 중’을 붙여 모든 걸 검색해 본다. ‘임신 중 타이레놀’ ‘임신 중 염색’ ‘임신 중 수영장’ ‘임신 중 무알콜 맥주’와 같은 검색 기록이 남았다. 결국 오랜 시간 괴로워하며 자력으로 두통을 견뎠다.

두통이 조금 나아지자 이번에는 ‘먹덧’이 시작되었다. 보통의 입덧은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이 나 잘 먹지 못하는 반면, 나의 입덧은 허기를 참지 못하고 계속 무언가를 입에 넣어야 하는 증상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흰쌀밥을 주걱으로 퍼먹었고, 하루에 딸기를 두 팩 씩 먹었으며, 새벽 3시에도 일어나 밥을 차려 먹었다. 1일 1식도 자주 하던 내가 1일 5식을 하며 시도 때도 없이 밥상을 차렸다. 먹지 않으면 어김없이 우웩과 우웁 소리를 냈다. 신 것과 밥을 끊임없이 찾았다. 몸무게 앞자리가 두 번 바뀌었다. 증상의 종류와 상관없이 입덧이라는 건 땅에 서 있어도 뱃멀미를 계속하고, 술을 마시지 못해도 숙취가 이어지는, 식용유 한 통을 목구멍에 부어놓은 채 참아야 하는, 요상하고 억울하고 괴이한 증세였다.


임신 후기가 되자 이번엔 소양증이 생겼다. 피부가 미친 듯이 계속 가려운 증상. 둥글게 부풀어 오른 배가 계속 심하게 가려워 빨개지고 피가 날 때까지 벅벅 긁어댔다. 뱃속 아이는 얼마나 시끄러웠을까. 낮에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밤이 되면 심해졌다. 아이를 위해 긁지 않으려 장갑까지 껴봤지만 소용없었다. 가려운 건 긁어야만 조금 나아졌고, 한 번 긁기 시작하면 계속 긁어야 했다. 나는 울며 만삭의 배를 부여잡고 하루빨리 출산하기만을 바랐다. 예견된 재앙보다 지금의 고난이 끔찍했기에. 소양증은 출산과 동시에 없어지는 게 아님을 모른 채. 아이를 낳고도 한동안 유축을 하며 또 벅벅 긁어댔다.



잉태는 얼마나 신비롭고 참혹한 지





이 끊임없는 증상과 통증, 열 달 동안 매번 새롭게 등장했던 처음 겪어보는 고통들. 잉태는 얼마나 신비롭고 참혹한 지. 행복에 바짝 붙어있는 불행에 즐겁다가도 참 힘겨운 280일이었다.


초음파와 피검사, 내진과 주사, 눕기와 걷기, 긴장과 완화, 눈물과 웃음, 걱정과 기대.



모두 열 달의 ‘불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