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이라는 단어의 무게
사랑은 사실 점막으로 하는 게 아닌가
‘피프티 피플’ -정세랑
예민하게 일했다. 건강과 체력을 있는 데로 끌어다 썼다. 생리는 일 년에 대여섯 번. 때문에 이번 달 생리가 늦어지거나 없다 해도 나에게는 놀랄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아프고 성가신 일이 하나 줄어 편하다고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임신 준비를 시작하니 그건 가장 큰 문제가 됐다. 불규칙적이고 듬성듬성 인 생리로는 배란일이 언제인지 알기 어려웠고, 매달 생리를 하지 않으니 임신이 될 확률은 그만큼 낮았다.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산부인과는 치료가 아니라 ‘숙제’를 받아오는 곳이었다. ‘굴욕 의자’라 불리는 검진 의자에 양쪽 다리를 벌리고 앉아 질 안에 초음파 기구를 넣고 난포 크기를 확인하면 숙제가 주어졌다. 부부가 관계를 해야 하는 날. 병원에서는 그것을 숙제라고 말하곤 했다.
사랑 가득한 부부의 관계가 숙제가 되는 건 임신이라는 계획이 생기면 서다. 이 숙제와 관련된 후일담은 다양한데, 그중 대표적인 것은 평소 관계에 있어 의욕 가득하고 아무 문제없는 남편이 숙제 날만 되면 이상하게 잘되지 않더라는 이야기와 같은 것들이다. 무엇이든 실패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의식과 힘이다. 신경을 너무 많이 써 긴장하고 힘이 들어가면 그르치기 십상이다. ‘힘 빼기의 기술’이라는 책 제목처럼, 기술은 어쩌면 힘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빼는 데도 필요한 것이다.
우리 부부는 착실한 학생이 되어 열심히 숙제를 해갔지만, 번번이 선생님께 다음 숙제를 받아와야만 했다. 임신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전에도 나와 있다. 시기에 맞춰 부부 관계를 가졌다 하더라도 한 번의 생리 주기당 임신율은 5~6%라고. 배란과 수정과 착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우리는 힘을 빼고 잘 기다리기로 했다. ‘한 번’과 ‘한 방’에 임신이 되는 일도 있지만, 세상에 단번에 됐다는 이야기들은 놀랍고 신기해 크게 들릴 뿐이다. 삶을 넓게 이루고 있는 것들은 끊임없는 반복과 기다림으로 만들어 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초음파를 보고 숙제 날을 받고 수납을 하려고 하는데 간호사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임신이 하도 안 되니까 선생님이 그냥 가시래요.” 순간 대기 중이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일제히 쳐다보는 눈빛이 느껴졌다. 임신을 준비한 지 고작 석 달 정도 됐을 뿐인데, 그 석 달이 이곳에서는 ‘하도’가 되는구나. ‘생리불순’이라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산전검사에서 모두 정상이었던 나는 별안간 불임이 된 듯했다. 배려가 무례가 된 순간이었다. 당황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급하게 산부인과를 빠져나오는 것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에 간호사의 말이 맴돌았다. ‘임신이 하도 안 되니까...’ 내 잘못은 아닌데 뭔가를 크게 그르친 사람이 되어 주눅이 들었다. ‘난임’과 ‘불임’은 ‘여자’를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고 원인도 모두 여자의 탓은 아닌데 그 말의 방향은 자주 여성을 가리키고 있는 듯했다. 임신은 똑같이 난자 하나와 정자 하나가 필요한 일인데, 준비도 검사도 과정도 결과도 모두 여자가 떠안아야 하는 것 같았다. 자궁이 여자 꺼여서 그럴 테지... 웃어넘기려 애썼다. 난임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내 몸 상태는 어제와 똑같은데 난임병원을 들어서니 이상하게 자궁이 아픈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산부인과를 다닐 때는 임신 준비를 하는 사람이었는데, 난임 병원에 다니니 임신이 안 되는 사람이 된 듯했다. 잘 안 되는 것과 안 되는 건 글자 하나 차이인데, ‘난임’이라는 단어는 그 가능성을 확 줄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어에도 무게가 있다면 난임은 중량이 엄청날 것 같다.
산부인과는 시끄럽고 난임병원은 조용했다. 산부인과에는 임신한 그리고 임신할 여자들이 가득했고, 난임 병원은 임신하지 못한 그리고 임신할 여자들이 듬성듬성 있었다. 산부인과에는 어른과 아가들이, 난임병원에는 어른들만이 있었다. 나는 이 차이들을 나도 모르게 비교하며 어제는 산부인과에 오늘은 난임병원에 앉아 있었다.
산부인과의 간호사들은 말소리가 컸다. 임신 몇 주차세요? 아기 성별 보셨어요? 수술 날짜 다가오네요. 웃고 축하해 주었다. 난임병원의 간호사들은 속삭였다. 생리 후 이틀째부터 드시는 약이에요. 항생제 드시고 다음 주 화요일에 오세요. 다음 주 시험관 결과 볼 거예요. 조용히 그리고 조심히 말했다. 산부인과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먼저 서로의 배를 쳐다보았다. 누군가는 티 나지 않았고 누군가는 불룩했다. 난임병원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모두 티 나지 않았고 알 수 없었다. 누군가 나의 배를 쳐다보는 곳에서 얼굴을 보는 곳으로 옮겨가니 알게 되었다.
어느 날은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자리의 여자가 진료를 보고 나와 남편에게 속삭였다. “다음 주에 주사 맞고 채취한대.” 시험관 아기를 준비하는 부부였다. 나는 허락 없이 그 대화를 훔쳐 듣고는 주사도 채취도 아프지 않고 잘 되기를 난대 없이 소망했다. 내가 임신에 대한 무거운 마음을 안고 이곳에 오니 나와 비슷할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였다. 종교 없는 나는 이상하게 이곳에서 자꾸만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기도를 하게 되었다.
아픔은 공감을 만나 주어가 타인을 향하게 되는 일은 아닐까. 내가 아프니, 이 아픔을 겪을 누군가에 대해 마음이 넓어졌다. 아픔은 곤란이었지만 이런 확장은 좋은 마음 같았다.
그런데 순간 나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목격하게 되었다. 아내가 진료실에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남편이 아내의 말을 차분히 듣고서는 주섬주섬 가방에서 젤리를 꺼내 아내 입에 넣어주는 것이었다. 아내가 오물오물 젤리를 씹는 동안 남편은 아내에게 카디건을 입혀주고 짧은 포옹을 하고 가방을 챙겨 수납한 후 병원을 나갔다. 나는 그 모습을 쭉 바라보며 사랑은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그 젤리는 인공수정에 실패한 후 시험관 시술을 앞둔 아내에게 건네는 가장 말랑말랑한 위로 같았다. 그 어떤 사랑 표현보다 야들야들하고 보드라워 보였다. 진심으로 함께 둘이서 임신을 준비하는 부부의 모습이었다.
누군가 더 많은 중량의 고통과 과정을 겪어야 할 수밖에 없을 때, 곁에서 기다려 주고 젤리를 먹여주고 껴안아 주는 것도 함께 치르는 거니까. 사랑은 사실 젤리로 하는 게 아닌가. 마음 같아서는 그곳의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오물오물 젤리를 씹으며 잠시나마 달달한 시간을 보냈으면 했다.
산부인과를 다니다 난임병원에 다니게 됐을 뿐인데 생각이 많아졌다. 무언가 계획대로 되지 않아 간절해진다는 건 많은 것들이 조심스러워지는 일 같았다. 조용조용 말하고, 힐끗 쳐다보고, 설명이 많은 난임병원 로비에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걱정 많고, 생각 많고, 아파 보였던 많은 사람들에게 ‘임신’이라는 통보가 이어지길 간절히 바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젤리 한 봉지를 사 가방에 넣었다. 오늘 밤은 남편과 함께 이 젤리를 먹으며 달달하게 숙제를 마쳐야지 생각했다.